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자리로 돌아왔지만 후회하지 않는 시간이었습니다

<퇴사 말고 복직> 인터뷰 - 8. 비더미라클

by 최호진

어떻게 쉬어야 잘 쉬는 걸까요? 휴직을 하고 쉼을 선택했지만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 게 잘 쉬는 건지 몰랐습니다. 한 번 도 쉬어 본 적이 없었으니 모르는 게 당연하겠죠. 그래서 그냥 열심히 살았습니다. 직장에서 쉼을 택했지만 그 시간을 후회없이 살기 위해서는 열심히 사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책 <퇴사 말고 휴직>을 정리하고 저의 쉼표에 대한 이야기를 화두로 꺼내면서 제게 쉼이란 어떤 것일지에 대해 막연한 결론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돌아봄"이었습니다. 제게 쉼이란 나의 과거를 돌아보는 행위었습니다. 몸은 바쁘더라도 그 속에서 그동안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잠시 숨을 고르며 돌아보는 게 제게는 쉼이라 생각되더라고요.


그 속에서 저는 제 삶에 주인이 되는 법에 대해서 그리고 남들의 시선에 연연하지 않는 법에 대해서도 고민할 수 있었습니다. 그 핵심에는 나를 사랑하는 마음 즉 자존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나에 대해 집중하는 것을 통해 내 삶을 주체적으로 꾸려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지난 인터뷰에서 봤던 규현님의 이야기도 결국 어떻게 하면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의 고민을 담고 있었습니다. 휴직이 그런 기회를 준 것 같아 감사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좋아보였습니다.


https://brunch.co.kr/@tham2000/247

벌써 여덟번째 복직자 인터뷰인데요. 비슷한 이야기 같지만 조금씩 다른 이야기가 보이는 것 같아 신기한데요. 여덟번째 분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실 지 한 번 들어보실까요?





비더미라클님을 처음 만난 건 홍대에서 진행한 남성 휴직자 모임에서였다. 그의 휴직 이유도 다른 남성분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번아웃 때문이었다. 성취만 해오던 그의 삶에 빨간 불이 켜졌다. 자신을 돌아보고 아이들과도 좋은 추억을 만들기 위해 선택한 휴직이었다. 하지만 막 휴직을 시작해서였는지 그는 다소 불안해 보였다. 휴직의 시간을 소중히 보내고 싶었던 열망이 컸기에 그런 것 같기도 했다. 마치 내가 막 휴직을 했었을 때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그 후로 그를 몇 번 만났는데, 만날 때마다 휴직의 시간을 즐기는 게 눈에 보였다.


그리고 이번 인터뷰를 통해 그의 휴직기간의 고민에 대해 그리고 스스로 찾은 답에 대해 들어볼 수 있었다.



Q1. 우선 자기 소개부터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저는 교육 콘텐츠 업체에서 일하는 15년 차 직장인입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비더미라클이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고 있고요. 교육 쪽에서 일하는 덕분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조금씩 성장하고 있습니다.


Q2. 휴직에 대한 이야기부터 들어볼게요. 언제 휴직을 하셨죠? 어떻게 하다 휴직을 선택하셨는지요?


저느 2019년 3월 휴직에 들어갔습니다. 휴직 전에 신사업을 추진하면서 몇 번의 좌절을 경험했었는데요. 그 때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쳐 있었습니다. 뭔가 무너진 듯한 느낌이었어요. 제 자신이 한심해 보이더라고요. 오로지 회사 일에만 신경쓰고 그 외에는 아무것에도 관심도 없는 제 모습이 한심해 보이더라고요. 회사와 일에 대한 애정이 너무 컸던 탓이었을까요?


그렇게 무너졌을 때 가족이 보였습니다. 회사 일에 심취하고 있을 때에는 보이지 않았었는데 신기하더라고요. 아이들과 소소한 추억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자연스럽게 육아휴직을 신청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휴직을 하고 약8개월 동안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휴직이 몇 개월 남았지만 이만하면 됐다 싶어 조기에 복직하게 됐습니다.


