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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호진 May 31. 2019

하정우는 혼자 걸었던 것이 아니었다.

걷는사람, 하정우를 보며

나는 하정우 님이 별로였다!!!


2008년 <추격자>라는 영화는 내게 무서움 그 자체였다. 하정우 님의 연기는 섬뜩했다. 신촌 주변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신촌 영화관에서 밤 12시에 친구와 함께 봤다. 영화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뒤를 몇 번이나 돌아봤는지 모르겠다. 그 정도로 무서웠다. 영화 <추격자> 이후로 하정우 님의 연기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영화를 별로 안좋아하는 탓도 있긴 하지만, 너무나 강렬했던 첫인상 때문에 좋은 감정을 불러오기 어려웠다.


그랬던 그가, <걷는 사람, 하정우>라는 책을 냈다. 그다지 끌리지 않았다. 베스트셀러라고 해도, 그에 대한 나의 선입견 탓인지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내 귓가에 자꾸 이 책을 읽어보라는 권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변 사람들의 평이 너무 좋았다. 블로그 이웃들의 서평을 보면서 그의 걷기가 궁금해졌다. 게다가 루틴을 만들어가고 꾸준히 실행하는 일에 관심을 가졌던 나였기에 하정우 님이 매일 걷는 원동력이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결국 나는 <걷는 사람, 하정우>를 읽게 되었다. 순전히 바이럴의 힘으로! 물론 여전히 반감은 있었다.


“뭐 얼마나 대단하겠어?”

이 분 좀 매력적인데?


하정우란 연기자가 대단한 사람이긴 하다. 아버지의 후광을 등에 업고 연기자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을텐데, 혼자서 오늘의 하정우 님을 만들었다. 내가 안좋아해서 그렇지 그의 필모도 괜찮았다. 이미 천만배우 아닌가. 더 주목할만한 건 그의 깨끗한 사생활이었다. 그는 연기 생활을 하면서 구설수에 오른 적도 없었다. 찌라시에도 잘 등장하지 않은 듯 하다. 물론 깊게 안파봐서 모르겠지만 나름 깨끗한 연예인 같았다.


이번 책 <걷는 사람, 하정우>를 읽으며 그가 왜 구설수에 오르지 않고, 찌라시에 등장하지 않는지 알것 같았다. 그는 "걷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매일 3만보를 걸으며 생각을 정리하며 지냈다. 강남에서 합정 영화사까지 매일 걸어서 출근하는 동안, 하와이에서 친구들과 함께 10만보를 걷는 동안 그는 생각을 정리하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했다.


하정우 님의 걷기를 보면서 얼마 전, 산을 오르며 지인이 내게 했던 말이 생각났다.


"걷는 것은 힐링이다"

하정우 님의 글을 읽으며 걷는 행위가 그를 치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걸으면서 그는 감정을 정화하고 있었다. 걷는 행위를 통해 그는 그의 고민을 하나씩 내려놓을 수 있었다.


만약 나쁜 기분에 사로잡혀서 지금 당장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태라면 그저 나가서 슬슬 걸어보자. 골백번 생각하며 고민의 무게를 늘리고 나쁜 기분의 밀도를 높이는 대신에 그냥 나가서 삼십 분이라도 걷고 들어오는 거다. 그러면 거짓말처럼 기분 모드가 바뀌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걷는 사람, 하정우 중)



그의 걷기에, 중요한 것이 하나 더 있었다.


하정우 님의 걷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유독 나의 관심을 끄는 대목이 있었다. 그의 걷는 행위 자체에 대한 이야기도 좋았지만, 그와 함께 걷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사실 혼자 걷지 않았다. 그는 매일 함께 걷는 친구들과 걷는 양을 공유하며 같이 걸었다.


밍태, 좐큐, 찰리, 코비, 랭보, 싼드리나


하정우 님의 걷기 친구들이다. 물론 매일 만나서 함께 걷는 것은 아니었다. 만날 때도 있지만 각자 걸을 때도 있었다. 각자 걸을 때면 서로의 걷기 양을 대화방에서 공유하며 격려하기도 했다.


"걷는 남자, 하정우"는 하정우 님 혼자 만들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의 걷기의 원동력에는 그의 동료들이 있었다. 함께했던 "밍태, 좐큐, 찰리, 코비, 랭보, 싼드리나"가 없었다면, 하정우 님도 하루 3만보 걷는 사람이 안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안되어 있을 것이다. 하정우 님도 인정하는 부분이기도 하고.


