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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호진 Jun 08. 2019

[휴직일기] 부모님 댁에 다녀왔습니다.

부모님은 제가 휴직한지 모르십니다.

현충일 연휴 아이들과 부모님 댁에 다녀왔다.


징검다리 연휴였다. 큰 아들과 작은 아들 모두 학교와 유치원이 쉬었다. 일정이 자유로운 나까지 세명은 어디든 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아내의 회사 일정만 맞으면 되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속초에 있는 아내 회사의 연수원을 잡아 놓았다. 속초에서 바닷바람도 쐬고 설악산의 정기도 받아올 생각이었다.


하지만 인생은, 언제나 그렇듯이, 계획대로 되진 않았다. 아내가 징검다리 기간에 휴가를 낼 수 없었던 것! 아내가 없으면 아내 회사 연수원도 갈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6월초 속초 여행은 아쉽지만 취소해야 했다.


긴 연휴 기간 아이들을 끼고 서울에 있기도 애매했다. 어디라도 가서, 뭐라도 하는 게 좋을 듯 싶었다. 전주에 있는 부모님 댁에 다녀오기로 했다. 설 이후 이런 저런 사정으로 인해 찾아뵙지도 못했는데, 가면 좋아하실 것 같았다. 가면 전주에 사는 사촌과도 놀 수 있기에 아이들도 신이 났다. 그렇게 현충일 연휴에 아이들과 전주에 다녀올 수 있었다. 엄마 없이!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 내려간 아이들은 신이 났다. 할머니가 차려주신 맛있는 음식도 먹었다. 전주에서 대기하고 있던 사촌형과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오랜만에 만난 사촌과 밤늦도록 게임도 하고, 티비도 보며 즐겁게 놀았다.


광주까지 가서 야구도 봤다. 올해 첫번째 직관이었다.

양현종 선수의 선발 경기였다. 평일 낮 경기였지만 구름낀 날씨 덕분에 시원하게 야구관람을 할 수 있었다. 현충일이라 치어리더와 함께 응원을 하진  못했지만, 우리가 응원하는 기아타이거즈 선수들이 신바람나게 경기를 해 준 덕분에 즐겁게 관람할 수 있었다.


야구가 끝날때쯤 비만 안왔더라면 더 더 더 좋았을텐데...


아이들이 좋아하는 실내놀이터에서 신나게 놀기도 했다. 놀토피아라고 초등학생 이상의 아이들이 즐길만한 실내놀이터였다. 7살 둘째도 형, 누나들 사이에 끼어서 잘 놀았다. 로프에 몸을 맡겨서 벽을 타고 높은 데 올라가며 아이들은 즐거워했다. 덕분에 나 또한 편히 쉴 수 있었고.

간만에 찾아뵈어서였는지 부모님도 꽤 반가워하셨다. 두 분만 사는 집에 손주들이 와서 시끌벅적하셨을테니 좋으셨을게다. 속초에 가지 못했지만,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부모님은 부모님대로 즐기시는 것 같아 만족스러운 현충일 연휴였다.



휴직 이후에도 꾸준히 하는 것에 대하여


아이들도 부모님도 즐거워하는 시간이었지만, 나에게는 조금 부담스러운 시간이기는 했다. 매일 아침마다 해야하는 루틴들이, 부모님 댁이라는 낯선 곳에서 깨질까봐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아주 작은 습관의 힘>에서 저자는 습관을 시스템화하기 위해서 이틀을 거르면 안된다고 했는데, 부모님 댁에서의 3박 4일 동안 꾸준히 나의 루틴을 실행할 수 있을지 걱정됐다. 나의 영원한 파트너인 아내도 없었으니 더 불안했다.


