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말고 복직 인터뷰 시리즈 4 - 박세곤 님을 만나다
얼마 전 한 휴직자가 <퇴사 말고 복직>시리즈를 재밌게 읽고 있다며 자신도 복직해서 이 인터뷰에 나오고 싶다고 하셨어요. 복직자 분들의 이야기를 읽어주시는 독자분의 리뷰가 참 고마웠는데요. 한 편으로 걱정도 됐어요. 그 분이 12월에 복직하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때까지 이 시리즈를 유지할 수 있을까 싶었거든요. 그분의 바람을 들어드리기 위해서라도 12월까지는 열심히 인터뷰이를 섭외해서 하나씩 풀어봐야 할 것 같아요.
<퇴사 말고 복직 인터뷰 세번째 이야기>
https://brunch.co.kr/@tham2000/236
<퇴사 말고 복직> 인터뷰 네 번째에서는 제게 조금 특별한 분을 모셨습니다. 휴직 전부터 저와 친하게 지낸 분이셨는데요. 그래서 우려도 들었습니다. 인터뷰의 이야기가 제가 다 아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기도 했거든요. 하지만 인터뷰를 하면서 (물론 코로나 상황이라 서면으로밖에 할 수 없었네요) 그의 솔직한 이야기가 제게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평소 몰랐던 그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한 느낌이었는데요.
그의 진솔한 이야기, 함께 들어보실까요?
나와 같은 시기에 휴직을 신청한 "휴직 동기"가 있다. 서로의 휴직에 적잖게 영향을 주고 받았는데, 작년 8월, 휴직 6개월만에 그는 조기 복직을 선택했다. 그리고 지금은 프로젝트 리더로 그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일하고 있다. 보수적인 조직에서 새로운 사업을 하면서 몇 번의 우여곡절도 겪었다고 들었는데, 잘 이겨내고 조금씩 성과를 내고 있다고 한다. 1년 만에 다시 예전의 그로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휴직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왜 조기 복직을 선택했는지, 휴직이 이미 잊혀진 것은 아닌지, 그리고 휴직을 후회하고 있는 건 아닌지 궁금했다. 그의 휴직과 복직 이후의 삶이 궁금했다.
Q1. 자기 소개부터 부탁드릴게요.
한 직장에서 16년 근속 중인 박세곤이라고 합니다. 금융회사를 다니고 있고요. 운이 좋게도 IT,전략, 디지털 등 다양한 업무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모바일 부문에서 신사업 프로젝트를 맡아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는 중입니다.
Q2. 휴직을 하게 된 계기가 중금해요. 어떤 이유로 휴직을 하시게 되셨나요?
작년 1월에 휴직을 시작했고 1년 반 휴직 예정이었는데 6개월 휴직을 하고 조기에 복직했습니다.
휴직을 하던 당시 조직에 대한 피로감이 컸습니다. 회사에서 하는 일에 대한 회의감도 들었고요. 때마침 조직 개편의 이슈 등으로 인해 조직에 대한 불만이 터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여러 선택지를 고민하던 와중에 다소 충동적으로 휴직을 선택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 확신은 있었어요. 지금 휴직이 내게 꼭 필요하겠다는 그런 확신이요.
Q3. 충동적이란 말이 와닿네요. 저도 그런 것 같기도 했거든요. 그렇지만 충동적인 것이 꼭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해요. 세곤님의 경우처럼 자기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말이죠. 너무 휴직을 계획적으로 접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렇게 되면 휴직을 하고 뭘 해야겠다는 압박에 시달릴 수 있을테니 말이죠.
충동적인 휴직이었기에 구체적인 계획은 따로 없으셨을 것 같은데, 휴직 후 어떤 경험을 주로 하셨나요?
맞아요. 구체적으로 뭘 해야겠다는 계획 같은 건 없었어요. 아내가 일을 하고 있지 않아 가사 부담도 덜했고, 아이들도 어느 정도 커서 육아에 대한 부담도 크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규칙적으로 하는 건 있었어요. 바로 아이 학교 등교를 함께 하는 것이었는데요. 매일 둘째 등교를 제가 시켜줬어요. 사소한 일상이었지만 그 시간이 참 소중했습니다. 아이도 아빠와 함께 학교 가는 것을 참 좋아했고요.
그리고 저를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했습니다. 제 몸과 마음에 집중했는데요. 알고보니 회사에 다니는 동안 "나" 자신에 집중한 시간들이 없었더군요.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제 몸과 마음보다는 가족, 회사, 일 등을 우선으로 여기며 지냈더라고요. 그래서 몸도 마음도 많이 망가졌구나 싶었고요.
