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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호진 Aug 19. 2021

받아들임과 놓아버림의 한 끗차이

지금 이 순간이란 프레임으로 바라보기

무기력했던 과거


얼마 전 한 모임에서 글쓰기를 주제로 발표할 기회가 생겼다. 덕분에 몇 년간의 나의 글쓰기 경험에 대해 정리했다. 그리고 며칠 간의 정리 덕에 매일 글을 쓰는 나의 루틴과 그 과정을 통해 책을 펴냈던 경험까지 엮어, 약 40분 정도 30여명의 사람들께 내 경험을 공유할 수 있었다. 


발표에서 내 소개를 하면서 글을 쓰기 전 나의 힘들었던 과거 직장생활 이야기도 꺼냈다. 글쓰기 이전의 나의 상태에 대해서 설명하는 게 필요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글쓰기 이전 나의 삶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무기력"이라 할 수 있다. 당시 나는 회사 생활이 힘들었다. 왜 그런지 알 수는 없지만(물론 나중에 그 이유를 알게 됐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고, 회사 상사들의 지시가 못마땅했다.  겨우겨우 버티며 일했고 그 여파는 퇴근 후 고스란히 전해졌다. 집에 와서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삶을 살았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 주구장창 TV를 보는 게 일상이었다. 그런 모습이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에도 영향을 주었다. 삶의 의욕이 없으니 아이들에게 잘 할 리 만무했다.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회사 생활이 힘드니까 그렇게 생활하는 걸로 스스로 위로를 받았던 것 같다. 어쩌면 그렇다고 합리화 한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고 다른 것을 할 용기가 있던 것도 아니었다. 뭘 한다 해도 지금의 상황이 딱히 달라질 것 같지도 않았다. 여전히 회사 일은 힘들고, 상사와는 합이 잘 맞지 않을 것 같았다. 물론 그 이면에는 새로운 도전을 해서 실패할까 두려운 마음도 있었다.


회사 생활에, 아이들 육아에 그냥 하루 하루 버틸 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선택한 건, 나를 놓아버리는 것이었다. 무책임하게도. 


받아들임


그 이후 몇 번의 계기로 나의 삶에 균열이 생겼다. 아이와 여행을 다녀온 후 기록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블로그를 시작했고, 우연히 출장에서 스타트업 대표를 알고 새 세상에 눈을 떴다.  몇 권의 책을 읽다 따라해 보고 싶다는 목표를 가졌다. 2018년 초에는 뭐라도 해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버킷리스트 100개를 만들면서 내 속에 성장의 욕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균열은 휴직으로 이어졌고, 휴직 기간 동안 글을 쓰고 달리고 사람들과 소통하며 나를 가꾸는 삶에 내맡길 수 있었다. 


휴직의 좋은 경험을 바탕으로 다시 회사원의 삶으로 돌아왔다. 처음에는 설레던 회사였지만 몇 달 지내고 보니 휴직 이전과 아니 내가 무기력에 빠졌던 때와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회사의 위력은 생각보다 강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회사 생활의 삶이 예전과 달리 무기력으로 연결되진 않았다. 그리고 상황이 비슷했지만 회사에서의 삶 또한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물론 이전과 달리 회사 밖에서의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것도 영향을 주었겠지만, 그 이면에 가장 큰 차이는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였다는 점에 있었다. 회사라는 곳에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물론 과거에도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때는 어떻게 해서든 그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는데, 지금은 그 상황을 인정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게 되었다는 점이 그때와 달랐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날씨가 맑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된다는 마음이랄까?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졌고, 울컥하는 상황이 수시로 오갔지만 무기력한 과거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게 됐다. 적당히 즐기며 적당히 버티는 삶을 살고 있는 중이다.


프레임을 어떻게 가져가느냐의 문제


얼마 전 최인철 교수의 책 <프레임>을 읽었다. 어떤 프레임으로 세상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내 삶의 태도가 달라진다는 작가의 지적이 인상적이었다. 뭐든 마음 먹기 달렸다는 말이 프레임이라는 고급진 말로 포장되니 더 있어 보이기도 했다. 


책 말미에는 작가가 제안하는 11가지 프레임이 나오는데 그 중 세 번째 프레임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 여기 프레임을 가져라"라는 것인데 이 말이 좋았다. 물론 여러 번 들은 말이다. 이 책에서만 언급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나는 이번 책에서도 이 문구가 나의 눈길을 사로 잡았다. 여전히 지금 여기의 프레임을 갖지 못해서였던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이것이 나에게 너무나 중요하기에 볼 때마다 마음을 다잡는 것 같기도 하다. 


한 끼 대충 때우자는 식으로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한 한 끼 식사를 아무렇게나 홀대하지 말고, 그 음식 속에 들어간 재료의 맛을 하나하나 음미해보라. 축하할 일이나 축하해줄 일이 있으면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서 마음껏 축하 받고 축하를 해줘라. '지금 여기'의 프레임으로 현재의 순간을 충분히 즐겨라 (프레임, p.278)


작가가 말했던 것처럼 지금 누리는 시간을 홀대하기 보다는 적극적으로 음미하고 인정해 주는 게 필요해 보인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짜증나고 힘들더라도 스스로 토닥여주고 칭찬해 주는 것도 중요하다. 내가 쓰고 있는 보고서가 비록 그 영향이 미미할지라도 의미가 큰 것이라고 스스로 격려해 주고, 민원 고객을 응대하는 일이 힘들지라도 스스로 따뜻하게 위로해주는 그런 태도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출발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생각하니 과거의 무기력했던 것과 지금의 받아들이는 삶이 아주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닌 듯 하다. 오히려 한 끗 차이인 것 같기도 하다. 어떤 프레임으로 직장을 바라보고 지금의 순간을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인 듯 하다. 내 지금의 삶을 소중히 여기는 것 지금을 즐기려고 노력하는 마음이 그래서 중요한 듯 싶다. 적당히 버티지만 그 속에서 적당히 즐기는 삶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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