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3일 한 게 전부지만 그래도...
며칠 전, 나는 한가지 꿈이 생겼다. 2021년 11월 뉴욕 마라톤 대회에 나가는 것이다. 뉴욕 마라톤 대회 풀코스에 도전해볼 생각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고나서 생긴 꿈이다.
생각만해도 설렌다. 계획을 하나씩 세워보곤 한다. 언제쯤 비행기 표를 구매해야 할지 가늠해본다. 기왕이면 마일리지로 끊어야 하니 표가 풀리는 날을 잘 알아둬야 할 것 같다. 어떻게 하면 풀코스를 뛸 수 있을지 고민도 한다. 우선은 10km부터 잘 준비해서 달리고, 올해 내에 하프를 도전하고 내년 하반기에 풀코스를 뛸 생각이다.
이런 상상을 할 수 있게 했던 것은 순전히 독서 덕분이었다. 설레는 감정을 준 책이 고마웠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지 않았다면 그런 꿈을 꿀 수 있었을까?
솔직히 고백할 게 하나 있다. 사실 맨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는 이런 꿈을 꾸지 못했었다. 책도 그저 그랬다. 달리기라는 소재 때문에 재미있게 읽었지만 엄청난 감흥을 일으키진 못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감동을 느끼고 상상만 해도 즐거운 꿈을 갖게 된 것일까? 매일 달려서 그랬나?
그 비법은 바로 메모독서에 있었다. 책을 다 읽고 1주일이 지나서 읽은 내용을 다시 정리하며 메모를 했다.그리고 메모를 하면서 처음 읽었을 때 느끼지 못했던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책에 있는 중요한 내용을 베껴쓰고, 그 밑에 내 생각을 정리하다보니 뉴욕 마라톤까지 생각하게 된 것이다.
처음이었다. 책의 내용을 메모하면서 그런 기쁨을 가져 본 것이.
얼마 전 신정철 작가의 <메모독서법> 신간이 나왔다. 그의 전작 <메모습관의 힘>을 좋아했던 터라 책이 나오자마자 사서 읽어봤다. 개인적으로 <메모습관의 힘>보다 훨씬 좋았다. 쉽게 읽혀서 따라해볼만한 것들이 눈에 보였다. "남기는 독서"에 관심을 가졌던 개인적인 상황도 한 몫했다.
책을 다 읽자마자 노트 한 권을 샀다. 책에서 나온 것처럼 A5 사이즈로 말이다. 그리고 필기구도 정비했다. 3색과 샤프가 한꺼번에 들어간 제트스트림 0.7mm 볼펜도 샀다. 좋아하는 볼펜인데 부숴져서 새로 사야만 했다. 밑줄을 그을 수 있게 형광펜도 샀다. 그리고 대학 졸업 이후 처음으로 필통도 구비했다. 메모를 할 수 있는 기본 요건을 갖춘 것이다.
그래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돈이 아까워서라도 뭐라도 쓰지 않을까 싶었다. 김호 작가의 <쿨하게 생존하라>에서는 이를 "자기결박계약"이라고 표현하며 설명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돈을 걸어야 비로소 그 가치를 느끼고, 실행에 옮기는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일단 돈을 투자하고 나면, 그 돈을 그냥 날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하게 되거든요"
물론 자기결박을 할 만큼 큰 돈을 들인 것은 아니긴 하지만 2만원 내외의 지출로 나는 충분히 결박당할 수 있었다.
다른 지출도 있었다.
"성장판" 모임에서 진행하는 "메모독서 도전"에도 참여했다. 매일 책을 읽고 독서 노트에 필사한 부분을 사진으로 찍거나 타이핑한 후 단체 채팅방에 올리면 되는 도전이다. 그리고 이 도전엔 참가비가 있었다. 참가비가 4만원이었다. 매일 잘 하면 3만원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조건도 있었다. 열심히 하면 3만원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동기부여가 되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나를 결박함으로써 메모독서를 시작할 수 있었다. 물론 메모독서를 통해 책을 제대로 읽고 나를 바꾸고 싶다는 바람도 함께 있었고.
비록 3일 도전했지만 다행히 뉴욕 마라톤이라는 새로운 버킷리스트도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매일 메모를 하면서 메모의 즐거움도 느끼는 중이다. 물론 나의 악필 덕분에 독서 노트를 공개할 때마다 창피하긴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며칠동안 나름 나만의 방법을 만들 수 있었다. 얼마나 오래 갈 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공개하고 나면 진짜 내것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3일 동안 만들었던 나만의 노하우를 공개해 본다. 수없이 필사를 도전했던 나의 시행착오를 감안한다면 3일 이상의 고민이 담긴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정리를 하고 공언을 해야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1. 메모독서는 책을 다 읽고 하라
지난 겨울 필사에 도전 했었다. 다들 좋다고 하니 따라해보고 싶었다. 아쉽게도 나에게 좋지만은 않았다. 필사를 할 때마다 힘들다는 생각이 컸다.
우선 책 읽는 속도가 "너무" 느려졌다. 꼭 책을 빨리 읽는 게 좋은 건 아니라지만 필사를 하다보니 흐름이 끊기는 게 안타까웠다. 책을 읽다 중요한 걸 필사하고 다시 또 읽으니 책읽는 재미가 현저히 줄었다.
공간적 제약도 있었다. 책을 여기저기서 읽곤 했다. 지하철에서도 읽고 스타벅스에서도 읽었다. 가끔씩 필사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안되어 불편했다. 어쩔 수 없이 필사를 걸렀고 그러다보니 필사를 꾸준히 하기 힘들었다. 한 두번 안하다 보니 "에라 모르겠다"하고 필사를 안하게 됐다.
