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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호진 Jun 01. 2019

[휴직일기] 바쁜 게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조금 더 가볍게 살아도 괜찮습니다.

오늘은 도저히 못 뛰겠다.

금요일 새벽, 여느때처럼 4시 알람을 듣고 잠에서 깼다. 새벽에 일어난지 5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일어나는 게 힘겹다. 그래도 일어나고 나면 괜찮았는데, 이날은 너무 힘들었다.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그래도 일어나야 했다. 매일 그렇게 일어나기로 했으니까.


일어나서 일기를 간단히 쓰고 영어 책을 읽었다. 평소 같으면 정신이 말짱해져야 할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날은 도저히 잠에서 깨기 힘들었다. 달리기를 하러 밖으로 나가야 했지만 이날은 나갈 수 없었다. 결국 나는 한 시간을 더 자고나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2월부터 매일 달렸는데, 처음으로 달리기를 걸렀다. 많이 안타까웠다. 내 자신과의 약속을 깬 것 같기도 했다. 매일 하기로 했는데, 왜 나는 그 약속을 못지켰을까라는 아쉽다는 생각 뿐이었다. 사람들은 로봇세상에서 드디어 인간세상으로 돌아왔다며, 힘들 때 쉬는 게 당연하다고 위로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했다. 최근에 무리한 일정을 보내긴 했었다. 일요일에 하프 마라톤을 뛰고나서도 쉬지 않고 매일 달렸다. 매일 글을 쓰고, 사이 사이 사람들도 만났다. 저녁에 수영도 했다. 몸을 혹사시키는 건 아닌지 걱정되기도 했지만 그렇게 해야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는 것 같았다. 마음속으로는 "좋다"라고 생각했었지만 몸은 피곤함에 견디기 힘들어 했던 것 같았다.


내가 달리는 것을 거른 것은 무리하지 말라고 몸이 신호를 보냈던 것일런지도 모르겠다.


바빠야만 한다는 강박관념

요즘 일상을 돌이켜봤다. 뭔가 쫓기듯 바쁘게 지내고 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밤에 잠이 들때까지 항상 분주하다. 매일 해야 할 것들을 챙기고, 사람들을 만나서 대화를 하다보면 하루가 금세 지나간다. 독서모임이나 각종 자기계발 관련 모임을 하고 돌아오는 날에는 회사 다닐 때보다 더 바쁜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물론 회사 다닐 때에 비하면 훨씬 편하게 생활하고 있긴 하지만 뭔가 항상 분주하다는 느낌을 지우기는 어렵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라는 말처럼 실속을 차리며 바쁜 것은 아니다.  즐기는 것도 아니고 의미있는 결과물을 생산하는 것도 아니다. 이렇게 바쁘게 생활하는 게 맞나라는 회의감이 가끔씩 나를 힘들게 만들기도 한다.


회사 다닐때, 바쁘다는 것은 "무능"의 상징으로 여기곤 했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쁘다는 것을 과시용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바빠 죽겠어",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라고 푸념섞인 말을 해야 윗사람들이 알아준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을 회사에서 대우해주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나는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스스로 자신을 컨트롤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까워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바쁘다는 말을 하는 것을 가급적 삼갔는데, 요즘 내가 그렇게 바쁘다고 아우성 치고 있었다. 스스로에게 바빠 바빠를 이야기 하곤 했다. 나에게 일을 시키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나는 스스로 무능함을 인정하기라도 하듯이 바쁘게 지내는지 알 수 없었다.


나의 바쁨의 중심에 "글쓰기"가 있었다.

곰곰이 나의 일정을 다시한번 체크해봤다. 무엇 때문에 하루 종일 바쁘다는 생각을 하는지 돌이켜봤다. 매일 하는 일 중, 시간을 가장 많이 할애하는 것은 바로 "글쓰기"였다. 블로그 또는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위해 정성스럽게 포스팅을 준비했다. 하루에 서너시간은 족히 들어가는 것 같았다.


사람들에게 어깨에 힘을 빼고 글을 쓰라고 이야기 했지만, 자꾸 내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최근 블로그와 브런치에서의 반응이 좋아지는 것도 한 몫했다. 내가 글을 쓰면 사람들이 알아봐주고 내 글에 반응을 보여주니 더 글을 잘 써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출판 담당자가 내 글을 읽고 연락해주기를 바라기도 했다. 물론 아무도 연락은 없지만...