언제까지나 함께 걷고 싶은 나의 친구들. 나를 꾸준히 걷게 하는 사람들. 이루 다 쓸 수 없는 추억은 잠시 묻어두고 우리, 일단은 계속 함께 걷자 (걷는사람, 하정우 중)


혼자 만들기 너무 어려운 습관


습관을 만드는 데 함께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중요한 지 절실히 느끼는 요즘이다. 물론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언제든 의지를 기반으로 자신만의 습관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혹여 미치도록 재미있는 일을 발견하면 그것에 꽂혀서 매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은 무언가 꾸준히 하면서 본인만의 습관을 만들어 가기 쉽지 않다. 그럴 때 옆에 있는 동료들이 함께 한다면 훨씬 습관을 만들기 쉬워질 수 있다.


요즘 나도 습관을 만드는데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있다. 같이 뛰는 사람들 덕분에 달리기를 할 수 있게 되었고, 함께 영어 책을 읽는 사람들 덕분에 원서를 읽게 되었다. 글을 쓰는 사람들을 만나서 글쓰는 근육을 키울 수 있게 되었다. 시작한지 1주일 조금 넘은 것도 있고, 100일 가까운 것도 있다. 매일 실행하는 게 힘들어 하루 이틀 거르기도 하지만 다행히 함께 하는 사람들 덕분에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해 나가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실행하는 것을 보면서 자극을 받기도 하고, 그들의 응원을 받으면 힘이 나기도 한다.


괜히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는 게 아닌 듯 하다. 함께해서 행복한 걸 보면...


경험수집잡화점을 통해 사람들과 새로운 경험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는 <시작노트>의 저자 피터킴님도 함께 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새로운 경험을 만드는 데 같이 하는 힘이 중요하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누군가와 같이 하면 오래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속하는 힘은 약해도 책임감은 강하니 직접 사람들을 모으고 목표를 세우면 다른사람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준비할 거라 생각했다. (시작노트 중)


그는 그의 책 <시작노트>를 통해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 간 경험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리고 그 중 하나가 영어 스터디 모임이었다. 꾸준히 하겠다는 마음으로 회사에서 만든 모임이었고, 2년 동안이나 모임을 유지할 수 있었다. 물론, 2년 동안 모두 열심히 공부해서 영어 실력이 일취월장했다는 동화같은 해피엔딩은 아니었지만, 2년이란 긴 시간동안 꾸준히 했다는 게 대단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 "함께"라는 가치가 중요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강원국 작가도 글쓰기를 잘 하기 위해서 사람들과 함께 글을 쓰라고 이야기 한다. 글을 쓰다보면 반드시 오는 슬럼프를 극복하는 데 용기를 주는 동무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함께 쓰는 것 자체로도 충분히 의지가 될 수 있다.


뭐가 됐든 꾸준히 실행하는 데 있어 함께할 수 있는 사람들이 지속할 수 있는 힘이 된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걷는 사람, 하정우>를 읽으며 하정우 님에 대해 오랫동안 가져왔던 선입견을 지워버릴 수 있었다. 추격자의 살인자로서의 강렬한 인상을 놓아줄 수 있었다. 얼굴을 가린채 한강 주변을 , 또는 여유있게 하와이를 걷고 있을, 걷는 사람으로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행히도...


그리고 하정우 님의 오늘을 만들 수 있게 도와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 또한 다행이었다. 하정우 님의 걷는 사람은 하정우 님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책을 보면서 계속 생각할 수 있었다. 물론 걸으면서 생각을 정리한 이야기는 오롯이 하정우 님의 이야기겠지만 그 생각을 갖게 한 데 하정우 님의 친구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에 뭔가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다. 함께하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하정우 님의 걷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정우 님만의 이야기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름도 제대로 모르지만 밍태, 좐큐, 찰리, 코피, 랭보, 싼드리나라는 하정우와 함께 걷는 사람들에도 관심을 가져보자. 함께 해서 더 많이 걸을 수 있었으니까!


책 제목을 다시 만들어 보자.


<걷는 사람, 하정우, 밍태, 좐큐, 찰리, 코피, 랭보, 싼드리나... 그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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