<메모독서법>을 읽으면서 굳이 책을 읽으면서 메모를 동시에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리고 나의 메모 패턴을 조금 바꿔봤다.
우선, 책을 읽을 때는 밑줄만 긋는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밑줄 대신 플래그를 이용한다. 그리고 중간에 느낀 것들은 포스트잇에 자유롭게 끄적인다. 독서 흐름에 방해받지 않는 수준에서 생각을 정리한다. 꼭 남기고 싶은 수준에서.
그렇게 책을 다 읽고 며칠을 묵혀둔다. 그리고 며칠 뒤 밑줄 긋거나 플래그를 붙여 놓은 곳 중심으로 다시 읽으며 메모를 한다. 포스트잇의 내용도 참고하며 정리한다.
이렇게 메모를 하다보니 책을 두 번 읽게 되는 효과가 있었다. 두 번 읽다보니 정리가 훨씬 잘 됐다. 이미 읽은 책이니 두 번째 읽을 때 책을 읽을 때 하는 메모는 독서 흐름을 방해하지도 않았다. 게다가 며칠 동안 책을 내버려 두었더니 새로운 감흥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 사이 잠재의식 또한 책을 정리했던 것 같다. 일종의 독서 숙성 기간을 거친 것이다.
단, 주의할 게 하나 있다. 메모를 위한 독서 숙성 기간은 1주일을 넘기지 않아야 한다. 숙성하려다 다 까먹을 수 있으니까.
2. 하루 30분 투자하다
<메모독서법>에서는 시간을 내어 꾸준히 메모를 할 것을 강조한다. 그래서 착안한 것이 매일 30분씩 작성하는 것이다. 나에게 30분이 가장 집중해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시간이기에 그렇게 정했다. 핸드폰에 30분 타이머를 설정하고 그 시간까지만 메모를 작성하고 멈춘다. 메모량에 상관없이 시간으로 메모를 제어했다.
시간을 정해서 하니 집중있게 메모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시간만큼은 알차게 보내자는 생각으로 메모를 하다보니 메모 내용도 좋아지는 게 느껴졌다. 부담 되지 않는 수준에서 딱이었다.
<아주 작은 습관의 힘>에서는 습관으로 만들기 위한 비결 중 하나로 "일로 느껴지는 지점 직전에 멈추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글쓰기 관련 조언도 첨가한다.
"잘 쓰고 있다고 생각할 때 거기서 멈추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시간을 제어해서 메모를 하다보니 일로 느껴지는 선 직전에 멈추는 방법을 알게 된 느낌이었다. 나에게는 무엇이든 30분이 넘어가면 일로 느껴지는 것을 알아서 다행이기도 했다.
물론 나의 경우는 시간이 조금 여유가 있어서 30분을 쓰는 것이기도 하다. 직장을 다니며 일을 하는 사람에겐 30분도 꽤 긴 시간일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매일 10분만 투자해도 좋을 듯 싶다.
얼마가 됐든 시간을 따로 떼어서 하다보면, 딱 좋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3. 메모 독서 후에 다시 읽어보고 서평까지 써라
신정철 작가는 <메모독서법>에서는 메모한 내용을 다시 읽어볼 것을 강조한다.
"독서노트를 쓰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또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독서노트 다시 읽기입니다. ... 주기적으로 독서노트를 펼쳐 과거에 쓴 내용을 다시 읽는 것이 중요합니다."
책에 나오는 것은 하나라도 따라해보는 게 직성에 풀리는 성격인지라, 나 또한 이 방법을 그대로 따라해봤다.
우선 당일 메모했던 내용을 꼭 다시 읽어본다. 그리고 읽으면서 중요하다 생각하는 메모에 형광펜으로 밑줄을 긋는다. 서평을 쓰거나 메모 독서 내용과 관련한 글을 쓸 때 다시 메모를 찾아본다. 그러면 "인용"할 수 있는 문구를 찾아 낸다.
메모가 기억을 되살리는 작업이라면, 메모한 것을 다시 읽는 것은 기억력을 연장하는 작업이었다.
그리고 한가지 더!
다시 읽어 본 후에는 메모한 내용을 바탕으로 서평을 쓴다. 서평을 쓰고 나면 이제는 진짜 나만의 메모가 되는 느낌이다. 나의 경험과 책이 결합되어서 "진짜 내 것"이 되는 느낌을 받는다. 그렇게 해서 만든 서평이 아래의 글이기도 하다.
https://blog.naver.com/tham2000/221502699125
서평을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서 나의 생각과 책 내용이 결합되면 책이 더 특별한 존재로 느껴지기도 한다.
고작 3일 뿐이지만 메모독서의 맛을 조금은 알 것 같다. 책을 다시 읽는 기분이 쏠쏠하고, 나만의 방식으로 정리하면서 새로 공부하고 배워보고 싶은 내용도 확인되어 좋다. 이전에 독서를 하며 얻지 못했던 감정이다.
우선 30일을 해 볼 생각이다. 꾸준히 하면서 어떤 느낌인지 다시 정리해봐야겠다. 그렇게 꾸준히 해야 3만원을 돌려받을 수 있다니 해봐야지!
<메모독서법>에 나온 것처럼, 나만의 메모독서법을 잘 가꿔볼 것이다. 물론 대부분이 책에 나온 것을 따라하는 수준이지만 그 속에 가끔씩 나만의 방식이 들어가 있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