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지지자를 만드는 것이 좋은 보상이 될 수 있다.
지난 5월 23일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신지 10주기 되는 날이었다. 10년 전 대통령께서 돌아가신 날 그날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다. 오전에 TV를 보다 충격을 받았다. 뉴스를 보는 내내 가슴이 아팠다. 그를 옭아맸던 사람들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 마음을 담아 분향소에도 찾아갔다. 만삭이었던 아내와 꽤 오랜시간을 기다리다 분향을 하고 왔다. 그렇게라도 해야 고인에게 죄송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때 뱃속에 있던 큰아들은 벌써 11살 초등학생이 되었다. 그리고 그 때 이후 대통령은 두 번 바뀌었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그리워한다.(아닌 사람들도 분명 있겠지만) 그가 보여준 권위에 대한 도전은 적어도 나에게 10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큰 가르침으로 남아 있다. 그를 생각하면서 안일하게만 살아온 나의 삶을 반성하곤 한다.
작년에 <대통령의 글쓰기>를 우연히 접했다. 100쇄가 넘은 베스트셀러였는데도 나는 작가의 세바시 강의를 듣고나서야 그 책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 책을 읽으며 "대통령"의 이야기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통령 연설 비서관 출신인 작가의 이야기를 통해 다시 만나뵐 수 없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억했다.
대통령에 한동안 빠져 있다가, 한참 뒤에 "글쓰기"에 대해 집중할 수 있었다. 이 책의 방점이 글쓰기에 있었다는 사실 또한 책을 거의 다 읽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분명 작가도 책을 통해 전직 대통령을 추억하고 있었지만 그 속에서 어떻게 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 때 나는 작가의 이름을 정확히 기억할 수 있었다.
강원국 작가
그리고 그만의 글쓰기에 대한 철학, 글쓰기 방법이 궁금해졌다.
<대통령의 글쓰기>를 읽고 얼마 되지 않아 그의 새 책이 나왔다. <강원국의 글쓰기>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의 다른 책 <강원국의 글쓰기>를 통해 강원국 작가만의 글쓰기 노하우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었다. 확실히 대통령 연설비서관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건 아니었지만)
<강원국의 글쓰기>는 글을 쓰는 스킬 뿐만 아니라 왜 글을 써야 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글쓰기를 잘하기 위해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 지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갖게 했다.
글 쓰는 일을 습관으로 만든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 구본형 선생님은 매일 아침 새벽 4시에 일어나 글을 썼다고 한다. 매일 글쓰는 일을 함으로써 돌아가시기 전까지 짧은 기간동안 많은 책을 내셨고, 많은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기도 했다.
나 또한 그들을 본받아 매일 글을 쓰고 있다. 하지만 글쓰는 일이 쉽지만은 않은 것은 사실이다. 매일 무엇으로 글을 써야 할까, 먹이를 찾는 하이에나처럼 소재를 찾아 다니고 있다. 글이 휙휙 써진다면 좋겠지만 아직 그런 내공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매일 쓰는 것이 자연스럽지는 않다. 그렇게 쓰면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오겠지라는 생각으로, 막연한 기대감으로 꾸역꾸역 글을 쓰고 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강원국 작가도 글쓰는 게 힘들다고 한다. 다행이었다. 그냥 그도 힘들게 글을 써나간다는 말이 묘하게 위로가 되었다. 100쇄가 넘는 베스트셀러를 쓴 작가도 힘들다는데 내가 느끼는 힘듦은 당연한 것이라 느껴졌다. 역시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힘들다고 이야기를 해야 위로를 얻는 것 같다.
글쓰기가 얼마나 어려운 지에 대해 책에서 언급한 내용에 공감이 갔다.
"글을 쓰기 시작하는 일은 영하 30도 시베리아 벌판에서 몇 달씩 묵혀둔 자동차에 시동은 거는 것과 같다. 손은 꽁꽁 얼어 굳어 있고 차창 밖에서는 북극곰이 덮칠 기세로 달려들고 있다 " <강원국의 글쓰기 중>
글을 쓰기 시작할 때 머릿속이 하얘지고 무슨 말을 써야 할지 막막했던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쓰고 싶은 말은 많은데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엉켜진 실타래처럼 풀기 어려운 경험들이 많다.
힘들고 어려운 과정이 글쓰기지만 강원국 작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줄이라도 써가는 게 중요하다고 이야기 한다. 그러면 또 풀리는 게 글쓰기다. 엉켜진 실타래가 어느 순간 갑자기 풀리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매일 글쓰는 습관을 들이는 게 중요하다. 매일 쓰면서 글쓰기를 친숙하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뭐든 쓰기 시작하면 써지는 게 글이니까.
