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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호진 Apr 19. 2021

[복직일기] 자꾸 잔소리를 하게 됩니다.

꼰대가 되는 걸까요?


신입사원을 관찰하다


올해 초 우리 부서에 신입사원이 왔다. 오랜만에 보는 신입사원이 반가웠고, 그가 회사 생활에 잘 적응하길 바랐다. 안하려고 노력했지만 자꾸 "잔소리"가 나왔다. 너무 열심히 하려 하지 말라며 직장생활이라는 장기 레이스에서 중심을 잡아가며 살아가라고 말했다. 그는 과연 나의 잔소리를 좋아했을까? 내 기준에서는 잔소리 때문에 친해진 것 같았는데, 그의 속마음은 알 수 없었다. 


마흔이 되면 사람이 안변한다더니, 내가 그랬다. 그가 나의 잔소리를 좋아하는 것 같다는 "착각"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합리화"에 빠진 나는 신입사원을 계속해서 관찰했고 지적에 가까운 충고를 해 주었다. 그 친구가 맡은 일들을 잘 처리하길 바랐고, 회사에서 많은 것을 얻어가길 바랐다. 습자지처럼 쭉쭉 흡수하면서 자기 것을 챙겨갔으면 했다. 아쉬움 때문이었다. 내가 신입사원 때 하지 못했던 것들이 생각나서, 그리고 그때 나를 잡아줬던 선배들이 떠올라서.


물론 우리 팀도 아니었기에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많지는 않았다. 왔다 갔다 하면서 말 한 번 걸어주고, 중간에 밥 사주고 하는 게 다 였다. 다행히 밥 한번 사달라는 말을 가끔씩 (자주 했더라면 거부감이 컸겠지만) 하였기에, 신입사원도 나를 그렇게 부담스러워하지만은 않는구나라고 생각 아니 착각 아니 합리화할 수 있었다. (아니면 공짜 밥을 먹고 싶었을지도) 





며칠 전의 일이다. 평일 오후 프린트물을 찾으러 복합기 앞으로 가는 길에 후배와 눈이 마주쳤다. 뭔가 한가해 보이는 그에게 잠시 브레이크 타임을 갖자고 제안을 했고, 흔쾌히 그는 나를 따라왔다.  그리고 그와 그의 팀 선배 과장과 셋이서 1층 로비에서 간단하게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냥 이런 저런 잡담을 할 요량이었다. 하지만 나의 계획은 다시 진지함으로 흘러 버리고 말았다. 


"너 요즘 뭐하고 지내냐?"

"저 요즘 그냥 아무것도 안해요. 친구들 만나서 술 마시는 게 전부네요"


신입사원의 이야기를 들으니 내 안에 꼰대력이 다시 한 번 발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안된다며 설교를 늘어 놓았다. 다시 오지 않을 서른을 소중히 여기고 가치있게 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술 마시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도 충분히 가치있는 시간이겠지만, 자기 자신에게 쌓이는 다른 일들도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의 의사 따위는 물어보지 않은 채 내 말을 다다다 해 버리고 말았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신입에게 미안하다. 정말 싫었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진심이었다. 그가 잘 살았으면 했다.


팀장에게도 잔소리하는 팀원


써 놓고 보니, 정말 상황이 별로였다는 게 실감나는데, 나의 잔소리는 비단 신입사원에게만 향하는 건 아니었다. 주변의 몇몇 분들에게도 내가 휴직하며 느끼고 얻었던 것들에 대해서 "설교" 아닌 "설교"를 늘어 놓을 때가 많다. 꼭 휴직을 하라는 건 아니었지만 그냥 이대로 회사 생활만 하다가 지내지는 말자며 자신을 돌아보라고 권하기도 한다. 


그런 설교 때문이었을까? 어쩌다가 친해진 두 분과는 책을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독서 모임도 할 수 있었다. 여기 저기 많은 사람들과 독서 모임을 해 왔지만 회사 사람과는 이런 만남은 처음이었다.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독서 모임 자체가 처음이라고. 노희영 씨가 쓴 <노희영의 브랜딩 법칙>을 읽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장강명 작가가 말했듯이 책으로 이야기를 나누니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물론 그 끝은 나의 잔소리로 끝났지만 말이다. 


나의 잔소리는 요즘 어디로 튈 줄 모르는 천방지축이다. 급기야 팀장님에게까지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이러다 잔소리 끝판왕이 되는 건 아닌지 살짝 염려가 되지만 팀장님께도 제2의 인생을 준비하라고 채근하며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팀장은 내가 책을 낸 것도 모르는 눈치고(어쩌면 알 런지도 모르겠다) 나의 사적인 생활에 대해서도 크게 관심은 없는 사람이지만 다행히 내가 해주는 잔소리는 잘 들어주는 편이다. 물론 잔소리가 행동의 변화로 이어지는 것 같지는 않지만 언젠가 내 이야기가 먹힐 것이라는 생각으로 포기하지 않고 이야기 하는 중이다. 


회사 밖에서 배운 것들을 회사에서도 나누고 싶다


복직을 하면서 가졌던 소명 하나가 있다. 휴직 기간 동안 회사 밖에서 얻었던 것들을 회사 안 사람들에게 다시 나누고 싶다는 게 그 소명이었다. 버킷리스트 100개 만들기 같은 워크숍도 해 보고 싶었고, 한달 습관 모임도 만들어 보고 싶었고, 휴직을 원하는 사람들 상담도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지난 6개월 동안 그런 일을 벌이는 게 쉽지는 않았다. 막상 하려 하니 막막했다. 아예 모르는 사람들이라면 공지를 띄우고 호기롭게 나설 수도 있었겠지만, 회사 안이라 그런지 더 조심스러웠다. 괜히 튀었다가 (물론 지금도 충분히 튀는 행동을 많이 하고 다닌다) 정을 맞을까봐 겁이 났던 것도 있었고. 


그래서 잔소리로 이어진 것 같기도 하다. 프로젝트를 하지 못한 아쉬움이라고 할 수도 있고, 프로젝트를 하기 위한 예열 작업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유야 어찌됐든 (실은 나도 이유를 명확히는 잘 모르겠다) 이런 식으로라도 내가 경험하고 느낀 것들을 퍼뜨릴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잔소리를 하고 있다. 몇 명에게라도 나눌 수 있으니 그것으로도 충분한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물론 후배들에게는 여전히 조심스럽다. 특히 신입사원에게 꼰대 아저씨로 비춰질까봐 걱정도 된다. 하지만 내가 진심이라면, 신입사원도 내 마음을 이해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오늘도 잔소리를 하고 다닌다. 우리 회사 사람들이 나의 말 몇 마디 덕에 우물 밖 세상에 대해서 궁금해 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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