글쓰기에 온전히 집중한 것도 아니었다. 글을 쓴다고 노트북을 펴놓고 있으면 잘써여 한다는 부담감에 제대로 안써지는 경우가 많았다. 겨우 한 문장쓰고 한참동안 카카오톡으로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다가, 다시 한 문장 쓰고 페이스북에 들어가 SNS질을 하기도 했다. 글쓰는 시간을 10이라고 하면 정신을 집중해 문장을 만들어 가는 시간이 3도 안되는 것 같았다.


나의 철학을 공고히 할 때


얼마 전 책을 쓴 저자와 차를 마셨다. 그에게 많은 조언을 들을 수 있었다. 그의 생각을 들으면서, 깊이가 느껴지기도 했다. 역시 아무나 책을 쓰는게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그에게 내가 얼마나 글쓰기에 공을 들이는 지 이야기 했다. 그리고 그는 나에게 단호하게 이야기 했다.


"출간 계약하셨어요? 그런게 아니라면 글쓰는 시간을 줄이세요"


지금은 여유롭게 즐기는 때라고 이야기 했다. 너무 각박하게 사는 게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충고했다. 글을 쓰느라 오랜 시간을 갖는다고 해서 출판사들이 찾아오지 않는다며, 나만의 독특한 시선을 갖는게 중요하다고 나에게 말해줬다.


"지금을 즐기셔야 합니다. 여유롭게 지내야 해요. 너무 힘들게 시간에 쫓겨 지내지 말고 본인의 철학을 더 깊이있게 만드세요. 글쓰는 데 시간을 너무 많이 투여하지 말고, 책을 읽고 사람들을 만나세요."


최근에 아내와도 비슷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아내는 최근 나의 글이 예전같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어깨에 힘이 들어가면서 글이 무거워졌다는 것이었다. 가볍게 써도 좋을 것들을 너무 진지하게 정리하는 것 같단다. 사람들이 내 글을 보고 반응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사람들을 의식하고 글을 쓰는게 아내에게 들켜버린 느낌이었다. 역시 애독자는 예리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가볍게 읽어보자


김민식 피디님의 강연회에서 김보통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리고 우연히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그의 책 <어른이 된다는 서글픈 일>을 찾게 되었다. 마음에 드는 책은 먼저 사고 보는 성격인지라 우선 사고 봤다. 그리고 한참 서재에 놓아두었다가, 얼마전 그의 책을 찾아 읽게 되었다. 왠지 무거워진 나의 어깨에 짐을 덜어줄만한 책인 듯 싶었다. 가볍게 읽어봤다.


'지금부터 엄청난 글을 써봐야지'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소소한 이야기들을 주로 씁니다. 대부분이 지나간 이야기라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신기하게도 흐리멍덩한 잔상으로 남아 있던 것들이 쓰기 시작하면 조금씩 선명해집니다. 물론 많이 왜곡되어 있을겁니다. 퇴색된 것도 있겠고요. 그러나 정확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잊혀진 것은 잊혀질 만한 이유가 있을테니까요. (어른이 된다는 서글픈 일 中)


어깨에 힘을 빼고 글을 쓰겠다는 그의 마음이 느껴졌다. 물론 그렇다고 그의 이야기가 전혀 가벼운 이야기는 아니었다. 쉽게 읽혔지만, 그냥 넘길 수 없는 생각들도 많았다.


그의 책을 보면서 글을 쓰는 것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나의 일상을 다시 곰곰이 정리해보고 있다. 바쁘게 사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다. 바쁘다고 이야기 하는 것은 내가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을 입증하는 길 밖에 안된다. 좀더 생각을 많이 하고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할 듯 싶다.




다행히 토요일에는 아침 일찍 일어나 달리기를 할 수 있었다. 하루 안하면 다음날 못할 것만 같았는데 그래도 이틀을 거르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이제 좀 더 여유를 가져보려 한다. 벼랑끝으로 모는 것이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 마음의 여유를 갖고 주변을 둘러보며 사는 것이 내게 필요하다. 적당히 게으름도 피우면서 사는 게 지금 나에게 필요하다.


그래도 하루 늦잠을 잤더니 몸도 많이 개운하다. 오늘은 간만에 낮잠도 잤다. 호흡을 길게 가져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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