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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호진 Aug 09. 2020

하고 싶은 일이 많은 사람인줄 몰랐습니다

100개를 채워보고 알게된 것들


당신의 경험을 듣고 싶습니다.


휴직을 했던 2019년 여름, 아이들과 캐나다 여행을 다녀왔다. 그것도 아이들 엄마 없이 나와 아들 둘 이렇게 셋이서만, 무려 70일 동안!


아이가 맹장이 터지는 불의의 사고도 겪었지만 수술도 잘 받고 빠르게 회복한 덕분에 계획한 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을지는 알 수 없지만, 나로서는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아이들을 통제 대상으로만 여겼던 잘못된 생각을 버리게 됐다. 여행 중 많은 것을 배우기도 했고 나 스스로에 대해서도 깊게 탐구할 수 있었다.      


캐나다에서 아이들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정신이 없던 어느 날, 서울에서 반가운 메일이 한 통 날아왔다. ‘리뷰빙자리뷰’라는 살롱 모임을 운영하는 록담(백영선)이 보낸 것이었다. 그가 운영하는 ‘리뷰빙자리뷰’ 연사로 나를 초대하고 싶다고 했다. 이번 모임은 특별하게 열 명의 연사가 “짧게”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형태로 진행될 예정으로, 발표 시간은 10분 정도라 했다. 부담 없이 경험을 공유하면 된다고 편하게 얘기해 달라고 그는 부탁했다.     


“버킷리스트 100개”를 만들었던 경험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는 궁금해 했다. 그게 특별해 보였나 보다. 지인의 권유로 우연히 만들게 된 버킷리스트였고, 어쩌다보니 분위기에 휩쓸려 진행한 워크숍이었는데 누군가가 이를 궁금해 한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해보고 싶었다. 직장을 다니며 회사 프로젝트에 대해 수차례 발표해 보긴 했지만 나의 개인적인 경험을 나눠본 적은 없었다. 사람들에게 내 경험을 나누고 좋은 영향을 주는 일에 관심이 컸기에 좋은 기회라 생각했다. 발표가 내 경험을 새롭게 정리해줄 것 같은 기대감도 들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그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2018년부터 썼던 나만의 리스트 100개를 하나씩 들춰 보았다.      

   

버킷리스트 100개를 만든 경험이 왜 내게 특별했을까?      


맨 처음 100개의 리스트를 채웠던 2018년 1월로 넘어가 보았다. 당시 지인의 추천으로 하고 싶은 일 100개를 적어 보았다. 회사 생활에 답답해 하던 나로서는 돌파구가 필요했고, 뭐라도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지인의 이야기가 나를 혹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렇게 쓰다 보면 하고 싶은 일이 무언지 찾을 수도 있다고.


100개의 리스트를 만들고 가장 놀라웠던 건, 100개의 하고 싶은 일을 채워 나갔다는 점이었다. 하고 싶은 일을 100가지나 써내려갈  있었다는  신기했다. 그동안 하고 싶은 일이 없다고 투덜거렸는데 막상 하나씩 써내려 가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어느 순간부터 칸을 채우는 게 고통스럽기도 했고 억지스러운 것을 일부 끼워 넣은 것도 있었지만 내 안에 다양한 욕망이 있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소소한 것들이 나의 리스트에 많다는 것도 놀라웠다. 굳이 크고 대단한 것이 아니더라도 작지만 중요한 일들도 주변에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들을 하나씩 해 가는 것도 필요하겠구나 싶었다.     


마지막으로 놀라웠던  회사를 바라보는  마음이었다. 하고 싶은 일이 별로 없었다. 회사에서 하는 일을 잘 해보고 싶다는 바람은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의무감에서 나온 To-do 리스트지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아니었다. 그나마 진짜 해보고 싶은 것이 하나 있기는 했다. “회사에서 프리젠테이션 발표하기”가 그것이었는데, 그것 또한 회사에서 해보고 싶어 적기 보다는 남들 앞에 나서기 좋아하는 내 바람 때문에 적어본 리스트일뿐이었다. 회사를 그저 돈이 나오는 ATM 정도로만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싶어 안타까웠다.     



내가 진짜 바라는 나의 모습은?


내가 진짜 바라는 것이 “꾸준한 성장”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회사 밖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고 싶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을 리스트에 하나씩 담았다. 그 속에서 나는 어제의 나보다 조금씩 나아지는 오늘의 나를 만들고 싶었다.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흘려보내기 보다는 내 자신의 가능성을 제대로 불태우고 싶었다.


회사라는 공간에서 특별히 하고 싶은 일이 없었던 것도 같은 맥락 때문이었다. 회사에서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승진은 내가 바라는 성장의 모습은 아니었다. 그래서 월급만 잘 받으면 되겠거니 하고 체념했었는데 그것이 나를 답답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결국 다음 해 “휴직”이라는 다소 무모한 결정으로 연결됐고.      


3년째 100개를 채워갑니다.


100개의 하고 싶은 일을 리스트로 만들었던 경험 덕분에 나는 2018년을 활기차게 보낼 수 있었고, 연말을 기분 좋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무려 50개가 넘는 버킷리스트를 2018년에 실행에 옮겼다. 그냥 쓰기만 했을 뿐인데, 많은 것을 했다는 게 놀라웠다.


이런 경험은 2019년, 2020년에도 이어졌다. 매년 한 해를 시작하면서 하고 싶은 일 100개를 채울 수 있었다. 그게 일년을 시작하는 나의 루틴이 되었다. 재미난 건 두번째부터는 100개를 채우는 일이 훨씬 수월해졌다는 점이었다. 라면 면발 불듯이 하고 싶은 일들도 불어나는 듯 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구체적으로 그려볼 수도 있게 됐다. 막연히 성장하고 싶다는 나의 바람은 글을 쓰는 사람, 커뮤니티를 이끄는 사람, 동기부여가 등으로 선명해졌다. 나의 영역이 지속적으로 확장되는 것도 느껴졌다. 회사와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다양한 사람들 속에서 살을 부대끼며 경험을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하고 싶은 일 100개를 적어본 경험은 내게 큰 선물이었다. 우연히 지인의 추천으로 하게 된 경험이었는데 그 속에서 나는 진짜 나답게 사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었다. 내 안의 욕망과 마주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하나씩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꺼내어 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나다움을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이야 말로 자연스러운 나의 마음이었으니까. 


그렇다고 뭔가 대단한 것을 얻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나를 발견하고 그 속에서 조금씩 나아가고 또 더 자주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다. 그거면 엄청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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