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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호진 Jun 15. 2019

취할 것은 취하되, 취하지는 말자

나를 비판하는 사람에게 감사하라

선배의 말 한마디


얼마전 회사 선배와 핸드폰 문자 메시지로 대화를 나눴다. 회사에서 퇴직하고 정부에서 일하시는 선배였다. 내가 좋아하는 선배였고, 안부를 묻고 싶은 생각에 별다른 목적 없이 연락을 드렸다.


선배 : 휴직하고 노니까 좋지?

나 : 네

선배 : 마누라 그만 속 썩이고 얼른 복직해라. 나중에 늙어서 혼난다

나 : 그럴지도 모르죠. 나중에 돈 많이 벌면 되지 않을까요?

선배 : 페이스북에 쓰여 있는 너 잘하고 있다는 말에 혹하지 말고

나 : 네 그래야죠. 감사합니다.


나중에 만나서 식사하자는 훈훈한 이야기를 하고, 선배와의 짧은 대화를 마쳤다. 선배와의 대화가 끝나자 한동안 선배의 이야기가 신경쓰였다. 처음에는 내 맘도 몰라주는 것 같아 서운했다. 선배에게 따뜻한 응원 한마디를 기대했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곱씹어 보면 볼 수록 선배의 이야기가 맞는 말이었다. 어쩌면 나는 사람들이 잘한다고 이야기 하는 우쭈쭈 소리에 너무 길들여졌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뻔뻔하게도 조회수에 취해있었다.


최근 들어 나도 글 좀 쓰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사람들이 우쭈쭈해줘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나름 글쓰기 실적이 좋았다. 몇 주간 브런치에 발행하는 글들의 조회수가 많았다. 얼마 전에 쓴 <걷는 남자, 하정우> 책에 대한 서평인 "하정우는 혼자 걷는 것이 아니었다"는 4만 조회수를 찍기도 했었다. 한 편 한 편 정성들여 쓴 <직장생활에 대한 아쉬운 점>에 대한 이야기는 발행할 때마다 나름 조회수가 높았다. (천 이상이면 높은 거겠지?)


브런치에 대해 좀 아는 사람들에게 조회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는 내가 너무 조회수에 취해있었단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들은 내게 브런치 조회수가 꼭 좋은 글을 장담하지 않는다고 내게 이야기해주었다. 제목이 자극적이었을수도 있고, 글이 최근 유행에 맞는 글이어서 그럴 수도 있다고 한다. 하정우의 이야기도 제목에 "하정우"를 넣지 않았다면 그렇게 조회수가 높지 않았을 수 것이다. 게다가 브런치 담당자들이 하나하나 글을 읽고 큐레이션을 하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물론 정확한 시스템은 모르겠지만 다음 홈페이지 메인에 걸리고, 브런치 홈 상단에 노출되는 것도 꼭 글이 좋아서는 아니라고 한다. 나름 기계적인 판단이 개입된단다.


결국 너무 조회수라는 약에 취해서는 안된다.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읽어준다는 것에 감사할 필요는 있지만 말이다. 


느슨한 관계의 사람들의 칭찬에 취해 있었다.

요즘 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대부분이 휴직 이후에 알게 된 사람들이다. 확실히 회사에서 만난 사람들과는 에너지가 달랐다. 새로운 것을 탐구하는 마음도 컸고, 스스로의 한계를 깨보려는 의지도 강했다. 덕분에 나도 큰 자극을 받으며, 매일 조금씩 성장할 수 있었다.


휴직이후에 만난 사람들도 좋았고 그들과의 관계도 좋았다. 적당히 연계되었지만 서로에게 너무 깊게 개입된 사이는 아니었다. 그래서였는지 대부분의 대화가 서로의 성장을 격려하는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잘 하고 있다며, 조만간 성과가 나올 것이란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덕분에 떨어진 자존감도 많이 올라갔다. 하다보면 뭐라도 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


하지만 선배의 말마따나 잘한다는 그들의 이야기에 취하는 것은 문제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그들이 나에게 비판하기가 쉽지 않다. 느슨한 연대의 사람에게 쓴소리를 하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그들의 응원과 격려가 가식이라는 말은 아니다. 그 말을 잘 받아들이되, 스스로의 단점과 한계에 대해서는 잘 받아 안을 필요가 있어 보였다. 


지지자 VS 저지자


얼마 전 지인의 추천으로 이민호 작가의 <말은 운명의 조각칼이다>를 읽었다. 스피치 강사인 그의 말하기 이야기를 통해 어떻게 하면 더 말을 잘 할 수 있을까 고민할 수 있었다. 그는 말하기 실력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소개한다. 그 중 하나가 지지자와 저지자를 동시에 두라는 이야기였다.


응원단처럼 따뜻한 친구를 지지자, 감사팀처럼 정확한 친구를 저지자로 나눈다면 둘 다 필요하다. 지지자만 있으면 나의 잘못을 찾아내기 힘들 것이다. 저지자만 있으면 자신감을 잃고 나락에 빠질 수도 있다.

그 뒤로 내가 변했다. 자신감이 필요할 때는 지지자를 찾았고, 날카로운 피드백이 필요할 때는 저지자에게 물었다. <말은 운명의 조각칼이다 중>


어쩌면 요즘 내게는 지지자 못지 않게 저지자 또한  필요해 보였다. 지난 몇달간 지지자 덕분에 성장할 수 있었다면 이제는 저지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더 단단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저지자의 비판 때문에 상처받고 흔들리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비판 한 번으로 나 스스로에 대해서 “안된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하니까. 다행히 요즘은 비판을 받아도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 스스로 확신도 생겼다. (물론 여전히 비판은 무섭다.)


비판과 칭찬을 함께 해주는 사람을 옆에 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칭찬 8, 비판 2 정도를 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다행히 나에게는 그런 역할을 아내가 해주곤 한다. 물론 아내가 비판할 때마다 가슴이 떨리긴 하지만. 인생의 멘토도 찾아가 보는 것도 방법이다. 인생의 멘토가 있다면 말이다. 그들에게서 좀 더 나를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비판해달라고 부탁해보자. 얼마전 선배가 나에게 카카오톡으로 이야기 했던 것처럼 말이다. 


휴직을 하고 나서 술을 끊었다. 맥주 한 잔 정도는 마시지만, 취하게 마시지는 않는다. 거나하게 술을 마시는 게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술에 취한 나의 모습이 별로 좋아보이지 않기도 했다. 술의 힘을 빌어 현실을 도피하고 싶어했던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술을 끊고 지낸 몇달이 나쁘지 않았다. 굳이 현실에서 벗어나고싶을 정도로 술을 마시고 싶지도 않다.


그런데 최근 나는 조금 취해 있었던 것 같다. 술에 취했던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이 나에게 우쭈쭈해주는 소리에 취해 있었던 것 같다. 물론 그 취기가 나에게 충분한 자극도 되고 성장을 위한 에너지가 되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예전에 술에 취했던 것처럼 너무 취하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얻을 것을 취하더라도, 칭찬에 취하지는 말자.나를 일깨워준 선배의 말한마디가 너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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