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별이든 작별이든

잘 헤어지는 것에 대하여


예전, 앞집에 잠시 살던 인도인 가족이 있었다. 그 집 큰 애가 우리 애와 같은 학년이었지만 아이들끼리도 데면데면하고 부모끼리도 왕래가 없었다. 곧 말레이시아로 떠난다고 하길래 그런가 보다 했다. 그리고 얼마 후 보이지 않길래 이사 갔나 보다 했다.


같은 층 복도 끝에는 독일인 가족이 살고 있었는데 그 집 둘째 아들 P도 우리 애와 같은 학년이었다. 워낙 장난꾸러기라 단지 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나는 그 애를 볼 때마다 마크 트웨인의 소설 속 주인공 ‘톰 소여’를 떠올리곤 했다. 우리 집에도 곧잘 놀러 오곤 해서 P의 엄마 아빠와도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하는 정도의 사이였다. 여름 방학 기간에 그 집도 간다 만다 소리 소문 없이 독일로 돌아갔다. 이미 떠났다는 이야기는 나중에야 전해 들었다.


그러다 어느 일요일 오후, 동네 카페에서 갑작스런 송별 파티가 열렸다. 독일로 떠난 P의 가족이 두 달 만에 돌아와 뒤늦게나마 아이를 위한 송별 파티를 열어준 것이다. 초대 받은 아이들은 평소 그 집 아이랑 곧잘 어울려 놀던 남자 친구들 혹은 그 집 엄마와 절친한 친구들의 아이들이었다. 카페에 아이를 데려다 주며 인사도 할 겸 해서 잠시 들러 보니 놀랍게도 이미 떠났다고 생각한 (앞 집 살았던) 인도 엄마가 거기 앉아 있었다. 그 옆엔 올 초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돌아갔다고 들었던 또 다른 엄마도 앉아 있었다. 나는 눈이 휘둥그래져서 이게 다 어찌 된 일이냐고 물었다.


이야기인즉슨 다들 소리 소문 없이 방학 기간에 움직여야 했던 관계로 제대로 된 작별 인사를 못하고 떠났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한 날 한 시에 이곳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을 잡고 독일, 인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각각 날아들었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친구들과 ‘작별 인사’를 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다는 것, 또 자신들 역시 제대로 인사를 하고 떠나고 싶었다는 것이다. 나는 ‘작별’에 대한 그 열의와 정성이 놀라우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낯설기도 했다. 그렇게까지……


어느 여름 먼 나라 바닷길에서 우연히 만난 나이 지긋한 한국인 부부가 알고 보니 예전에 내가 몸 담았던 회사 사장님과 가까운 지인 사이라든가, 하이텔 통신 시절 드나들었던 음악 소모임의 한 멤버(얼굴은 모르고 말로만 전해 들었던 전설의 여장부)가 알고 보니 나와 일로 친분을 맺고 있는 사람이었다든지, 내가 을로 대했던 어느 이가 나중에 보니 내가 갑으로 대하는 이의 배우자였다든지, 뭐 이런 사례는 살면서 무수히 만나게 되는 일들이기도 하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진부한 말들을 되뇌곤 한다. 역시 세상은 좁아, 착하게 살아야 해, 적을 만들고 살면 안 돼, 사람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나게 될지 모르는 일이야 등등.


아이만 놀게 놔둔 채 집에 돌아왔다가 파티가 끝나갈 즈음인 늦은 저녁에야 나는 다시 카페를 찾았다. 석별(惜別)의 정을 나눌 만큼 애틋한 사이는 아니어서 (또 서양식 스탠딩 파티에 도통 적응이 안 되는 이유도 있고 해서) 시간이 늦을수록 줄어들기는커녕 늘어나는 사람들을 뒤로 하고 나는 떠나는(아니, 이미 한번 떠난) 이들과 적당한 작별의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살면서 또 만나게 될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토록 작별(作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들에 대한 예의를 갖추기 위해 ‘다시 만나기를 바란다’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사람 일이란 알 수 없는 것이므로.


그 알 수 없는 일의 가능성을 때마침 확인시켜준 이는 재미있게도 역시 내가 아는 사람인 D의 엄마였다. D의 가족은 사업 문제로 얼마 전 독일로 이주했는데, D의 엄마는 평소 독일판 톰 소여인 P를 다소 못마땅해하던 사람이었다. P의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질 무렵 그녀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내게 말했다.


“아 참, 놀라운 소식! 내가 독일에 있는 P의 새 학교에서 누구를 만났는지 알아요?”


나는 거기까지 들으면서 마음 속으로 ‘설마 (내가 아는) D일까......?’라는 생각을 떠올렸다.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바로 D예요! D의 엄마도 만났구요. 얼마나 놀랍고 반가웠던지!”


많고 많은 나라들 중에서, 게다가 많고 많은 독일의 도시들 중에서, 심지어 그 도시의 많고 많은 학교들 중에서 다시 만난 인연이라니! ‘잘 헤어지기’의 중요성은 익히 새기고 있었지만 이렇듯 놀랍고도 새삼스럽게 깨닫는 순간이라니.


언제 어디서 또 만날지 모르는 인연, 시작하는 연도 중요하지만 헤어지는 연도 중요하다는 것, 시작의 중요성 못지 않은 마무리의 중요성, 시작과 끝은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생각 등등의 상념에 잠긴 채 아이를 데리고 집에 돌아오는 길은 어째 좀 고즈넉하였다.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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