그 과정에서 퇴사에 대한 고민도 많이 했어요. 회사를 떠난다면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봤어요. 부동산 중개업, 요식업, 스타트업, 투자업 등등 여러 길을 고려해봤죠. 그런데 생각보다 제가 잘 할 수 있는 일들이 별로 없더라고요. 리스크를 짊어질 만큼의 배짱도 없었고, 회사를 대체할 만큼의 기대효과가 크지도 않을 것 같았고요. 신기하게도 그렇게 생각하니 회사가 소중한 곳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회사에서 주는 급여가 마약같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게 참 감사하다는 생각도 하게 됐어요.
Q4. 뭐든 떨어져 봐야 그 소중함을 알게 되는 것 같던데 회사가 그런 거 같아요. 한 발짝 물러나야 소중함을 알게 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세곤님처럼 말이죠.
이런 생각이 세곤님의 휴직에 또 다른 영향을 미쳤을 것 같은데, 맞나요?
네. 맞아요. 제 마음을 내려놓는데 큰 도움이 되었어요. 이 시간을 온전히 휴식의 시간으로 보내자고 마음을 먹게 되었어요. '그냥 휴직 기간엔 그동안 못챙긴 내 몸을 챙기고 신나게 놀자'라고 방향을 선회하였습니다. 가볍게 생각하며 혼자만의 시간이 주는 자유를 맘껏 누렸습니다. 특별히 대단한 경험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혼자 여행도 다니고, 집에서도 혼자 있는 시간을 갖기도 했습니다. 여러모로 저에게 집중한 시간들이었는데요. 덕분에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지쳐있던 것들이 많이 회복될 수 있었습니다.
뭔가 대단한 것을 하지 않더라도 그것이 충분히 의미있는 시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깨달았다. 온전한 휴식이 수많은 직장인에게 꼭 필요한데, 그것을 얻기가 왜 이리 어려운지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문득, 작년 상반기 그를 저녁 모임에서 만났던 날이 떠올랐다. 몰라보게 살이 빠진 건강한 모습으로 나타난 그는 모임에 함께했던 후배들에게 휴직을 강하게 권하기도 했다. 그가 경험한 시간이 그만큼 소중했기에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 아니었을까?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때 그의 자신감이 생각났다.
Q5. 생각보다 빨리 복직을 하셨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까요?
원래 계획은 1년 6개월 휴직이었는데, 6개월만에 조기 복직하게 됐어요. 회사에서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는 데 선배가 와서 일해보라고 제안을 주셨는데요. 더 놀고 싶었지만 고민 끝에 복직을 하게 됐어요. 그리고 그 일을 지금 1년 넘게 하고 있고요.
일은 휴직 전에 했던 일과 연결도 되어 나름 만족하고 있어요. 휴직 하기 전에는 금융회사의 디지털 전반에 대해서 전략을 수립하고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는 일을 했었는데, 복직을 하고 나서는 새로운 프로젝트성 디지털 사업을 하게 되었는데요. 현장에서 직접 새로운 모델의 사업을 만들어 가는 재미를 느끼고 있어요.
Q6. 작년 8월 1일에 복직하셨잖아요. 복직한 첫 날 기분이 어땠어요?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출근 전 회사 빌딩을 쳐다보니 맨 위 회사 로고가 보이더라고요. 뭔가 뭉클했어요.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도 반가웠어요. 돌아 돌아 몇 년만에 예전에 일했던 부서로 복직하게 됏는데요. 다들 너무나도 반갑게 맞아주시더라고요. 지금도 너무 감사해요.
Q7. 하고 있는 일은 어떠세요? 새로운 사업이라 부담이 클 것 같은데요.
휴직하고 잘 쉬어서 그런지 일을 적응하는 게 힘들지는 않았어요. 물론 초반에 사업의 방향을 수정해야 할 때 다소 힘에 부치기는 했어요. 제가 복직하면서 기존에 기획한 내용을 다 틀어버렸거든요. 고객 관점에서 판을 다시 짜고 싶었거든요.
그 과정에서 새로운 것을 한다는 게 제게는 큰 자극이 되었어요.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저희 팀에서 만들어간다는 사실에 보람도 느꼈고요. 다만 업무량이 꽤 많다는 게 문제긴 해요. 휴직하면서 다짐한 게 있었거든요. 복직하면 정시 출근하고 정시 퇴근할 거라고요. 사람의 본성은 쉬고 온다고 바뀌는 건 아닌 것 같네요.
