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령, 기상령을 넘어서는 방법
한계령보다 높은 현관령,
현관령보다 높은 기상령
추운 겨울이다. 주로 아침에 달리는 나로서는 밖으로 나가기 꽤나 힘든 시기가 됐다. 일어나는 것부터 힘들다. 새벽 6시만 해도 아직 어둑하다. 그러다 보니 뇌가 더 자야할 시간이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 같다. 침대의 유혹도 꽤나 강렬하다. 포근한 이불 안을 벗엇나기가 힘들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침대 밖을 나와도 집 밖을 나가기가 힘들다. 그럼에도 겨우 겨우 눈을 비비고 옷을 갈아입고 꾸역꾸역 나가는 중이다. 이유는 하나다. 달리고 나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달리기 모임 단톡방에서 웃긴 이야기가 나왔다. 자전거로 한계령을 넘는 게 힘들다는 이야기였는데, 어쩌다 보니 그것보다 힘든 것이 기상령과 현관령이란다. 아침에 일어나는 고개를, 그리고 현관문 밖을 넘어서는 장애물을 넘는 게 꽤나 어렵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라고 했다. 처음에 듣고 웃긴 이야기 정도로 생각했는데 정말 딱 맞는 말이었다. 한계령을 넘어 본 경험이 없어 비교하긴 어렵지만 달리기를 할 때 아침에 일어나서 현관을 나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 지를 잘 알고 있으니까. 특히 추운 겨울엔 더더욱!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만 사람의 "의지"에 기댈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기필코 기상령과 현관령을 넘어야겠다는 마음을 품고 넘어서야 한다.
하지만 인간의 의지를 계속 높게 유지하기는 꽤 어렵다. 의지력은 신기하게도 파도처럼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의지력이 낮아졌을 때 발생한다. 소위 말하는 슬럼프의 시기다. 괜찮겠거니 싶어 몇 번 안하게 되면 공들여 쌓은 탑이 스르륵 무너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쌓는 건 힘든데 무너지는 건 금방이다. 달리기도 마찬가지다. 열심히 습관으로 만들었는데 한 번, 두 번 거르다 보면 금세 남의 나라 이야기가 되어 버리고 만다.
그래서 의지를 유지하기 위해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습관을 만들기 위해 환경을 잘 만들어 놓는 것과 같은 이치다. 물론 이에 대한 책들이 많이 나와 있어 읽어보면 좋겠지만 나의 경우 최근 달리기의 의지력을 높이기 위한 몇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 방법이 꽤나 유용했다.
잠들기 전 옷 챙겨 놓기
우선 나는 요즘 잠들기 전 옷을 챙겨 놓는다. 아침에 달리기를 하러 나갈 때 어떤 것들을 챙겨 입을 지를 다 꺼내놓고 잠이 든다. 특히나 겨울철인 요즘은 챙길 것들이 많다. 운동복부터 방한장비까지 등등을 쭉 꺼내 놓는다. 그러면서 아침에 뛰어야지라는 마음으로 잠이 든다.
신기한 건 그렇게 하면 다음날 아침 일어나는 게 수월하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전날 옷을 챙기면서 스스로 다독인 것이 도움이 된 듯 하다. 챙기면서 의지력이 올라온 셈이다. 이미 챙겨놓은 것들이 있어 후다닥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것도 현관을 넘기 수월하게 만든다. 이미 챙겨 놓은 게 아까워서라도 어떻게서든 나가게 된다.
달리는 사람 가까이 두기
주변 사람들을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근묵자흑이라는 말처럼 주변에 어떤 사람들이 많냐에 영향을 받기 좋다. 다른 사람들이 뛰고 있는 것을 보고 있으면 나의 의지도 솟기 마련이다. 달리기 모임 같은 것에 참여해서 같이 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확실히 서로 함께 하면 하기가 수월해진다.
하지만 꼭 모임일 필요는 없다. SNS 상에서 달리기를 자주 하는 사람들을 팔로우 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들의 달리기 모습이 나에게든 큰 동기 부여가 되곤 한다. 좋은 영향을 많이 받는다면 충분히 SNS도 활용가치가 있다. 물론 모 축구 감독은 "트위터는 인생의 낭비다"라며 SNS를 경계했지만 잘 활용하면 의지력을 높이는데 도움이 된다.
기록하기
마지막으로 기록하는 것도 방법이다. 우선 내가 얼마만큼 달렸는지를 체크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한 번은 미미하지만 그것이 하나씩 쌓이면 어마어마하게 되는데 그것은 기록을 해야 알 수 있는 것이다. 올해 나는 2050km를 달려야겠다는 목표를 갖고 꾸준히 달렸다. 5km 정도 달려서 언제 그걸 다 채우나 싶었는데 연말이 다가올 수록 그 목표에 근접한 수치가 되고 있다. 하나는 미미하지만 모이면 크다는 말을 명심하자. 그리고 그건 기록으로 남겨야 알 수 있다는 것도 잊지 말자.
또한 달리기를 하고 나서 느꼈던 감정을 정리하는 것도 달리는데 도움이 된다. 물론 기분 좋은 감정을 느끼는 것 자체로도 좋지만, 그것을 메모로 남겨 놓는 것은 또 다른 의미다. 그 감정을 더욱 구체화 시켜줄 뿐더러 더 오래도록 기억에 남게 만든다.
가을에 시원하게 달리고 싶었는데 이번 가을도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어느 순간 달리기 힘든 시절인 겨울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겨울엔 또 겨울 나름의 달리는 매력이 있다. 차가운 바람을 뚫고 달리다 살짝 땀이 났을 때의 쾌감은 겨울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그래서인지 달리기를 하면서 스스로를 "쓰담쓰담' 해주는 것도 겨울에 더 큰 듯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겨울 달리기는 여러모로 조심해야 한다. 길에 살어름이 끼어 미끄러울 수 있으니 넘어지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또한 방한 장비를 잘 챙기는 것도 필요하다. 장갑도 끼고, 넥워머나 모자 등도 챙길 필요가 있다. 갑자기 온도가 떨어지면 뇌에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하니 머리를 따뜻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의지력을 담아 꾸준히 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건강하게 달리는 게 제일 중요하다. 그래야 달리기의 기쁨도 지속적으로 누릴 수 있고, 그것이 달리고 싶은 마음을 더욱 올려주기 때문이다. 부디 겨울철에도 꾸준히 건강하게 그리고 즐겁게 달리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