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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호진 Jun 16. 2021

워라밸보다 라워밸을 우선 고민하자

일과 삶의 균형에서 "삶"을 먼저 가꿔보자


4년전 봤던 다큐멘터리 "퇴사하겠습니다"


얼마 전 한 단체 채팅방에서 “일”에 대한 다소 심도깊은 이야기가 오갔다.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다들 적게 일하면서도 안정적인 수입을 기대했다. 당연한 바람이었다. 하지만 일이 단순한 밥벌이로 그치는 것에 대해서도 다들 경계했다. 어떤 방식으로든 일이 개인의 삶에 의미를 부여했으면 했다. 나 또한 내가 하는 일이, 나 스스로에게 만족감을 주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는 것이길 바랐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그런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하는 일을 그렇게 만들어 보고 싶었다. 


그러던 와중에 한 분께서  2017년 SBS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 “퇴사하겠습니다”를 소개했다. 일에 대한 의미를 담고 있는 다큐멘터리였기에 소개해 주신 듯 했다. 동명의 책을 쓴 “이나가코 에미코”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다큐멘터리를 4년 전 감명깊에 봤던 터라 단체 채팅방의 소개가 반가웠다. 그리고 방송을 보자마자 리뷰를 썼던 게 기억나서 그 때의 생각을 더듬어 볼 수 있었다.


당시 나는 다큐멘터리 속 한 인터뷰에 공감하며 눈물까지 흘렸다. 회사를 다니면서 열심히 일했을 뿐인데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잘 하는 것도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한 분의 이야기에서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꼈다. 회사가 아무리 힘들어도 “퇴사하겠습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없었던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경제적 이유도 한 몫 하겠지만 당장 내가 나가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하기때문이 아닐까?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나를 지키기 위해서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챙기는 게 중요해 보였다.


다큐멘터리에서는 회사를 당장 그만두지 못하더라도 회사에 대한 나의 태도를 바꾸는 게 중요하다고 했는데 그 부분이 나의 마음을 한 번 더 움직였다.회사를 잘 이용하는 게 중요하다며 “이나가코 에미코”의 말을 전했다.

출처 : SBS 스페셜 "퇴사하겠습니다"
마지막 순간, 회사에 ‘고마워’라고 말할 수 있는 자신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회사를 다니면서 어떻게 하면 “고맙다”라고 작별인사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해 구체적인 방법을 다큐멘터리에서는 언급하진 않았지만, 회사를 다니며 내 것을 잘 지키며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회사와 나의 관계에 대해서 독립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겠거니 싶었다.  



진정한 워라밸에 대해 고민하다


4년이 지난 2021년, 나도 바뀌었지만 회사도 많은 부분 변해 있었다. 휴직을 하고 나서 돌아온 회사는 예전보다 근무 환경이 훨씬 좋아졌다. 워라밸이 사회 전반에 부각되면서 퇴근 시간을 지키는 게 중요해졌다. 주52시간 제도의 영향도 컸다. 물론 이 제도를 적용받는 회사가 그리 많지 않은 점은 아직 아쉽기는 하지만, 다행히 내가 다니는 회사는 제도의 영향을 크게 받는 터라 새로운 제도를 철저히 준수했다. 감사한 일이다. 덕분에 야근 문화도 사라졌고 유연한 출퇴근 제도도 생겼다. 8시부터 10시까지 원하는 시간에 출근할 수 있게 되었다. 나도 아침 8시에 출근해 오후 5시에 퇴근할 수 있게 되었는데 덕분에 저녁시간이 여유로워졌다. 그 시간을 활용해 이런 저런 사이드 프로젝트도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말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고 했던가? 하나가 충족된 것만 해도 어마어마한 것 같았지만 그 속에서 더 큰 것을 나는 바랐다. 그 바람 속에는 과연 출퇴근 시간을 잘 지키는 것이 워라밸의 핵심일까라는 고민도 포함되어 있었다.  물론 야근을 하지 않는 것만해도 큰 것이지만 적어도 8시간의 이상을 보내는 회사에서의 시간이 괴롭고 힘든 것이라면 그게 과연 일과 삶의 균형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싶었다. 힘들게 일한 후 지쳐서 퇴근하는 것이, 아무리 정시 퇴근을 한다 하더라도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적어도 그런 식으로 일하는 것이 회사를 졸업할 때 "고맙다"는 말로 연결되긴 어려워 보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진정한 워라밸의 핵심은 물리적인 것이 아닌 정서적인 것에 있는 것 아닐까 싶었다. 물론 정시 출근 정시 퇴근도 중요하겠지만, 그 속에서 일하는 기쁨 과 슬픔이 나의 생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면서 일과 삶이 시너지를 만들어 내는 게 더 필요해 보였다. 물론 "일"이라는 게 본질적으로 힘들고 어려운 것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다소 이상적인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워라밸에서 "워크"를 잘 만들어 가는 것이 삶의 균형에 중요한 부분으로 보였다. 



