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

이문재 첫 시집에 부쳐

by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인생의 첫 변곡점이라 할 수 있는 해에 이 시집이 나왔다(는 것을 지금에야 알았다). 1988년. 88올림픽이라는 역사적 해를 맞아 우리집은 아버지의 사업 실패라는 개인적 재해를 맞았다. 거시적 측면에선 국가적 이벤트. 미시적 차원에선 한 가정의 몰락.


30년 전의 여자아이는 이후로 기이한 자의식과 (부정교합처럼) 어긋난 자아의 상에 붙들려 괴로워(하는 척)했다. 그 시간을 되짚어 시인의 말들을 이입해 중구난방 다시 시집을 읽어본다. 새로울 것도 없지만 무의미할 것도 없다는 생각으로.


1988년 판에 부친 시인의 자서(自序)도 그때의 눈으로 읽히고.


젖은 구두를 벗어 해에게 보여주다 울기도 했었다 간혹 젖지 않는 길로 다니는 세상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하였다 굴러가는 바퀴의 구르지 않는 한 점을 확인하고 싶었다


- 이문재,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 문학동네, 1988년 판 自序 중 일부)


이후 나를 괴롭혀온 악몽은 당시 살던 파란 대문 집에 관한 것이었고, 내 무의식에 검질기게 달라붙어 꿈에 나타나는 옛집은 공포와 불안의 공간으로 시각화되면서 마흔이 넘도록 반복-변주되었다.


'우리 살던 옛집 지붕'이라는 아름답고도 슬픈 시를, 아련하고 두려운 기억으로 불러내 읽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시 속 화자가 그리움으로 환기하는 옛집 푸른 지붕이 내 어린 시절 굳게 닫힌 푸른 대문으로 뒤바뀌어 떠오르는 것도 어쩔 수 없기는 마찬가지.

우리 살던 옛집 지붕에는

우리가 살면서 이름 붙여준 울음 우는

별로 가득하고


(...) 그 집에서는 죽을 수 없었다

그 아름다운 천장을 바라보며 죽을 수 없었다

(...) 그 시절은 내가 죽어

어떤 전생으로 떠돌 것인가

알 수 없다

내가 마지막으로 그 집을 떠나면서

문에다 박은 커다란 못이 자라나

집 주위의 나무들을 못 박고

하늘의 별에다 못질을 하고

내 살던 옛집을 생각할 때마다

그 집과 나는 서로 허물어지는지도 모른다 조금씩

조금씩 나는 죽음 쪽으로 허물어지고

나는 사랑 쪽에서 무너져 나오고

알 수 없다


- 같은 책, '우리 살던 옛집 지붕' 일부 14-16쪽


"나는 금요일 생이다" 라는 첫 행으로 시작하는 '생일주간'이라는 시를 보며, 나는 무슨 요일 생이던가 헤아려보기도 하고. (나는 목요일 생이었다.)


표제작 '내 젖은 구두를 해에게 보여줄 때'를 읽을 때에는 '나보다 옷부터 미리 만들어놓은 그'를 생각하기도 하고, 그가 만들어준 '초록빛 옷'에 슬며시 내 몸을 꿰어보기도 하면서.

그는 두꺼운 그늘로 옷을 짓는다

아침에 내가 입고 햇빛의 문 안으로 들어설 때

해가 바라보는 나의 초록빛 옷은 그가 만들어준 것이다

나의 커다란 옷은 주머니가 작다


(...) 어두운 곳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수많은 것들은 나를 좋아하는 경우가 드물고

(...) 사람들은 나의 초록빛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나보다 먼저 옷을 지어놓았다

그렇다고 나를 기다린 것도 아니어서

나의 초록빛 옷은 주머니가 작으며

아주 무겁다


- 같은 책, '내 젖은 구두를 해에게 보여줄 때' 일부 91-92쪽


그리고 '그는 말이 없었다 어쨌든 그는 말이 없었다'는 부제가 붙은 '김씨의 인터뷰'를 가만히 읽는다.

우리들의 축복은 아침에 죽는다 (...) 우리들의 축복은 우리들이 갖지 못한다 우리들의 축복은 축복이라는 이름 안에서만 축복이다 절망의 문패를 보면 익숙하게 피해버린다 오늘도 우리는 축제의 노래를 부른다 희망은 가장 좋은 의미에서의 거짓말이라고 어쨌든 거짓말임에는 틀림이 없다 아는 사람들 중에도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모르는 사람들 중에도 이미 알아온 사람들도 있고 해서,

- 같은 책, '김씨의 인터뷰' 일부 122쪽


이 시집의 마지막 시 '길에 관한 독서'를 가장 길게 읽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고.


1

한때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주곤 했을 때

어둠에도 매워지는 푸른 고추밭 같은 심정으로

아무 데서나 길을 내려서곤 하였다

떠나가고 나면 언제나 암호로 남아버리던 사랑을

이름 부르면 입 안 가득 굵은 모래가 씹혔다

(...)


3

길은 언제나 없던 문을 만든다

그리움이나 부끄러움은 아무 데서나 정거장의 푯말을 세우고

다시 펴보는 지도, 지도에는 사람이 표시되어 있지 않다


4

가지 않은 길은 잊어버리자


- '길에 관한 독서' 일부 169-170쪽


1988년 민음사 판에도 실렸던 문학평론가 최동호의 글은 이문재라는 시인의 첫 시집을 '방랑자의 길과 편력시대'라고 설명하고 싶어하고. 나는 그의 평이 온당한지 여부엔 관심이 없다. 다만 시인을 '성실성'이라는 키워드로 읽어내고 "그의 성실성이란 아마도 생존하기 위한 절박한 자의식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고 밝히는 부분에 동의할 뿐이다.


유독 '저문'이라는 형용사가 자주 보이는 그의 시(저문 강, 저문 길, 저문 비 등)들은 '황혼병'이라는 제목의 시 세 편으로 이어진다(황혼병, 다시 황혼병, 황혼병 3). 당시 서른도 안 된 젊은 시인이 자신의 첫 시집에 이토록 짙게 호출한 황혼의 이미지에 나는 잠깐 아득해진다. 젊든 늙었든 걸어온 시간의 끄트머리엔 늘 '지금'이라는 황혼이 걸려 있게 마련이고. 붉은 황혼은 어딘지 모르게 부끄러움을 환기시키니까.


그의 시에 부쳐 최동호가 말했듯 "어른이 된다는 것은 선인장 가시처럼 적의를 키우는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무덤을 키우는 일"이다. 무덤을 키우는 시간이 서글픈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배우는 요즘이다. 키운다,는 것은 변화를 받아들인다,는 의미도 되니까.

변화에 무심하지 않고 변화에 민감하고 싶다. 미세한 변화에도 섬세하게 작동하는 센서처럼, 감지력과 접속력을 키우는 것이 무덤을 키우는 과정과 나란히 갈 수 있었으면.


시인의 말,에서 이문재는 이렇게 말했다.

"아직도 구두는 젖어 있다. 그러나 이제는 젖은 구두를 벗어 해에게 보여주지 않을 것이다.”


서른 해를 거슬러, 서른 즈음에 이 시집을 낸 시인의 마음이, 이제는 서른을 넘기고도 한참이 지난 내게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묘하게 스며드는 것은 물론 시의 힘이겠지.


나의 구두는 아직도 젖어 있고. 그러나 이제는 젖은 구두를 벗어 해에게만 보여주고 싶지 않다. 구두를 벗어 젖은 발을 말리는 사람들. 그런 이들과 함께 해에 대해서 말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202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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