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KL, 방콕여행기4]초반부터 삐걱거리다.

쿠알라룸푸르에 도착하다

by 최호진

여행은 예기치 않은 곳에서 감동을 준다. 석양무렵 떨어지는 해를 바라보며 감탄하기도 하고, 여행지에서 아이들의 성장을 바라보며 흐뭇해 하기도 한다. 여행은 그렇게 나를 돌아보고 가족을 생각하는 그런 시간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여행을 끊을 수 없다.


하지만 여행에서의 추억이 언제나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삐걱거릴 때도 많다. 예상치 못한 사고로 인해 당황스러울 때도 있다. 낯선 곳으로 떠나는 모험이기에 리스크를 안을 수 밖에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당연한 일이지만 돌발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힘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맥도 빠지고.


쿠알라룸푸르에 도착한 우리는 몇 번의 예기치 않은 일들로 초반부터 조금 삐걱거렸다. 그러면서 이번 여행이 조금은 힘든건 아닌지 불안하기도 했다.

IMG_8329.jpg

낯선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아침 10시 15분에 인천에서 방콕으로 출발한 우리는 쿠알라룸푸르에 8시 넘어 도착했다. 쿠알라룸푸르가 우리나라보다 한 시간 늦었으니, 우리나라 시간으로는 9시 조금 넘어 도착한 셈이었다. 조금 피곤했다. 긴 비행이었다. 환승이 처음이 아니었는데도 힘들다는 생각이 조금 들기도 했다. 빨리 공항을 빠져나와 집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그런데 쿠알라룸푸르 공항이 이상했다. 분명 입국심사대로 가야 하는데 비행기 타는 곳이 나왔다. 이곳 공항은 입국하는 사람들과 출국하는 사람들이 섞이는 구조였다. 친구가 사전에 알려줬기에 어느 정도 대비는 하고 있었긴 했지만 실제 경험해보니 낯선 것은 매한가지였다. 정신줄을 놓지 않고 후다닥 입국심사대로 향했다. 빨리 나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일사천리로 빠져나왔고, 우리를 기다리는 친구와 드디어 만날 수 있었다.


집으로 가기 전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바로 핸드폰 유심을 찾는 일이었다. KLOOK에서 예약한 유심칩은 현지 공항에서 찾는 시스템이었다. 유심을 찾으려고 둘러봤는데, KLOOK에서 안내한 곳이 보이지 않았다. 여기저기 물어봤는데, 입국 게이트 전에 창구가 있었다는 사실을 한참이 지나서야 알 수 있었다. 다시 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유심은 필요했고,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었다.


다행히 유심은 다른 곳에서도 찾을 수 있었다. 쿠알라룸푸르 공항은 두 개의 터미널로 되어 있는데 에어아시아 등의 항공사가 타고 내리는 KLIA2 터미널에서 유심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차를 타고 5분 정도 가니 KLIA2 터미널이 나왔고, 그곳에서 쉽게 유심 찾는 곳을 발견할 수 있었다. 조금 돌아왔지만 그래도 다행히 유심을 잘 받고 숙소로 돌아갈 수 있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따뜻한 물이 안나오는 에어비앤비 숙소


공항에서 한 시간 정도 차로 달려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는 에어비앤비로 예약한 곳이었다. 싸고 후기도 괜찮은 방이었다. 슈퍼 호스트가 관리하는 숙소라 안심도 됐다. 페트로나스 트윈타워에도 멀지 않아 오가기도 편할 것 같았다.

output_1379399790.jpg


호스트의 안내 메시지대로 출입카드를 찾았고, 비밀번호를 입력하여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에어비앤비의 장점이다. 별도의 체크인을 하지않고, 호스트와 만나지 않고 곧장 숙소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 물론 그것이 단점이 될 수도 있지만 말이다. 어찌됐든 어렵지 않게 숙소에 들어갔고, 사진처럼 뽀샤시 하지 않지만 말끔히 정돈된 숙소가 나쁘지 않았다. 사진도 찍고 그랬어야 했지만 조금 피곤했고 빨리 아이들을 씻겨야 했기에 방 사진만 찍고 후다닥 아이들 옷부터 벗겼다.

