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생활을 돌아보며 (feat. 찰스 로이드 & 피에르 쌍소)
# 찰스 로이드의 <The Water Is Wide>를 들으며
바빴던 지난 주에 비하면 이번 주는 평화이다. 오랜만에 창가에서 사이공 강을 바라보니, 여기 온 이후로 잔잔한 강물이 주는 마음의 평화를 퍽 많이도 누리며 살았구나 싶다.
찰스 로이드의 앨범 <The Water Is Wide>를 꺼낸다. 찰스 로이드의 색소폰에 브래드 멜다우(Brad Mehldau)의 피아노, 존 애버크롬비(John Abercrombie)의 기타, 래리 그르나디에(Larry Grenadier)의 더블베이스, 빌리 히긴스(Billy Higgins)의 드럼이 어우러진 앨범이다.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The Water is Wide야 워낙 유명한 포크송이라 그 동안 수많은 뮤지션들이 커버해 왔지만, 찰스 로이드는 2000년에 아예 앨범 제목으로 <The Water Is Wide>를 내놓았다. 그래서인지 두 번째 트랙에 수록된 The Water Is Wide는 좀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곡에 대한 그의 깊은 애정이 느껴진달까.
사실, 찰스 로이드가 새로운 멤버들과 뉴 쿼텟을 꾸려 들려주는 <Mirror>(2010) 앨범에 실린 The Water Is Wide가, (개인적으로는) <The Water Is Wide> 앨범에 수록된 버전보다 훨씬 더 생동감 있고 매력적이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저 강물을 매일 볼 날도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구나. 찰스 로이드의 곡들을 들으면서, 지난 4년 가까운 시간들을 헤아려 본다.
# 몇 개의 키워드들
자연: 이곳에 와서 매일 강을 보고 꽃을 보고 나무를 보고 하늘을 볼 수 있어 좋았다.
산책: 나는 좀더 건강해졌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저녁마다 미지근하게 식은 열대의 공기를 마시며 나무가 우거진 길들을 산책할 수 있었다.
“사실 한가롭게 거닐 때 느끼는 행복은 우리의 시선을 통해 발견되는 것들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걷는 행동 그 자체에서, 자유로운 호흡 속에서, 그리고 아무것도 기분을 거슬릴 것이 없는 시선 속에서 오는 것이다.”
- 피에르 쌍소,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한가로이 거닐기’ 중 43p
자전거: 생애 처음으로 자전거를 배웠다. 이것은 진정 쾌거라 할 만했다. 평생 배울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던 두 가지(자전거와 수영) 중 한 가지를 이루어냈으니 말이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바람의 질감을 사랑하게 되었고, 예전엔 거들떠 보지도 않던 자전거 도로의 동선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책과 음악: 거의 매장되어 있다시피 한 예전의 책들과 앨범들을 꺼내어 보았고, 그 어떤 목표나 결심 없이 내 맘대로(어쩌면 제멋대로) 읽고 듣고 쓰고 즐겼다.
은혜로웠다. 물론 이 은혜로움은 그 이전 생활이 얼마나 황량했는지를 절감했기에 만끽할 수 있는 감정일지도 몰랐다. 이곳에 오기 이전의 10년은 가히 잃어버린 시간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정신적 문화적 암흑기였다. 나는 1년에 책 한 권 제대로 읽지 못했다. 음반을 꺼내 듣는다는 것은 사치나 다름없었고.
아이: 이곳 생활을 통해 아이와 함께 공부하고 대화하며 밀도 높은 시간을 보냈다. 때로 나의 목소리가 이렇게도 컸나 새삼 놀라고, 화 내는 내게 자괴감을 느끼고, 울고 웃으면서 마음 공부도 참 많이 했다. 아이의 키가 훌쩍 자란 만큼이나 내 마음도 한 뼘 정도는 자랐으리라 가늠해본다. 느리게 나아가는 아이의 모습에 나를 비추어 보며 나 역시 늦된 (어른의 꼴을 한) 아이라는 자각에 이르렀다. 속도에 의연해지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는 진득한 삶의 흐름에 감사하게 될 줄 알았다. 아이와 함께 느리게 자랐고, 아이를 통해 내 마음 속 아이와 만났으며, 먼 과거로 밀려들어간 내 어릴 적 모습과 조금씩 조우했다. 잔잔한 물이 깊다(Still waters run deep)는 말을 체득했다.
베트남에서의 삶이란, 이렇듯 자연과 내 몸과 정신의 꼭지점이 각기 좌표를 이루어 특정한 모양의 삼각형을 그려내는 것과 같았다. 여기에 자양분을 댄 것은 책과 가족이었고, 나는 그 소박한 삼각형을 누에고치 삼아 실을 잣듯 솔솔 문장을 뽑아 뭐라도 써보고 싶었다.
