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에 의미를 부여하다.
작년 3월부터 달린 거리만큼 단체에 후원하는 "기부런"을 하고 있다. 1km 당 500원씩 기부한다는 원칙으로 달리고 있다. 한달에 150~ 180km 정도를 뛰고 있으니 매월 7만원에서 9만원 정도의 금액을 단체에 기부하는 셈이다.
작년 3월부터 올 1월까지 총 열 한 번의 기부를 했다. 단체는 매월 다른 곳으로 정하고 있다. 한 곳에 지속적으로 후원하는 것도 좋겠지만 매월 새로운 곳을 찾아보고 있다. 기부처를 다양하게 하는 것은 공부를 해보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새로운 기부처를 찾는 "기부쇼핑"을 하면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단체를 알게 되고 그들의 사정을 이해하는 시간은 나에게는 큰 공부가 된다. 그 과정에서 나의 일상에 감사하게 되고 내가 도울 수 있다는 것에 효능감을 느끼는 것 또한 매월 기부를 하면서 얻는 이득이다.
달리고, 기부한 것을 매월 블로그에 글로도 남기고 있다. 왼손이 하는 것을 오른손이 모르게 해야 한다고 하지만 나는 오른손 뿐만 아니라 동네방네 사람들에게 소문을 내고 있는 중이다. 내가 기부하고 있다는 것을 자랑하기 위해서다. 그렇게 자랑을 해야 계속할 수 있는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몇 번 하다 마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달리면서 기부하고 싶어서 더 큰 목소리로 떠들고 있다.
맨처음 기부를 하게 된 건, SNS 영향 때문이었다. 지인이 1km를 달릴 때마다 1000원씩 기부한다는 피드를 올렸는데 그게 참 멋져 보였다. 그리고 멋져 보이는 건 무조건 따라해 보는 나의 습성이 기부런을 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고민이 됐다. 1km 당 1000원씩 하기에는 금액이 벌이에 비해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타협해서 조금 없어 보이긴 하지만 1000원의 반절인 500원을 기부하게 됐다. 500원이라도 충분히 멋져 보일 거라는 판단에서 말이다. (나는 무엇을 하든 멋져 보이는 게 중요한 듯 하다)
그런데 이렇게 기부를 하게 되니 돈의 액수를 떠나 달리는 것이 새롭게 느껴졌다.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하나의 몸짓에 불과했는데 기부런이라고 부르니 내가 달리는 것이 하나의 꽃이 되어 가치가 격상되는 느낌이다. 달리기를 꾸역꾸역 이어갈 수 있는 하나의 구실도 찾은 기분이다. 힘겨워도 의미있는 일이란 생각에 발걸음도 가벼워졌다. 달리는 일이 나의 건강과 삶의 재미를 넘어 공동체를 위한 기여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니 더욱 쓸모 있게 느껴졌다.
재밌는 건, 기부를 하게 되니 새로운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는 사실이다. 달리기를 하면서 할 수 있는 유익한 활동을 더 해보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다. 그리고 올해 버킷리스트를 쓰면서 몇 가지 해보고 싶은 것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시각장애인 가이드러닝이나 플로깅 같은 활동이 그런 것들이다. 물론 내가 도움을 드릴 수 있는 사람과 장소는 제약이 있겠지만 그 영향력과 상관없이 달리기가 누군가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일이 되는 듯 하다.
요즘 겨울이라 달리는 게 꽤나 힘들다. 달리기를 하러 나가는 것 자체가 고역이다. 따뜻한 방구석을 놔두고 뭐하러 고생하나 싶을 때도 있다. 달리면서 거센 바람을 뚫고 가려니 마스크 속 땀과 콧물과 침이 범벅이 될 때도 많다. 더러워진 마스크를 볼 때에도 달리기에 대한 회의감이 올라온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서 달려야 하나 싶을 때도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해서 달리고 싶다. 달리는 것이 나에게는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확장되는 느낌이다. 내가 연예인은 아니지만, 운동 선수도 아니지만 나 스스로 달리면서 기부하는 일 자체가 나를 가치있게 만드니 좋다.
런태기라 해서 달리기가 힘들어 고생이신 분들이 많다. 그분들께 말씀드리고 싶은게 있다. 지금 힘든 건 날씨 탓이라고 말이다. 분명 본인의 의지는 그대로 인데 날씨가 추워서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그리고 그런 분들께 날씨를 원망하며 주변을 둘러보라고 권하고 싶다. 우리 주변엔 달리기로 할 수 있는 의미있고 재미난 활동들이 너무나도 많다. 개다가 요즘은 비대면 시대라 혼자 할 수 있는 것들도 많다.그러니 주변을 둘러보며 달리기로 할 수 있는 새로운 재미난 것들을 발견하면 어떨까? 조용히 잠자던 의지의 콧털을 건드리며 즐겁게 달릴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적어도 달리기 위해 한 발이라도 내디딜 수 있지 않을까? 그럴 수 있을 것이라 나는 믿고 싶다.
난 오늘도 지누션의 션이라 생각하며 달리러 나간다. 내가 달리는 거리만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으로 환하게 웃으며 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