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이 필요하다

스스로 마감 정하기

마감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 한때 입에 달고 살았던 말이다. 출판사를 그만두고 대기업에서 사보를 만들던 때였다. 조직 내 변화 때문에 나의 사수는 다른 직무로 배치되었고, 두 명이 하던 일을 나 혼자 해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기획, 원고 청탁, 스케줄링, 출장, 인터뷰, 사진 촬영, 원고 쓰기, 원고 독촉, 교정, 편집까지 모든 걸 책임져야 한다는 의미였다.


마감 때는 아예 편집 에이전시에서 살다시피 눌러앉아 편집 디렉션을 주고 교정을 보는 틈틈이 원고를 썼다. 사내 뉴스, 인물 인터뷰 혹은 탐방 기사, 기획 기사, 기타 자잘한 꼭지의 기사들을 써내야 했다. 자정을 넘기는 건 기본이었고, 집에 돌아와서도 새벽까지 원고를 썼다. 잠의 유혹을 도저히 견디지 못할 것 같은 날엔 아예 편집 에이전시에서 다시 회사로 돌아와 사무실 책상에서 밤새 원고를 마감하고 날이 새면 근처 설렁탕집에서 부석부석한 얼굴로 국물에 밥을 말아먹었다. 그 어느 때보다 몸이 축나는 시기였다. 미련한 완벽주의라고나 할까. 혼자서도 이렇게 잘 해낼 수 있다는(심지어 더 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대충 해도 될 일까지 최선을 다해서 완벽을 기하려는 습성. 직장생활 초기였고, 파레토 법칙 즉 80:20 룰을 체득하기 전이었으니까. 무모한 욕심과 열정에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던 미련한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는 얘기를 하려던 건 아니었고.


허구한 날 함께 밤을 보낸 편집 에이전시 식구들과 늘 이런 이야기를 했다. "책과 아기는 때가 되면 다 나온다." 그건 놀랍게도 사실이었다. 마감에 쫓겨서 죽을 것 같다가도 어찌어찌하다 정신을 차려보면 제 날짜에 제본된 책이 도착했으니까. '마감의 힘'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마감을 저주하고, 마감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고 징징대면서도, 나는 마감 때문에 힘을 내고(기운을 짜내고) 일을 마칠 수 있었다.


마감의 꽃은 역시 원고 마감. 죽었다 깨어나도 오늘 안에 원고를 넘겨야 한다,는 압박감은 대단한 것이어서 나는 아수라장 속에서도 노트북을 펴고 원고를 썼다. 최근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배우 윤여정이 꽤 오래전에 어느 예능 프로에 나와서 했던 말을 나는 기억한다. "배우가 제일 연기를 잘할 때는 돈이 필요할 때"라고 솔직하고 당당하게 말했던 그녀. 원고 역시 마찬가지. 원고는 영감으로 써지지 않는다. 마감(과 그로 인한 절박함)에 의해 써진다. 물론 마감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상당한 동기로 작용하는 것만은 사실이다.


당시 건조한 원고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생각해보면 애착을 가지고 공들여 쓴 원고들도 있었다. 그런 것들은 대부분 인물 인터뷰였던 것 같다. 유명인도 아닌 평범한 사람들을 1:1로 만나 개인 서사를 들을 수 있는 기회는 내게 주어진 특권이기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은 어느 지방 영업소의 중견 사원. 인터뷰 과정에서 그가 오랜 작가 지망생이라는 사실을 알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 나는 왜인지(동병상련일까) 그 인터뷰 원고에 공을 들였고, 쓰는 데 어느 때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너무나 오래전 이야기라 그 사원의 이름도 원고 내용도 거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마감을 코앞에 두고 사무실에 혼자 앉아 타인의 (인상적인 그리고 공감할 만한) 이야기 - 누군가의 인생서사 - 를 글로 옮기는 시간이 주었던 독특한 질감의 즐거움은 잊을 수 없다. 만약 내가 그와 가볍게 차를 한 잔 마시며 무심코 들은 이야기였다면, 인터뷰라는 형식과 마감의 부담이 없었다면, 과연 그 이야기를 글로 옮겨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형식이 내용을 견인한다는 말에 동의한다. 나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신봉하는 쪽이지만, 강력한 내적 동기나 외적 강제성이 없으면 한없이 게을러지는 것도 인간이라고 믿는 편이다.


이후 홍보와 마케팅 커리어를 쌓으면서 무수히 많은 프로젝트를 맡고 그때마다 데드라인에 쫓겼지만, 사회 초년병 시절 원고를 마감하던 때의 그 독특한 감정(고통을 수반한 쾌감이랄까)과 유사한 느낌은 다시 오지 않았던 것 같다. 직장생활을 하며 다종다양한 스트레스를 겪고 보니, 원고를 쓰며 마감할 때의 스트레스가 그중 가장 감당할 만한(혹은 은근히 즐길 만한 성질의) 것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인지 업무상 자주 만나는 (신문 혹은 잡지사) 기자들이 마감에 쫓겨 괴로움을 호소할 때 나는 적극적으로 공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은근히 부러웠던 것 같다.


마감 없는 세상이 과연 재미있을까. 삶도 죽음이라는 마감이 있어 의미 있는 것일 텐데. 마감 없는 세상에 살고 싶어,라는 나의 외침은 사실 이런 것 아니었을까. 마감 있는 세상까지는 좋은데 마감일에 다다르기까지 좀 더 수월할(덜 고통스러울) 수는 없을까 하는 마음. (그런데 과연 수월한 마감이라는 게 가능하기는 한 걸까......?)


지금의 현실에 비추어 내가 바라는(혹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1) 아무도 내게 마감일을 지정해주지 않지만(외적 강제성이 없지만) 그냥 쓴다(내적 동기를 자가발전시킨다).

2) 마감이 없어서 쓰지 못하는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스스로 마감일을 설정한다. (그렇지만 강박이 되어서는 안 된다.)


뭐 이런 것들이겠지. 나 좋자고 쓰는 일이지만 그게 의무가 되고 업이 되면 역시 힘들어진다,는 것도 안다. 그렇더라도, 모리스 블랑쇼가 "청탁이 곧 재능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누군가 내게 마감이 있는 글쓰기를 종용하는 날이 온다면 그건 또 색다른 기쁨이 되겠지.


마감 없는 세상은...내가 꼭 원한 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마감은 곧 동기이니까. 죽음이 삶의 동기가 되는 것처럼. 동기만큼 강력한 추동력이 있을까.


나는 마감이 필요하다.


(20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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