Q3. 힘들고 지칠 때 가족이 보였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네요. 저도 아이들을 보면서 제가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찾았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비더미라클 님의 마음을 조금 이해되네요. 휴직 기간동안 아이들과 좋은 추억을 만드셨나요?


휴직을 하면서 목표 중 하나가 가정에 충실한 사람이 되자였습니다. 집안 일도 잘 하는 남편, 친구같은 아빠가 되고 싶었는데 이 두 가지를 다 이룬 듯 싶습니다. 휴직을 하고 집안일을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회사 다닐 때에는 제 일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막상 휴직을 하고 나니 제 전담이 되어 버렸더라고요. 아내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더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요리 하는 게 참 힘들었는데요. 유튜브가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전문가들의 레시피를 따라하니 기본 이상의 맛이 나오더라고요. 덕분에 와이프로부터 집안일이 체질이라는 칭찬도 여러 번 들었습니다. 의외로 집안 일에 제가 소질이 있구나 싶기도 했어요.


물론 집안 일이 손에 익기까지 힘들긴 했어요. 뭐든 처음이라 낯설더라고요. 혹시 휴직을 하시는 남성 분들이 있으시다면 저처럼 닥쳐서 하느라 고생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평소에도 요리와 청소를 내 일이다라고 생각하고 하셨으면 좋겠어요. 저도 휴직하고 반성 많이 했습니다.


아이들과의 관계도 좋아졌어요. 일 년에 3일이상 연차를 쓰지 않던 아빠, 주중엔 얼굴을 볼 수 없고 주말엔 밀린 잠을 보충하거나 못다한 일이 있다며 또 회사로 가버리던 아빠가 어느날인가부터 매일 집에 있으니 아이들도 처음엔 많이 어색해했죠. 그래도 휴직한 덕에 아이들 어린이집 등원을 제가 직접 시킬 수 있었고, 평일 오후에 놀이공원도 갈 수 있었어요. 둘째가 어리광이 심해 힘이 들 때도 있었는데요. 특히 병원 가는 게 힘이 들었어요. 하지만 휴직이 끝날 때 쯤엔 엄마가 아닌 아빠와 병원에 가고 싶다고 할 정도로 둘째도 저를 참 좋아해 주었네요.


Q4. 휴직을 하면서 가졌던 목표 중 "하나"가 가정에 충실하자는 것이라고 하셨는데요. 그렇다면 다른 목표도 있었을까요?


네 맞아요. 가사 일을 전담하면서 회사 말고 다른 쪽으로도 능통한 분야를 하나 만들어 보자는 게 또 다른 목표였습니다. 그게 바로 재테크였습니다.


휴직 직전 '경제적 자유'라는 말을 처음 듣고 가슴이 설레었습니다. 경제적 자유를 얻기 위해 이것 저것 배웠습니다. 부알못, 부린이었지만 경매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경매를 시작으로 부동산 투자에 대한 공부를 할 수 있었습니다. 아쉽게도 휴직 기간동안 단 한 건의 낙찰도 받지는 못했지만 청약을 공부한 덕에 얼마 전에 덜컥 청약에 당첨이 되어 얼떨결에 내 집 마련을 실현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과의 추억 만큼 소중한 경험이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래도 휴직하면서 내 집 하나 마련했으니 경제적으로도 크게 손해본 장사는 아니었던 것 같더라고요.


휴직하는 동안 무너지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던 것도 목표였어요. 휴직 초반 저 혼자서 시간을 잘 관리해 나갈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스스로 하루 하루의 시간과 생활 관리를 잘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휴직 초 다양한 오픈 채팅방(아침기상, 영어회화 외우기, 108배 하기 등)에 가입해 매일 인증하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다잡았습니다. 덕분에 호진님도 만날 수 있었고요. 그렇게 저를 통제하는 시간이 있었기에 아이들과 좋은 추억도 만들고, 집도 구할 수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해요.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말이죠.