느리게 살기였다.
# 병상에서 엄마가 읽던 책 - 피에르 쌍소의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엄마가 돌아가신 후 평소 손이 닿았던 테이블 위에는 피에르 쌍소의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가 놓여 있었다. 오랜 병석에서 하염없이 느린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 엄마가 이 책을 마지막까지 붙잡고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저자는 책을 통해 “느림이 개인의 성격 문제가 아니라, 삶의 선택에 관한 문제라는 점”을 이해시키려 애쓴다.
한가로이 거닐기, (집중하여) 듣기, (고급스러운) 권태, 꿈꾸기, 기다리기, 마음의 고향(과거), 글쓰기, 포도주 한 잔의 지혜, 모데라토 칸타빌레(절제의 미덕)을 이야기한다.
느림이라는 태도는 빠른 박자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느림이란, 시간을 급하게 다루지 않고, 시간의 재촉에 떠밀려가지 않겠다는 단호한 결심에서 나오는 것이며, 또한 삶의 길을 가는 동안 나 자신을 잊어버리지 않을 수 있는 능력과 세상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키우겠다는 확고한 의지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
나만의 리듬에 맞추어,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내 팔자가 내게 운명 지어준 리듬에 맞추어 조용히 나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나를 가만히 내버려두어 달라고 감히 그들(정직하지 못한 여러 가지 제안들로 내 공간을 잔뜩 채우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정중히 부탁하고 싶다.
(같은 책 머리말)
강은 넓고, 삶도 넓다. 삶이라는 이 넓은 강을 어떻게 건널 것인가.
“목적지보다는 걸어 온 길, 걷고 있는 길 그 자체가 더 의미 있는 것”(50p)처럼 강을 건너 저쪽으로 가는 것이 목적은 아닐 것이다. 모터 보트를 타고 빨리 가는 것도 목적이 아닐 것이고. 작은 보트 하나 물에 띄워 손수 노를 저어 천천히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시간을 기꺼이 감당하며, 아니 감당하려는 용기를 애써 숨기지 않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을 나는 알지 못한다.
<The Water Is Wide> 앨범 부클릿 첫 부분에 실려 있는 The Water Is Wide의 가사 일부분이 그렇듯.
The water is wide, I cannot cross over, neither have I wings to fly, Give me a boat that can carry two, and I will row, my love and I
사랑하는 대상과 함께 천천히 건너는 시간의 강. 비록 자동기계장치 하나 없어 한없이 느릴 수도 있고, 정처 없이 헤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육체의 요구에 자유롭게 동의한 피곤”은 기꺼이 즐길 수 있는 것이 된다.
“삶 속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 경탄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는 것, “우리를 가두어놓는 온갖 것들을 느긋한 마음으로 멀찌감치 서서 바라보며 하품하는 것”, 이러한 고급스러운 권태는 건강하다.
하지만 그것은 언제나 절제된 권태여야만 한다.
분명 나는 권태를 예찬한다. 단, 일정한 거리감을 유지하고서.
같은 책, ‘고급스러운 권태’ 76p
<The Water Is Wide> 앨범의 마지막 트랙은 Prayer라는 곡으로 마무리된다. 그리고 피에르 쌍소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기도하는 것, 그것은 자신을 포기하는 일이다. “당신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라는 기도문과 같이.
또한 기도는 기다리는 것이다.
같은 책, ‘기다리기’ 96p
그리고 <The Water Is Wide> 앨범 부클릿 마지막 페이지에는 로빈슨 제퍼스Robinson Jeffers의 시 The Women at Point Sur의 Prelude가 실려 있다. ECM 음반의 매력이다.
I drew solitude over me, on the lone shore,
By the hawk-perch stones; the hawks and the gulls are never breakers of solitude. (…)
그렇다면 좀더 명료해진다. 동어 반복이라 해도 어쩔 수 없다.
평정심, 꿈꾸기, 기다리기, 과거로 여행하기, 글쓰기, 절제, 그리고 고독.
이 정도면 그 어떤 넓은 강도 거뜬히, 느리게 건널 수 있지 않겠는가.
어디에 있든, 어느 시간에 머물든.
(2015)
"내가 삶을 행운의 기회로 여기는 까닭은 매순간 살아 있는 존재로서 아침마다 햇살을, 저녁마다 어둠을 맞이하는 행복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며, 세상의 만물이 탄생할 때의 그 빛을 여전히 잃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에 어렴풋이 떠오르는 미소나 불만스러운 표정의 시작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 세상이 계속해서 나를 향해 말을 걸어오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삶은 내가 조금씩 아껴가며 꺼내 놓고 싶은 행운인 것이다."
- 피에르 쌍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