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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호진 Jun 20. 2022

퇴사 후 하나의 산을 넘었습니다

부모님께 퇴사 사실을 들켜 버렸습니다.


전 회사의 복지제도


전에 다니던 회사는 복지제도가 정말 좋았습니다. 매년 무료로 직원과 배우자 건강검진을 시켜줬는데요. 배우자가 회사에서 건강검진을 받을 경우 부모님께 건강검진 혜택도 양도할 수도 있었어요.


제 아내의 경우 회사에서 건강검진을 무료 혜택을 주고 있었기에 해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교대로 건강검진을 시켜 드렸어요. 부모님도 매년 꼼꼼히 받으시는 건강검진을 무척 좋아하셨고요.


퇴사를 부모님께 말씀드리지 못했던 저는 올해 건강검진은 따로 시켜드릴 예정이었어요. 어짜피 회사에서 퇴직금으로 몇 년치 건강검진 비용을 지원하기도 했고요. 아버지께서 얼마 전 건강검진에 대해 물어보셨고, 차일피일 미루던 저는 아내 회사 사이트를 이용해 아버지 건강검진을 예약해 드렸어요. 아내 회사 사이트에서 하는 게 조금 더 싸기도 했고, 아내가 잘 챙겨줘서 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그 예약이 문제가 되어 버렸어요. 건강검진 센터에서는 예약 확인을 위해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고, 아버지께서는 제가 예약하지 않고 아내가 예약했다는 것을 아시고 의심을 하셨어요. 그리고 곧장 아내에게 전화를 해서 물어보셨다고 해요.


"호진이, 회사 그만 뒀냐?"



올 것이 왔구나!



아내는 어찌할 줄 몰라 다닌다고 둘러댔고, 바쁜 용무 처리 중이라고 전화를 끊었다고 해요. 그리고 그 사실을 제게 카톡으로 알려줬어요. 그때 저는 드디어 올 게 왔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퇴사를 하면서 부모님께 상의를 드리지 못했어요. 퇴사를 하고 나서도 한참동안 부모님께 말씀드리지 않았어요. 이유는 하나였어요. 부모님께서 괜히 걱정만 하실 것 같았기 때문이었어요. 조금 이따가 말씀드리자고 차일피일 미룬 상태였어요. 그래도 올해 중에는 꼭 하려고 했었어요. 올해 버킷 중 하나로 "부모님께 퇴사 사실 말씀드리기"이기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저의 의지와 관계 없이 부모님은 먼저 낌새를 눈치 채셨고 저는 강제적으로 커밍아웃을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해 버렸어요. 의도하지 않은 곳에서 그만 터져 버리고 만 거죠.


어떻게 말씀드려야 하나 한참을 고민한 끝에 다음날 아버지와 통화를 할 수 있었어요. 몇 번을 망설이며 심호흡을 하고 나서 전화를 한 거였어요. 의외로 아버지의 반응은 담담하셨어요. 하지만 걱정하는 마음은 숨기지 못하셨어요. 심란하다며 할아버지 산소에 가는 길이라고 하시더라고요. 다음날 어머니와도 통화했는데 걱정을 하시더군요. 잠도 잘 못 주무셨다며 말이죠.



산 하나를 또 넘었습니다


부모님의 걱정을 들으니 죄송했어요. 번듯한 직장을 제 발로 나온 것도 죄송했고, 그 사실을 오랫동안 숨겼던 것도 죄송했어요. 가장 크게 죄송한 것은 한동안 걱정만 하실 것 같다는 점이기도 했고요. 하지만 한편으로 후련했어요. 이제 숨길 게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하더라고요. 퇴사하고 언젠가 넘어야 할 하나의 큰 산을 넘은 것 같았어요.


물론 앞으로 부모님의 걱정을 덜어드리긴 힘들 것 같아요. 당분간은 회사에서 번 만큼 돈을 벌긴 어려울 거 같거든요. 회사를 다닐 때보다는 불안한 생활을 할 테고요. 그래도 다행이예요. 조금은 더 제가 하는 일들을 자세히 말씀드릴 수는 있을 것 같으니까요. 그리고 그동안 어쩔 수 없이 했던 거짓말도 안하게 되니까요.


퇴사 후 벌써 반년이 지났어요. 그동안 참 다양한 일들일 벌어졌는데요. 하나 둘 크고 작은 사건을 경험하면서 점점 직장인의 때가 벗겨지는 느낌이예요. 그리고 점점 더 프리랜서로 또는 1인 기업가로 나가는 기분도 드네요.  이번 일은 어쩔 수 없이 강제적으로 들통난 것이지만 그래도 가장 험난한 강을 건넌 것 같아요. 이제 

부모님께서도 이 사실을 아셨으니 더 당당히 그리고 즐겁게 생활해 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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