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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호진 Feb 02. 2021

돈은 못벌어도 N잡러입니다.

복직을 하며 나를 지키며 일학.

잘 버티는 중입니다


복직을 하고 벌써 넉 달이 지났다. 복직 첫 날, 설레는 마음으로 회사 생활을 시작했지만 회사 일이란 게 꼭 설레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힘들고 짜증날 때도 있었다. 아니 생각보다 힘들고 짜증날 때가 많았다. 휴직하며 그것에 무감각해진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 속에서 보람을 느낄 때도 "간혹" 찾아왔다는 점이다. 그 간혹 찾아오는 "보람"덕분에 회사 생활이 아주 힘들고 어렵기만 한 것은 아니란 걸 새삼 느끼고 있다. 덕분에 그럭저럭 잘 버틸 수 있었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것도 있다. 회사 일에 일희일비하지 않을 정도의 근력은, 어느 정도 생긴 듯 하다. 

그렇다고 회사가 곧 나이고 나는 회사의 핵심이다라는 생각을 갖고 일하는 것은 아니다. 한 때는 그렇게 사는 게 미덕이라 여겼고 지금도 주변에 그리 지내는 분들도 많지만 나는 굳이 그럴 생각은 없다. 회사에 내 몸과 영혼을 갈아 넣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만 계약관계에 입각해 ROI 관점에서 회사가 나에게 투자한 이상의 효용을 내겠다는 마음만 있을 뿐이다. 그저 계약관계에 충실하게 생활하는 것, 그게 내가 지켜야 할 도리가 아닐까 싶다. 그게 한결 가벼워질 수 있는 마음가짐 아닐까 싶다.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던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N잡러라는 타이틀 덕분이다. 나는 N잡러이기 때문이다. 


내가 벌이는 일들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N잡러는 많은 직장인들의 꿈이고 바람이었다. 그만큼 회사 생활이 힘들다는 반증일 수도 있을 것이다. 회사 외의 수입을 만들어 "퇴사"를 하겠다는 바람이 N잡러라는 말을 사람들에게 열광하게 만든 건 아닐까? 나 또한 N잡러를 꿈꿔왔고 복직하고 나서 N잡러로서 살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N잡러긴 하지만 수입이 거의 없는 N잡러라는 점이다. 앙꼬없는 찐빵같고, 김치없는 김치찌개같은 이야기지만 현실은 그렇다. 수입이 아주 조금은 있기는 하지만 "퇴사"를 꿈꿀만한 수준은 아니다. 시간당 수입으로 따지자면 최저임금에도 한참 못 미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스스로를 N 잡러라 칭하고 있다. N잡러라는 타이틀이 나를 입체적으로 만들고, 회사 생활을 훨씬 가볍게 할 수 있는 힘을 주기 때문이다. 내가 현실에 무감각해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충분히 나에게는 도움이 되는 타이틀이라고 생각한다.(고 믿고 싶다)



N잡러로서 내가 가장 애정을 갖는 타이틀은 작가다. 사실 작가라 불리는 게 상당히 민망하다. 고작 한 권의 책을 냈을 뿐이고 그것조차 아주 대단한 수준의 판매부수를 기록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민망함에도 불구하고 첫번째로 타이틀을 건 것은 내가 그만큼 글을 쓰는 일을 사랑하고 전력을 투구하기 때문이다. 출근하기 전 잠깐, 퇴근하고 나서 또 잠깐 짬짬이 시간을 활용해 매일 글을 쓰는 중이다. 물론 글을 쓴다는 게 블로그에 끄적이는 수준에 불과해서 블로거라 불려야 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지만, 책도 준비하고 있고 꾸준히 글을 쌓아가고 있으니 작가라 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여전히 민망하지만 말이다. 