IMG_8331.jpg

아이들을 씻기는데 조금 아니 많이 당황스러웠다.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았던 것. 날씨가 덥다고 해도 샤워를 찬물로 할 수 없었는데 이것저것 해봐도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았었다. 호스트는 전화를 안받았고, 부랴부랴 메시지를 보냈지만 답이 금세 오진 않았었다.


어쩔 수 없었다. 아이들 옷을 이미 벗긴 후였기에 그냥 후다닥 찬물로 샤워를 시켰다. 아이들을 빨리 재우는 게 나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따뜻한 날씨 덕분에 찬물로 샤워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원래 씻겨주지 않는데, 어쩔 수 없이 빛의 스피드로 아이들을 씻겼다.


아이들을 씻기고 한참 뒤, 거실의 에어컨을 켜려는 데 리모콘이 작동하지 않았다. 한참을 이것저것 해보다, 벽에 이상한 스위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스위치를 켜니 에어컨 리모콘이 작동되었다. 벽에 있는 스위치가 전원을 조절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욕실 입구에도 똑같은 스위치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그것을 켜야 온수가 나온다는 사실도 뒤늦게, 아이들이 다 씻고 자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맞았다. 온수를 틀려면 스위치를 켜야만 했었다. 그리고 내가 다 깨닫고 나서야 호스트로부터의 뒤늦은 메시지도 받을 수 있었다. 편리하게 들어올 수 있었던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란 것을 그때 느끼게 됐다.

IMG_9047.jpg


퍼호스트의 "기민한" 대응이 어찌나 감사하던지...쳇!


뭔가 여행 초반부터 꼬인 느낌이었다. 출발이 좋아야 하는데...



알고보니 숙소가..


다음날 오전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리의 여행이 진짜 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내가 오래전부터 생각했던 숙소와 우리가 실제 예약한 숙소가 달랐다는 사실을 다음날 오전에서야 알게 되었다.


아내는 Marc 레지던스를 예약하려고 했는데, 우리가 예약한 숙소는 Mercu 레지던스였던 것! Marc 레지던스가 쿠알라룸푸르의 상징인 페트로나스 트윈타워와 훨씬 가까웠고, 훨씬 신축 레지던스였는데 뭐가 잘못된건지 우리는 Mercu 레지던스로 예약했던 것이었다.

output_234243397.jpg
output_1972113074.jpg

Marc 레지던스는 페트로나스 트윈타워 바로 옆에 있었고, Mercu는 조금 떨어져 있었다.


에어비앤비 예약은 아내가 알아봤고,예약은 내가 했었다. 2월에 예약했던 터라 왜 예약이 잘못되었는지 정확한 이유를 알기 어려웠다. 아내가 내게 잘못된 링크를 알려준 건지, 내가 잘못 예약했던 건지 알 수 없었다. 굳이 이유를 밝히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리고 밝히고 싶지 않았다. 아마도, 내 예상이 틀리지 않는다면 나의 잘못일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조용히 있는게 상책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지금와서 예약을 되돌릴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에게 최선이었다. 내가 잘못한 것을 인정해서 그런것은 결단코 아니다. 그냥 그렇다는 것이다. 다행히 아내도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우리 부부가 몇 달 동안 공들여 읽었던 자기계발서도 상황을 받아들이는 데 한 몫한 것 같았다. 물론 여행에서 그러라고 자기계발서를 읽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것들을 집중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것을 우리 부부는 이미 자기계발서를 통해 잘 터득해 오고 있었다.


여행 초반부터 삐걱거리는 느낌이었지만 그래도 우리 부부는 잘 대응했다. 삐걱거림이 아이들에게 전파되지는 않은 느낌이었다. 여전히 아이들은 해맑았고 우리는 의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조금은 당황스러운 시작이었지만 그래도 괜찮다며 다음 일정을 우리는 준비했다. 쿠알라룸푸르에서의 첫 일정이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쿠알라룸푸르에 우리를 오게 해준 친구의 집으로 찾아갔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KL,방콕 여행기3] 비행기 타고 날아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