Q8.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기존 조직에서의 저항이 꽤 심했을 것 같아요. 금융회사가 보수적인 조직이라 이를 설득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 같고요. 그 과정을 잘 이겨내며 하나씩 이뤄가는 모습이 참 멋져 보여요. 지금 회사에서의 목표가 따로 있나요?
별다른 목표는 없고 목표는 지금 하는일을 성공시켜아겠다는 생각 뿐입니다. 그게 제가 가장 우선으로 봐야 할 것이기도 하고요.
복직을 하고 주도적으로 프로젝트를 이끌어 가는 그의 모습이 좋아 보였다. 특별한 목표를 갖기 보다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성공해 내고 싶다는 짧은 대답이 강렬하게 다가왔다. 일에 대한 보람과 긍지도 느껴졌다. 휴직하고 몸과 마음을 회복했던 것들이 지금의 열정적인 모습을 만들어 가는 것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복직을 앞두고 잇는 상황에서 그가 부럽기도 했다. 나도 그처럼 회사에 돌아가서 회사 업무에 열정을 토해내고 싶다는 바람도 들었다. 살아 숨쉬는 일을 해보고 싶었고.
Q9. 휴직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어떻게 보고 계시나요? 후회하진 않으시나요?
저에게 휴직은 중요한 휴식시간이었습니다. 여러 의미에서 매우 큰 비용을 투자한 기간이었지만 보람 있었고 그래서 후회하지 않습니다.
휴직은 마라톤(직장생활) 반바퀴를 돌고 나서 계속 달리지 않고 쉰 시간이었어요. 달려온 반바퀴를 돌아보기도 하고 신발도 갈아신고 샤워도 하고 영양제도 먹을 수 있었죠. 그리고 복직해서 다시 반바퀴를 도는 듯한 느낌이에요. 뭔가 대단한 것이 달라진 것 같지는 않지만 잘 쉬었다는 생각입니다. 반 바퀴를 잘 돌 수 있게 말이죠.
그래서 훌륭한 안식년을 보낸 느낌입니다 가족과의 유대감, 나를 정비하는 시간으로 너무나도 가치있는 시간이었던것 같아요 어서 다음 휴직(아마 퇴직),이 다가오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때까지 또 열심히 살아가 보려고요.
Q10. 휴식이라는 게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 세곤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느낄 수 있어 참 좋았어요. 마지막으로 아내 분은 세곤 님의 휴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휴직을 결심한 날 밤, 와이프에게 얘기했더니 아내는 '그렇게 해' 라고 짧게 대답했어요. 평소 제 의견을 대부분 수긍해주고 허용해주는 편이지만 어려운 이야기였는데도 쿨하게 얘기해준 부분애 대해서는 무척 감사한 마음입니다. 나중에 들었지만 정말 휴직할 지는 몰랐다고 하네요.
사실 처음 2개월정도 아내는 저의 휴직을 힘들어했습니다. 제가 자유를 만끽하는 만큼 와이프는 오히려 힘들어 하더라고요. 다행히 3개월차에 접어들면서 제 휴직으로 인해 와이프의 일상도 좋아지고 아이들도 아빠랑 있는것에 대해 만족하면서 아내도 제 휴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되었어요. 덕분에 서로 만족한 휴직기간을 보냈던 것 같아요.
정말 아내에게 감사했어요. 여러모로.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라는 책을, 이 글을 쓰면서 알게 됐다. 세곤님의 휴직 이야기를 보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라는 말이 생각났는데 동명의 책이 있었던 것이다. 아직 읽진 않았지만 이 책에서 말하려는 것도 세곤님의 말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책을 소개하는 한 문장이 그것을 잘 보여주는 것 같았고.
"멈춰 서도 괜찮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장거리 달리기를 뛰고 있는 선수들이다. 단거리 달리기처럼 뛰었다가는 완주는 커녕 부상을 입을 수 있다. 완급을 조절하며 달려야 한다. 때로는 휴식을 취하면서 영양분도 섭취하고 내가 달렸던 길들을 돌아볼 필요도 있다.
세곤님은 장거리 달리기를 끝까지, 잘 뛰기 위해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려주었다. 잠시 멈춰 선다 하더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레이스를 완주하는 데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아니 오히려 그런 멈춤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는 몸소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이 내가 그의 후반기 레이스를 목청껏 응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 추진하고 있는 일들이 정말 잘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