매일 글을 쓰기 위해서 강원국 작가는 그만의 의식을 만들기도 한다.
나는 요즘 글 쓸 때마다 평소에 사용하지 않는 안경을 쓴다.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이 완전군장 하듯 안경을 낀다. 왠지 마음이 편안해지고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어쩌다 그 안경을 집에 두고 온 날은 안절부절못한다. 글쓰기에 집중이 안 된다. 그날은 공친 날이다. 이제 안경 쓰는 일이 글쓰기 전 의식이 됐다. 일종의 루틴이다. <오마이뉴스 강원국의 글쓰기 연재 글 중>
안경을 쓰는 것 뿐만이 아니었다. 대통령의 글쓰기를 집필할 땐 산책을 하고 커피를 마시는 의식을 통해 뇌에게 글을 써야 한다는 사실을 알렸다. 쓰기 싫어하는 뇌에게, 써야 한다는 자극을 줌으로써 글이 써지게 되었다고 한다.
다양하게 자기만의 “글쓰기 의식”을 개발할 수 있다. 매일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장소에서 쓰는 것도 방법일 수도 있고, 글쓰기 전 똑같은 행위를 반복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글쓰기 직전 SNS를 딱 5분만 보는 것으로도 정신이 번쩍 들 수도 있다. 남들이 다들 잘 살고 있는데, 나도 내 이야기를 만들어볼까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물론 5분을 보려다 50분을 보는 경우도 많지만)
습관을 만들어 가는 데 의식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적절한 보상이다. 찰스 두히그는 그의 책 <습관의 힘>에서 적절한 보상이 끊임없이 동일한 행동을 반복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매일 글을 쓰는 강원국 작가는 글을 쓰는 과정에서 보상의 방법을 꾸준히 개발하고 있었다.
우선 그는 그가 "사랑"하는 커피를 글을 쓰는 과정에서 보상으로 활용했다.
커피를 옆에 두고 한 문다 쓰고 나서 한 모금씩 마신다. 한 모금 마시기 위해 얼른 한 문단을 쓰고 싶다. 고통스러운 글쓰기를 즐거운 놀이로 만드는 나만의 방법이다. <강원국의 글쓰기 중>
재미있는 방법이다. 글쓰는 과정에서 중간 중간 보상을 주는 것이다. 한 편의 완성된 글을 써야만 보상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문단을 쓰는 것만으로도 보상을 줄 수 있다. 이는 조그만 성취를 가능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한 편의 글을 모두 쓴 후에도 보상을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글을 다 썼을 때 나를 위한 선물을 주는 것은 계속해서 글을 쓰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마감 시한 내에 썼을 때 작게나마 자신에게 보상해줘라. 좋아하는 음식을 먹어도 좋고, 친구를 만나도 좋다. 마감 시한 안에 일을 처리한 데 대해 스스로를 칭찬해주고 격려해주는 의식이 필요하다. <강원국의 글쓰기 중>
강원국 작가는 그렇게 보상을 만들었다. 문단을 쓰면서 커피가 보상이었고 마감내 글을 완성한 뒤 스스로 칭찬해주는 행위가 보상이었다. 그리고 그것못지 않게 더 큰 보상이 있었다. 그가 매일 글을 쓰게 만드는 가장 큰 원동력이 따로 있었다.
바로 아내의 칭찬이었다.
그가 지속적으로 글을 쓰게 하는 원동력에는 항상 그에게 조언과 응원을 보내주었던 아내가 있었다. 아내의 칭찬 덕분에 그는 매일매일 글쓰는 루틴을 만들 수 있었고, 더 좋은 결과물을 생산할 수 있었다.
글을 쓰는 습관을 만든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매일 쓴다해도 글쓰는 일은 여전히 고통스럽다. 자연스럽게 되기란 정말 힘들다. 물론 글쓰기 근육이 만들어 지면 훨씬 편해질 수는 있겠지만, 만든 근육도 쓰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매일 글쓰기 위해 적절한 보상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글을 쓰고 나서 선물을 받는 것이야말로 매일 글을 쓰게 하는 힘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칭찬”이라고 생각한다. 커피 한모금도 나를 위한 선물도 중요하지만 내 글을 읽어주는 독자의 칭찬이야말로 글쓰는 사람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싶다. 내가 쓴 결과물을 읽어주는 독자, 그리고 그들의 반응이 글을 매일 쓰게 하는 힘이 된다. 강원국 작가의 아내가 그에게 했던 것처럼 말이다. 글쓰는 사람에게 단 한명이라도 팬을 확보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아마도, 노무현 전 대통령도 강원국 작가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던져주시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말 한마디 덕분에 강원국 작가는 청와대에서 매일 글쓰는 일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