그래도 5개월 넘게 진행해온 루틴이어서인지, 낯선 환경에서도 하나씩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 아침에 일찍 눈을 떴고, 밖에 나가 열심히 뛰고 왔다. 익숙하지 않은 길이라 빠르게 뛰지는 못했지만, 언덕을 올라가야 했기에 올라가는 코스가 꽤나 고통스러웠지만, 그래도 다행히 하루도 거르지 않고 달릴 수 있었다. 비가 오는 날엔 패스하겠다고 다짐했는데, 하늘이 나의 마음을 알아줬는지 딱 그 시간에만 비가 그치기도 했다. 하늘이 나의 루틴을 응원하는 것 같아 달려야만 했다.

같이 달리기를 하는 지인의 말에 따르면 달리기는 베팅에서 질 수 없는 도박과 같은 것이라고 했는데, 그 말이 맞았다. 그렇게 겨우 겨우 하늘의 계시에 따라 달린 날에도 역시 좋았다. 달리기를 하러 나가는 게 힘들어서지, 나가기만 하면 언제나 쏟은 땀만큼 얻는 것도 많은 게 달리기다.


마지막 날에는 멋진 하늘을 보기도 했다.

매일 해야 하는 것들도 집에서처럼 열심히는 아니었지만, 틈틈이 실천에 옮길 수도 있었다. 다행이었다. 매일 했던 것들을 그래도 부모님 댁이었지만 할 수 있어서.  


솔직히 말할 수는 없었다.


부모님은 나의 부지런함에 신기해하셨다. 늦잠자는 게 일상이었고, 운동과도 담을 쌓던 아들이었는데 새벽 5시도 안되어 운동하러 나가는 모습을 보았으니 새롭게 느껴지시는 게 당연했을 것이다. 기특해 하시는 것 같았다. 부모님이 기대하시는 성공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지 않으셨을까 싶기도 했다. 회사에서 승진해서 임원이 되고 뭐 그런 걸 바라셨겠지? 부모님의 세대에서의 성공이란 그런 것일테니...


언제나 그렇듯이 부모님은 내가 가진 재능보다 나를 높게 평가하셨고, 내가 될 수 있는 사람보다 더 높은 지위의 사람이 되시길 바랐다. 그렇기에 나는 부모님의 기대가 조금은 부담스럽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휴직을 했다고, 그리고 지금 나에게 진짜 필요한 것들을 찾아가고 있다고 말씀드리지 못했다.


굳이 부모님께 걱정을 끼쳐드릴 필요가 있겠냐고 합리화하기도 했다. 내가 휴직해서 지내는 것이 부모님의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니었다. 경제적 원조를 바라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서 나의 휴직은 부모님께 근심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이 컸다.


그리고 이번 연휴기간 동안 부모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휴직해서 지내는 나의 일상을 공유하지 않기를 잘했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70이 넘으신 부모님이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남들보다 빨리 승진했으면 좋겠고, 힘들더라도 꿋꿋하게 직장을 다니는 것을 바라시는 것 같았다. 평생 선생님을 하셨던 아버지와, 평생을 그런 아버지와 함께 해온 어머니의 입장에서는 자식의 모험보다는 안정적인 삶이 더 좋아 보이는 듯 했다.




얼마전 만난 회사 선배는, 나에게 비겁한 것 아니냐고 냉정하게 말씀을 하시기도 했다. 휴직을 했으면 당당하게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굳이 부모님께 비밀로 할 이유가 없지 않냐고 나의 "비겁함"을 비판하기도 했다. 일견 맞는 말이기도 했다. 나중에 부모님께서 아신다면 받으실 충격이 더 클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솔직히 나는 부모님을 설득할 용기가 없었다. 그리고 언제나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했던 아들이었기에 부모님께 걱정을 끼쳐드리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조용히 이렇게 지내는 것이 좋을 것이라 판단했다. 간만에 뵙고 온 부모님께 나의 상황을 말씀드리고 지지를 구하고 싶었지만 다음 기회가 더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비겁하지만, 인생에서 때로는 선의의 거짓말이 필요하다고 믿고 싶었다. 그렇게 현충일 연휴에 부모님을 뵙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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