나는 퍼실리테이터다. 지난 1월 버킷리스트 워크숍을 여러차례 진행했다. 열명 남짓의 분들과 온라인을 통해 100개의 버킷리스트를 함께 만들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나다움"을 발견할 수 있도록 이런 저런 방식을 고민했고 이를 워크숍에 반영했다. 퇴근하고 저녁 시간에 온라인으로 진행한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지만 충분히 보람있는 시간이었다. 사람들이 자신이 1년 동안 하고 싶은 일을 정리하면서 스스로이 가치를 발견하고 욕망에 충실해 지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도 힘이 나는 듯 하다. 앞으로도 다양한 워크숍을 만들어 운영해 볼 생각이다. 물론 당장 뭘 해야 할지 막막하지만 코로나가 열어준 온라인의 장에서 새로운 시도를 해볼 생각이다. 쫄지말고 당당하게. 


세번째 나의 N잡은 동기부여가(?)이다. 나는 여러 개의 모임을 운영하면서 사람들에게 열심히 동기를 불어 넣어주고 있다. 매일 습관을 만드는 모임에서도, 독서 모임에서도 사람들과 함께 하며 열심히 밀어주고 당겨주는 중이다. 물론 동기부여라는 게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나조차도 흔들릴 때가 많은데 누군가를 잡아준다는 게 가당치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역으로 내가 흔들릴 때마다 남들을 도와주면서 힘을 받곤 한다. 어쩌면 내 쓸모를 그 속에서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일에도 게을리 할 수 없기도 하다. 


네번째 나의 잡은 "남편"이자 "아빠"다. 굳이 이게 job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 또한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 직업의 비중이 예전에 비해 많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아이들도 어느 정도 커서 육아의 부담에서 덜어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이 일에 나의 일정 에너지를 쏟고 있는 중이다. 분명 나에게 필요한 일이고 이 일을 통해 내가 얻는 게 많으니까. 나를 규정하는데 없어서는 안될 것이기도 하고.


힘든 것도 사실이지만


이렇게 많은 일들을 어떻게 다하냐고 묻는 분들이 종종 있다. 시간관리를 잘 해서 효율적으로 한다는, 그래서 전혀 힘들지 않다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사실 솔직히 말하면 조금 버겁기도 해서 힘들 때도 많다. 가끔씩 가랑이가 찢어지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된다. 하나라도 내려놓지 못하는 나 스스로를 원망하기도 한다. 특히 몸이 말을 안들을 때는 더더욱 그런 감정에 휩싸인다. 특히 지난주 그랬다. 이러다 탈이 나는건 아닌가 싶기도 했고.


하지만 N잡러라는 타이틀을, 돈은 못벌지만 스스로 만든 그것을, 내려놓기는 힘들 듯 싶다. 이러다 탈이 날 수도 있겠지만 나의 능력을 믿고 조금은 버텨보련다. 그 과정에서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면서 에너지를 관리하는 방법을 터득하면 나아지지 않을까라는 무한 긍정의 마인드를 심어보고 싶다. 이렇게까지 무리를 해서 지내고 싶은 것은 직장생활을 하면서 나를 놓치지 않고 살고 싶어서다. 굳이 직장에 매몰된 채 지내기 보다는 다양한 나를 만들며 나답게 살고 싶어서다. 


“하나의 일에 전부를 쏟아붓지 않는 것, 스스로를 궁지로 내몰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다움'을 찾지 않고 직업의 안정성에 의존한 채 계급사회의 계단을 올라가면 엄청난 혼란에 빠질 거예요. 샐러리맨에 머물지 말고 농사, 자원봉사, 사회 공헌 등 다양한 스테이지에서 여러 개의 정체성을 갖고 사십시요. 그래야 후회가 없어요. 텃밭 얘기도 했지만 머지않아 사회관계자본이 돈과 상품 경제보다 중요한 시기가 올 거예요. 행복과 풍요의 기준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500만 엔의 월급쟁이가 200만 엔의 월급쟁이보다 행복할 거라는 단순 비교 시대는 끝났습니다.”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을 쓰신 재일 정치학자 강상중 교수가 김지수의 인터스텔라에서 인터뷰한 내용이다. 직장에 전부를 쏟지 않고 여러 개의 정체성을 갖고 사는 것, 그것이 교수님이 말한대로 후회없이 살아가며 나를 지키며 살아가는 방법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니, 이를 꼭 지켜가고 싶다. 


좀 더 행복한 나를 위해서 N잡러라는 타이틀을 놓지 않을 것이다. 비록 수입은 인세 조금 밖에 안되는 미미한 수준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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