라이프를 우선 바꿔보자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일에 대해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갑자기 마음을 바꿔 회사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가져 보는 게 중요할까? 사실 그렇게 내 태도를 바꿀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다들 잘 알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 손바닥 뒤집듯 그렇게 쉽게 바뀌는 게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일에 대한 관점을 달리 하기 위해서는 반대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일에 집중하기 보다는 오히려 "라이프"에 신경을 쓰는 방법을 우선 해보는 것도 방법이라고 본다. 회사를 우선으로 보지 말고, 퇴근하고 나서의 나의 삶에 대해서 우선 의미를 찾고 나면 그것을 바탕으로 일을 대하면 태도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방법이 적어도 나에게 유효했다. 나에게는 "블로그"가 그 시작점이었다. 처음에는 편안하게 별 생각없이 시작했던 블로그였다. 큰 아이가 7살이던 해, 아이와의 여행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에 블로그를 시작했다. 그게 어영부영 하다 보니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발전했고, 어떻게 하다 보니 매일 글을 쓰는 습관으로 이어졌다. 7년간 블로그를 했고, 지난 1000일 동안에는 매일 블로그에 글을 썼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나 스스로 재미를 느낄 수 있었고 내 글이 주는 책임감도 느낄 수 있었다.


블로그기 시작이었다면 나의 활동에 불을 지펴 주었던 것은 "버킷리스트 100개 만들기" 프로젝트였다. 우연히 지인의 소개로 시작된 100개를 써보는 일은 나 자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들었다. 당시 나 또한 "퇴사하겠습니다"의 인터뷰이처럼 내가 뭘 잘하고 뭘 좋아하는지 알 수 없어 힘들어 했다. 뭐라도 해보고 싶은데 그게 뭔지 알 수 없어 괴로웠다. 하지만 100개의 하고 싶은 일을 쓰다 보니 내가 하고 싶은 크고 작은 일이 보였다. 그리고 그 속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 둘 실행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이 꽤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4년째 버킷리스트 100개를 만들고 이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내 삶이 다이내믹해졌다. 덕분에 나는 퇴근 이후의 삶이 꽤나 분주해졌다. 끊임없이 새로운 프로젝트를 만들며 즐기는 중이다. 


신기한 건, 그렇게 활동을 하면서 지내다 보니 회사 생활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우선 회사에서 일하는 게 그리 괴롭지만은 않다. 퇴근 이후의 삶이 기다리고 있어서인지 그럭저럭 견딜만 하다. 그리고 그럭저럭 견딜만하다고 생각을 하다 보니 내가 하고 있는 일들 중에서도 "재미"있는 부분을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지금은 마케팅 일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좋은 마케터가 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이 내가 회사 밖에서 하는 일과 무관하지 않아 보여 흥미롭게 일하고 있는 중이다. 덕분에 새로운 아이디어도 불쑥 튀어 나와 일의 재미를 느끼기도 한다. 물론 매번 재밌고 즐겁지만은 않지만 이따금씩 느끼는 즐거움이 일에 활력을 주는 중이다. 


회사에 연연하지 않게 되는 것도 회사를 즐겁게 다니게 되는 힘이 된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많은데, 굳이 회사 생활에 목 멜 필요가 없어 보였다. 특히 회사 기준의 성공 지표인 승진을 크게 생각하지 않게 됐다. 덕분에 승진에 중요한 것들이라 할 수 있는 일들을 하지 않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특히 상사에게 잘 보이기 위한 일을 하지는 않게 되면서 직장생활의 큰 어려움이 사라진 기분이다. 


그렇다고 "라이프"에만 치중해서 살고 있지는 않다. 회사에서 대충 일하는 것이 회사 밖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 스스로 떳떳해 지기 위해서는 그리고 좋은 에너지를 계속해서 이어가기 위해서는 라이프에서 만들어 낸 좋은 기운을 "일"에서도 잘 활용해야 한다. 그래야만 라이프의 활동도 즐겁게 이어갈 수 있게 된다. 최근 슬럼프를 겪으면서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회사 일과 라이프가 유기적으로 연결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일이 힘들다고 생각하니 퇴근 후의 라이프에서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 


라워밸부터 먼저 해보자


그렇게 생각하니 내가 회사 밖에서 진행하는 다양한 일들이 감사했다. 그리고 이를 만들어 준 블로그와 버킷리스트 100개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느낄 수 있었다. 라이프에서 만들어 간 것들 덕분에 내가 잘 버틸 수 있었고, 이로 인해 회사 일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즐기지는 못하더라도 덜 괴로울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런 방식이야 말로 회사에 고맙다고 말할 수 있도록 나를 만들어 가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라이프에서 얻은 기쁨이 일로 연결되면서 그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즐기며 일하고, 또 그것이 다시 라이프로 연결되는 방식이 내게는 꽤 유용해 보였다.


그런 점에서 워라밸보다 라워밸이 필요한 게 아닐까 싶다. 힘든 일에서 의미를 찾아가는 것보다는 내가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일들 속에서 재미를 느끼는 게 더 쉬운 방법이 될 테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일상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나라도 그냥 한 번 해 봤으면 좋겠다. 특히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잘 하는지 막막한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이런 방식이 필요해 보인다. 하고 싶은 일이 다소 막연하다면 우선 편안하게 하고 싶은 일을 적어 보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도 방법이다. 버킷리스트 100개를 쓰면서 내가 찾아갔던 것처럼 뭐라도 좋으니 우선 한 번 써보고 그 속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 속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선순환을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 언젠가 우리가 퇴사하는 날 즐겁게 인사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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