Q5. 휴직을 하면서 많은 것을 얻었고, 그렇게 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었다는 사실이 인터뷰에서 느껴지는데요. 가장 인상깊었던 경험에 대해서 공유해 주실 수 있을까요?


많은 순간 중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순간은 휴직하고 처음으로 둘째 어린이집 등원 버스를 태우기 위해 아파트 단지 앞에 서 있었을 때입니다. 그 때 참 어색했습니다. 가급적 다른 사람들 눈에 안 띄고 싶었습니다. 그런 제 마음도 모른채 둘째는 어린이집 버스는 무조건 일등으로 타야 한다며 줄 서 있는 친구들을 밀쳐내며 말썽을 피웠습니다. 왜그런지 그때의 기억이 참 선명하네요.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 때 제가 힘들었던 건 엄마들 사이에서 저만 남자였기에 힘들었던 건 아니었더라고요. 그것보다 그 엄마들이 나를 백수라 생각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힘들었던 것 같았어요. 그래서 첫 날의 기억이 강렬하게 남았던 것 같아요. 물론 어느새 아주머니들과 잘 어울려 커피숍에서 담소를 나눌 만큼 친해졌지만 말이죠.


비더미라클님 또한 남의 시선에 자유롭지 못한 평범한 이 시대의 남성이었다. 하지만 휴직을 하면서 점점 남의 시선에 연연하지 않게 되었다. 아이들 어린이집 등하원을 당당히 시킬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 작은 행동처럼 보이지만 큰 변화로 느껴졌다.



Q6. 이제 복직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볼까 해요. 복직을 그러면 작년 11월에 하신 거죠? 벌써 1년이나 됐네요. 복직한 첫 날 어떠셨어요?


복직 2주 전쯤에 임원분과 점심약속이 있어 사무실에 한 번 들렀던터라 복직 당일은 큰 감흥이 없었습니다. 그냥 2주 정도 휴가 다녀온 느낌으로 인사하는 수준이었습니다.


문제는 일이었는데요. 복직을 하면서 가장 우려스러웠던 부분이 휴직 전에 했던 일을 그대로 하는 것이었는데요. 우려가 현실로 되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조금 안타까웠습니다. 일은 하던 일이라 그리 힘들진 않았어요. 휴직 들어가기 전 제가 직접 만든 매뉴얼을 보며 복직 후 업무를 진행해야 했었죠.


다행히 올 4월부터는 다른 업무를 맡게 되었는데요. 코로나 때문에 비대면 학습이 중요하게 부각되면서 그 쪽 일을 중심으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Q7. 복직하면서 적응을 잘 하셨던 것 같아요. 기존에 하던 일에서 조금 비껴서서 새로운 업무를 맡게 되셨는데, 어때요? 일은 할 만 하신가요?


복직 당시 맡은 업무는 기존 업무라 재미를 못느꼈는데, 올 4월부터는 그동안의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새로운 상품과 조직을 맡아 운영하는 업무라 제법 재미있습니다. 다행히 함께 일하는 팀원들도 굉장히 똑똑한 친구들이어서 저는 그들에게 잘 묻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욕심을 내려 놓은 것도 오히려 일을 재밌게 하게 만든 것 같습니다. 휴직 전 저는 제가 가장 돋보여야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저를 인정해줄 거라 생각했으니까요. 심지어 저는 회식자리에서도 최선을 다 해 술을 마셨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일희일비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일은 즐기되 평가에 대해 연연하지 않으려고요.



Q8. 술까지 열심히 마셨던 분이 남들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게 되었다는 말이 참 신기하네요. 역시 휴직의 영향이겠죠?


맞아요. 휴직의 영향이 큽니다. 휴직이 아니었으면 세상에 회사에서의 성공 말고 더 중요한거는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을거 같습니다. 휴직기간동안 관심없던 분야의 책과 관심없던 분야의 사람들 그리고 관심없던 곳을 다닌 덕분에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어린이집 버스 기다리면서 많이 단련이 되어서 그런지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어느정도 자유로워진거 같습니다.


