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직장생활 2막

라이킷 30 댓글 1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최호진 Feb 18. 2021

[복직일기] 실력과 인성 중 어떤 것이 중요할까?

대기발령

얼마 전 회사에서 부장 한 분이 대기 발령을 받았다. 쉬쉬한 채 발령이 났지만 소문은 순식간에 퍼지고 말았다. 직원들 사이에 이런 저런 이야기도 오갔다. 사람들은 어쩌다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그 내막을 궁금해 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여기 저기 사람들을 통해 귀동냥으로 정보를 수집할 수 있었다. 정확한 사실이야 본인들만 알겠지만 대충 소문을 종합해 보니 "폭언"때문이었단다. 어떤 류의 폭언이었는지까지는 알 수 없지만 폭언을 들은 직원이 참다 참다 어딘가에 청원을 냈고, 그것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대기 발령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아직 결론이 나온 건 아니고.

이야기를 듣는데 기분이 좋지 않았다. 신고한 직원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우선 들었다. 누가 신고했는지는 잘 모르지만, 악의를 품고 선량한 사람을 몰아붙였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나는 힘들게 견뎌내고 결국 신고까지 하게 된 그 직원이 얼마나 힘들었을까라는 생각이 드니 마음이 불편했다. 사람들의 반응도 나와 비슷했다. 정황상 직원이 꽤나 힘들었을 것 같다. 그동안 쉬쉬했지만 그 분의 폭언 때문에 힘든 직원도 적지 않은 듯 했다. 언제라도 터질 게 이제서야 터졌다는 반응들이었다.

화가 나기도 했다. 저런 사람이 회사의 부장까지 올라갔다고 생각하니 회사의 구조가 엉망진창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는 이미 한 번 이상의 징계를 받은 사람이었다. 그것도 비슷한 사안으로 말이다. 몇 년 전 일이긴 하지만 결국 그는 지방 발령을 받기까지 했다. 그런 그가 시간이 지나면서 스리슬쩍 본사로 오게 됐고, 내가 휴직한 시기에 부장까지 오르게 된 것이다. 물론 과거에 잘못했다고 그것이 발목을 잡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개과천선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 변한 것 같지도 않았다. 다만 업무 능력은 탁월한 듯 했다. 그리고 그게 임원들의 눈에 들어 부장까지 오른 듯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를 중용한 사람들 또한 공범자가 아닐까 싶었다. 다들 자기와는 상관없다며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았지만.

사실 나는 그와 말도 섞어 본 사이도 아니다. 그렇기에 내 판단이 틀렸을 수도 있다. 어디까지나 나도 소문에 의지해 판단하고 있는 거다. 하지만 어찌됐든 솔직한 내 심정은 그랬다. 그리고 조심스럽지만 글로 남기고 싶었고.

"나의 아저씨"같은 부장은 없을까?

설 명절에 보기 시작해서 며칠 전까지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몰아보았다. 5일 정도만에 16부를 다 볼 정도로 재미난 드라마였다. 덕분에 오랜만에 드라마에 몰입하며 지낼 수 있었다. 가끔씩 드라마에서의 상황이 실제 상황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그만큼 드라마에서의 현실 묘사가 생생하기도 했고.

드라마에서 주인공 박동훈은 대기업 부장이다. 그는 업무 실력도 탁월하지만 직원들과의 관계 또한 원만했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던 파견 직원까지도 섬세하게 챙긴다. 덕분에 그는 사람들 사이에서 신망이 두터운 편에 속했다.

그가 상무로 승진했을 때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발표가 나자마자 직원들은 다같이 일어나 박수를 치고 박동훈을 축하해 줬다. 박수를 치는 직원들이 진심으로 그를 축하하는 것처럼 보였다. 같은 부서 직원들이니 당연히 그랬겠지만 그 속에서 나는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될만한 사람이 상무가 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물론 나의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에서 말이지만 그 장면이 너무 좋아보였다. 눈물이 날 정도로.

회사에서 안 좋은 사건이 발생했던 게 영향을 미쳤을까? 박동훈의 승진 장면이 자꾸 생각났다. 그리고 주변에 이런 상사가 어디 있을까 둘러 보게 되었다. 분명 어딘가에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내 눈에 아직 띄지 않았을 뿐.

성품이 훌륭한 리더십을 기대한다

회사는 이익을 내야 하는 조직이기에 실력이 사람을 평가하는 중요 기준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리더는 단순히 실력이 뛰어난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부서를, 본부를, 회사를 이끄는 조타수는 실력 뿐만 아니라 좋은 성품 또한 지니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좋은 성품이라는 게 지극히 주관적이라서 정확한 기준을 세우긴 어렵겠지만 적어도 실력이 좋다는 이유로, 인성도 보지 않고 사람을 중용하는 것만은 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직원들이 조직을 그리고 리더를 따라갈 수 있을 테니까.

동시에 이런 생각은 나를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이제 팀원 중에서 고참급이 된 상황에서, 과연 나는 얼마나 좋은 상사로 커가고 있을까 생각해 본다. 물론 알 수 없다. 나 스스로 잘 한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나의 말과 행동이 그들을 힘들게 할 수도 있다. 일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지지만 특히나 직장생활에서 나 스스로를 평가한다는 게 쉽지 않은 부분이기도 하다.

판단은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드라마를 보고, 안타까운 상황을 회사에서 지켜보면서 스스로에게 다짐을 할 수는 있게 됐다. 적어도 나의 입신양명을 위해서 누군가에게 비수를 꽂는 일은 하지 말겠다고 말이다. 나의 말과 행동이 칼날이 되어 누군가를 찌르며 살지는 않고 싶다. 더불어 용기가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누군가 힘들게 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분노하고 한 마디라도 할 수 있는 그런 직장인이 되고 싶다. 너무 이상적인 생각이라 실제로는 그렇게까지 되긴 어려울 순 있겠지만 글을 쓰는 순간만이라도 그렇게 다짐해 보고 싶다.

더불어 회사에서 좋은 리더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그들이 잘되길 바라고, 그들에게 축하할 수 있는 그런 리더들을 많이 만나고 싶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