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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호진 Aug 26. 2021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로 본다

자기 주장을 펼치는 연습이 필요하다.

후배의 파견


얼마 전 회사 후배가 지주사로 파견을 갔다. 하고 있는 일이 그룹 통합 프로젝트로 격상(?)되는 바람에 연말까지 끌려가서 일을 하게 됐단다. 가끔씩 같이 밥을 먹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사이었는데 간다니 서운했다. 그리고 후배의 파견에 오지랖 넓게도 걱정이 들었다. 지주사 일이 힘들고 어려워서 걱정이 되는 건 아니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환경에 잘 적응하는 터라 일의 무거움이 크게 개인을 짓누를 것 같지 않았다.멀리서 보아온 후배의 태도 역시 그런 우려를 불식시켰다. 


다만 걱정되는건 그의 개인 인사 평가였다. 연말까지 파견이라 개인 평가를 어디서 받느냐가 중요한데, 지금 있는 부서장이 그를 평가한다고 했다. 눈에서 안보이면 멀어진다는데 몇 년 안에 과장으로 승격해야 하는 후배의 고과가 괜히 꼬이는건 아닌가 걱정이 됐다. 본인이 원해서 가는 것도 아닌 터라 당당히 평가에 대해서 잘 말씀을 드리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맞게 조언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그에게 전달했다. 우선 부장에게 떠나기 전 "잘" 말해두는 게 필요해 보였다. 물론 "잘"의 적정선이 참 어렵다. 부장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자기의 입장과 처지를 명확하게 전달하는 게 중요한데 그 선을 넘나드는 것이 쉽지 않다. 물론 그것까지 조언을 줄 수는 없을 것 같았고, 후배가 알아서 해야할 거라 생각하고 "잘" 말해 보라 권했다. 가만히 있으면 이도 저도 안되는 수가 있으니 말이다.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 된다


한 회사를 쭉 다녀서 내 개인의 경험을 일반화 시키기는 어려울 수도 있지만 어찌됐든 우리 회사는 조직 내에서의 융화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주머니 속의 튀어 나온 송곳을 인정하고 격려하는 분위기라기 보다는 모난 돌이 정맞는다를 생각하며 튀지 않으려 조심하는 분위기다. 그러다 보니 조직의 발전을 위해서 개인이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곤 한다. 월급을 주고 복지혜택을 제공하니 당연한 것일수도 있지만 가끔씩은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개인의 개성이 묻히는 분위기랄까?


평균 근속연수가 긴 것도 적지않은 영향을 준다. 20년 넘게 같은 회사를 다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평생 직장의 개념으로 이 회사를 다니다 보니 사람들은 "가족같은" 회사 분위기를 지향한다. 그러다보니 가족같은 사이라 좋은 게 좋은 거다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래서 자기 주장을 펼치는 것이 어색한 분위기다. 특히 개인의 잇속을 챙기는 모습은 이기적인 모습으로 치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뒤에서 아부하며 교묘하게 자기의 잇속을 챙기는 경우는 많지만 술자리가 아닌, 골프장이 아닌 공식적인 자리에서 개인의 평가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에 대해서는 피하려는 분위기다. 


문제는 아무 이야기도 안하다 피해를 보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는 점이다. 가만히 묵묵히 자기만의 일을 열심히 수행한다고 꼭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은 아니다. 물론 회사가 평가를 잘 받기 위해서 다녀야 하냐며 공격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내가 한 것에 대해 공평한 평가를 받아야 하는 것도 중요하기에 이런 것들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말하는 게 중요해 보였다. 가만히 있다 가마니가 될 수 있으니까.



순응하는 것이 오히려 악을 행하는 것일수도 있다?


개인의 의견을 명확히 말해야 하는 건 꼭 개인의 잇속을  챙기기 위해서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업무를 조금 더 발전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도 개인의 의견을 명확히 하는 게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자기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상사에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이런 생각은 최근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를 읽으며 확신으로 바뀌었다. 50개의 사상(꼭 철학을 주제로 하진 않았지만)에 대해서 하나씩 정리한 이 책에서 나는 악의 평범성에 대한 부분에 눈길이 갔다. 한나 아렌트가 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정리한 이 챕터에서 악의가 없어도 누구나 악인이 될 수 있다는 말에 소름이 돋았다. 한나 아렌트는 유대인 학살 계획의 주도적 역할을 수행했던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보면서 아이히만의 평범성에 놀랐다고 했다. 그리고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라는 부제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썼다. 


"인류 역사상 어디에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악행은 그 잔인함에 어울릴만한 괴물이 저지른 것이 아니라 생각하기를 멈추고 그저 시스템에 올라타 그것을 햄스터처럼 뱅글뱅글 돌리는 데만 열심이었던 하급 관리에 의해 일어났다는 주장은 당시 큰 충격을 주었다"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p.101>


물론 내가 일하는 회사의 일이 나치의 유대인 학살계획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열심히 하라는 대로만 하는 것이 조직의 발전에 해가 됐던 몇몇의 케이스들이 생각났다. 위에서 시키는 일이니까 무조건 해야 한다고 열심히 하는 사람들의 얼굴도 그려졌다. 그들의 선한 얼굴과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무서웠다. 오히려 그것이 악을 저지를 수 있다고 생각하니 안타까웠다. 아이히만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도 본인의 잘못에 대해서 인지하지 못하고 있겠지? 


그런 점에서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 특히 위계질서가 강한 회사라는 조직에서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열심히 하는 것을 능사로 여겨서는 안된다. 최선을 다해 성과를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하는 일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지니고 그것에 대해 큰 틀에서 조망해 보는 노력 또한 필요하다. 더불어 아니라고 생각될 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또한 중요하다. 쉽진 않겠지만 한 번씩 시도해 보는 게 중요하다. 


<철학이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에서는 스탠리 밀그램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그는 자신이 실험한 결과를 바탕으로 자신의 양심과 자제심을 자각시키는 아주 조그마한 지지라도 받으면, 사람은 누구나 권위에 대한 복종을 멈추고 양심과 자제심에 근거한 행동을 취한다고 설명한다. 이 부분을 보면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명하는 것이 어려울 때에는 그런 주장에 대해 동의를 하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꼭 자기 의견을 표출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수도 있다. 의견을 펼치지 못해 좌절하기 보다는 그런 의견을 내는 사람들이 제 풀에 꺾이지 않도록 힘을 주는 것도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생각 또한 할 수 있었다. 



천천히 연습해 보자


자기 주장을 "잘" 펼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주입식 교육에 익숙한 우리로서는 주장을 펼쳐볼 기회가 적었기에 주장을 펼치는 것을 어려워 한다. 자칫 주장을 펼치다 상대방의 감정을 건드리는 경우도 잦다. 분위기도 한 몫한다. 하라면 하고, 까라면 까라는 분위기가 여전히 팽배하다. 그런 환경에서 내 주장을 펼치다 "돌아이"로 취급 받기 일쑤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주장을 펼치는 일을 계속 해야 한다. 무비판적으로 순응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깨닫고 자기 생각을 명확히 표현하는 연습을 계속해야 한다. 물론 자기 생각을 명확히 하려는 노력도 동시에 해야 한다. 하고 있는 일에만 매몰되지 않고 보다 큰 틀에서 바라보는 것도 필요하며, 주변의 사람들과 끊임없이 토론도 해야 한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확보하게 되고 자기 주장을 할 수 있는 경지에 오르게 된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 아무 생각없이 하라는대로만 한 것이 엄청난 악행이 될 수 있다는 말을 우리는 항상 염두에 두었으면 한다. 그리고 그것이 자기에게도 해당될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경고를 외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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