회사에 대한 마음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복직하면서 와이프에게 딱 3년만 더 일하고 퇴사하겠다는 말을 했었습니다. 지금도 휴대폰 바탕하면에는 퇴사일까지 남은 일수를 알려주는 어플의 D-day가 하루하루 줄어들고 있고요. 그래서 회사에서의 목표는 회사 일 적당히 하면서 다음을 준비하는 시간으로 잘 활용하자가 복직 후 회사생활에 임하는 목표이자 마음가짐입니다.


사실 휴직 초반 많이 힘들었어요. 한동안 스스로를 원망했습니다. 남들은 잘 버티는데 난 왜 이렇게 주저 앉아 버렸을까? 연봉을 포기하고 쉬는 오늘이 과연 그마만한 가치와 의미가 있는 것일까? 내가 진행하던 업무는 누가 책임감있게 잘 챙기고 있을까?


하지만 초반의 불안을 극복하니 다양한 세상이 보였습니다. 내가 매몰되어 있던 세상에서 잠시나마 벗어나지 못했다면 또다른 세상이 있음을 모르고 살았을 겁니다. 가족들의 삶 속에 조금 더 깊이 들어가볼 수 있었던 것도 휴직을 통해 알게 된 세상이었습니다. 늦은감은 있지만 휴직을 통해 그때라도 조금 더 다양한 세상을 볼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그때 본 세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조금씩 새로운 성장을 준비해봅니다.


Q9. 휴직이 단지 쉰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는 게 비더미라클님의 이야기만 들어도 잘 알 수 있는 것 같아요. 새로운 성장을 준비한다는 말이 참 의미심장한데요. 기존의 성장과는 다소 결이 다른 또 다른 성장을 꿈꾸는 비더미라클 님의 의지가 눈에 잘 들어오네요. 아내 분의 반응은 어떠셨는지 궁금해요.


"너 인간됐다"


와이프가 휴직기간 제게 가장 많이 했던 말이었어요. 요즘도 자주 하고요. 그동안 제가 인간답지 못하게 살았었나 보더라고요. 예전의 제가 어땠는지 굳이 기억하고 싶진 않지만 아내가 좋게 받아주고 있어 참 좋아요. 아마 제가 부동산 공부를 안하고 청약에 당첨되지 않은채 가사일만 전담했으면 이런 소리를 못 들었을 수도 있었을 것 같기도 하네요. 어찌됐든 아내가 매우 만족해 하고 있다는 사실이 저는 참 뿌듯합니다.


Q10. 마지막으로 휴직에 대한 총평 시간입니다. 휴직을 후회하진 않으신지요?


휴직을 통해 인생을 변화시킬만큼 극적인 변화를 만들어내지는 못했습니다. 결국 돌고돌아 다시 사무실에 앉아 때론 웃고, 때론 좌절하는 삶을 똑같이 반복하고 있는 제 모습을 보면 쓴웃음이 나기도 합니다.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다시 원점이지만 한 바퀴를 돌아 다시 원점에 선 내 모습과 과거 원점에서 같은 자리만 맴돌던 내 모습은 더 이상 같지 않다고 확신합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돌아왔더라도 다른 모습으로 돌아온 저 자신에 대해 만족하고 있습니다. 후회도 하지 않고 있고요.




비더미라클님은 다시 휴직 전으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을 받아 걱정이 된다고 했다. 야근도 많고 주말 출근도 일상인 상황에서 업무에 치이다보니 그런 우려를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인터뷰를 하면서 비록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일을 하고 있다 하더라도 비더미라클 님의 삶은 휴직 전과는 결코 같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8개월의 시간이 그의 삶에서 충분히 자양분이 되었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비더미라클 님의 삶을 지탱해주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업무로 찌든 삶 속에서 자신의 삶을 소중히 가꾸는 비더미라클님의 일상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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