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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호진 Mar 09. 2022

가끔씩 내가 빠르게 달리는 이유

달리는 순간에 집중하기

Seize the day


지난 일요일 <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를 읽었다. 휴남동 서점 대표인 영주와 그 주변의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롭게 읽혔다. 다들 크고 작은 상처를 겪었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고 자기 방식대로 조금씩 해결하려는 노력이 돋보이는 이야기였다. 


책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하기로 하고, 오늘은 그 속에서 인상적인 장면 하나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그것은 서점 알바로 일하는 민준과 서점에 와서 명상과 뜨개질을 하는 정서의 대화 장면이다. 취업 준비를 하다 "실패"하고 서점에서 알바를 시작하게 된 민준은 커피를 내리는 일에 집중하게 된다. 좀 더 맛있는 커피를 내리는 것에 몰두했다. 커피를 내리면서 특별한 목표를 세우기 보다는 커피 맛이 좋아지는 것 하나에 집중했다. 


계약직으로 일하다 번아웃이 와서 명상을 배우고 뜨개질을 하게 된 정서는 커피 내리는 일에 몰두하는 민준의 이런 행동을 수행의 기본 자세라고 설명한다. 한 가지에 집중함으로써 지금 이 순간에 완전히 몰두하는 것인데 정서는 이를 성숙한 삶의 태도라고 말한다. 그녀 또한 뜨개질을 하면서 그 순간에 몰입했다. 손을 움직여 그것에 집중함으로써 잠념을 없애 버릴 수 있었다. 


"뜨개질에 몇 시간 집중하다가 현실로 돌아오면 두 가지가 좋더라고요. 결과물이 생긴다는 거, 그리고 마음이 개운해진다는 거요. 적어도 뜨개질을 할 땐 화가 나지 않으니까요. (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p.213)


지금 이 순간에 몰두하는 민준에게 정서는 "Seize the day"라고 말한다. 지금 이 순간을 붙잡는 것, 그것이야 말로 현재를 가장 충실하게 살아가는 방법일 것이다. 민준은 정서와의 대화를 통해 자기가 하고 있는 노력에 대해서 좀 더 "성숙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비록 그것이 당장의 결과물로 이어지진 않더라도 충분히 삶에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 또한 갖게 된다. 집중한 덕에 커피맛이 더 좋아진처럼 말이다. 


"민준이 지금껏 겪어온 일들이 쓸모없던 것만은 아니라는 말일까. 그렇다면 다행이었다. 그간 했던 모든 노력이 쓸모없어지지 않아서." (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p.280)


달리기에 집중하기 


민준과 정서의 대화를 읽다보니 나의 달리기가 떠올랐다. 나 또한 민준이 커피를 내릴 때처럼, 정서가 뜨개질을 할 때처럼 달리기 하나에 집중할 때가 있다. 뭔가 머릿속이 복잡하거나 스트레스가 나를 짓누를 때 달리기에 오롯이 집중하고 달리곤 한다. 그렇게 달리기에 집중하고 나면 정서가 말한 것처럼 마음이 개운해진다.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지만 해결할 수 있는 자신감이 올라온다. 


하지만 마음이 힘들 때에는 달리기에 집중하는 게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달리다가도 나도 모르게 상념들이 덫에라도 걸린 듯 머릿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때가 있다. 달리는데도 자꾸 새로운 생각들이 나오는 것이다. 이럴 때 내가 쓰는 방법은 목표를 정하고 그것에 집중하는 것이다. 꼭 빨리 달리는 것만 목표로 하진 않지만 몸이 약간 과부하가 걸릴 정도로 높은 수준의 목표를 잡고 달린다. 



내가 정하는 목표는 아주 단순하다. "5분마다 0.9km씩 달리기" 처럼 특정 기간에 얼마나 많은 거리를 빠르게 달리느냐가 목표다. 이 때 중요한 것은 5분 정도로 짧은 시간으로 목표를 잡는다는 것이다. 1시간에 10km 달리기처럼 긴 시간을 목표로 하진 않는다. 그것을 오히려 잘게 쪼개서  5분 단위로 정한다. 그래야 더 집중할 수 있고 앱을 통해 5분마다 알려주는 안내로 내가 목표를 달성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소 목표를 향해 5분 동안 달리게 되면 그 순간만큼은 달리기에 집중할 수 있다. 다른 것은 차치하고 5분동안 0.9km 달리는 것에만 몰두한다. 그렇게 5km가 됐든, 10km가 됐든 달리고 나면 개운하게 달리기를 마칠 수 있게 된다. 


무엇하나 버릴 것 없는 경험


한 때 나는 명상을 해보겠다고 유튜브를 틀고 자리에 10분 동안 눈을 감고 앉아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책속의 정서처럼 아무리 명상을 해도 상념이 사라지진 않았다. 오히려 생각이 계속해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곤 했다. 물론 방법을 잘 몰랐기에 그랬던 것 같기도 하지만 정지된 몸 상태를 견디기 힘든 나의 "천방지축"같은 성향 또한 앉아서 하는 명상을 힘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달리기를 하면서 내가 달리기를 통해 명상의 효과를 누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매번 그런 효과를 누리는 것은 아니다. 달리기를 하다가 계속해서 생각이 올라와서 내가 달리는 건지 생각이 달리는 건지 알 수 없을 때도 많다. 하지만 달리기 자체에 스스로 집중할 수 있는 나만의 장치를 만들고 나서는 가끔씩 생각을 비워내고 싶을 때  조금 "힘들게" 달리는 수준의 목표를 정해 놓고 달리면 명상 못지 않게 나를 개운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덕분에 조금 더 달리기 기록도 향상되고 몸도 건강해질 수 있었다. 당연한 결과다. 집중을 하기 위해 목표를 평소보다 약간 높은 수준으로 정하다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달리기 말고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실 잘 모르겠다.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까지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경험이 나의 삶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 믿는다. 물론 그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방법은 없겠지만 민준이 그랬던 것처럼 순간에 집중하고 그 시간을 잡고 있는 경험이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든 나의 삶에 그 쓸모를 드러낼 것이라 믿는다. 적어도 도망갈 일이 있으면 누구보다 잘 도망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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