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 들고 흐르고 다시 자라고

정든 베트남을 떠나며 (feat. Let It Grow)


1. 산책_정들다


정든 곳을 떠나려니,라고 쓰고 보니 이처럼 진부한 말이 없다 싶으면서도 또 이처럼 적합한 말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정들다'라는 말. 아름다운 말이다.

'정'이라는 말만 떼어놓고 봐도 무궁무진한 심상을 불러일으키는데, 이 무궁무진한 심상을 수렴하는 동사로 '들다'라는 말이 어우러진다. 말 그대로 '마음을 두고 스미다'는 느낌이 한껏 충만해진다.

베트남을 떠나려니, 그 '정든' 곳으로 꼽히는 첫 번째가 우리 집 주변이다. 매일 저녁 산책을 하던 길, 목을 꺾어 올려다보면서 칸트의 숭고미까지 들먹이며 예찬하던 나무들,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과 구름과 강물의 색깔, 내게 강력한 생명감을 선사해준 열대의 나무들, 이름 모를 꽃들, 매번 산책할 때마다 나타나 나무타기의 명수임을 뽐내던 청설모, 노란 담장, 제각기 다른 기운을 뿜어대는 초록 식물들.

나는 베트남에서의 마지막 나날들을 이 ‘정든 것들’과의 느린 작별 인사로 마무리하기로 했다. 아침이나 저녁, 혹은 기회가 될 때마다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며 익숙한 것들과 눈을 마주쳐 인사하는 것.


늦은 저녁, 정든 나무들과의 작별인사


어느 늦은 저녁, 혼자 산책길에 나선 나는 어둠 속에 잠긴 나무들을 유심히 바라보며 작별의 말들을 건넸다. 평소 내가 좋아하던 나무들은 물론 그날따라 유독 내 시선을 잡아 끄는 나무들까지. 이미 겨울 휴가를 떠나버린 사람들 때문인지 단지 안은 텅 비어 있었고 고즈넉했다. 문득 몇몇 주위 사람들과 작별 인사를 나눌 때에도 느끼지 못한 느른한 감정이 밀려드는 것을 어쩌지 못했다.


슬프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하지만 무겁고 음울한 감정이 아닌, 어쩐지 가볍고 명랑한 기운을 품고 있는 슬픔이었다. 바람을 타고 어디든 날아가 새로운 풍경과 조우하더라도 자연스레 통하여 스밀 만한 그러한 가벼움.


정든 나무들이 스쳐갔다. 내가 사랑하던 칸트 나무(숭고미가 느껴진다 하여 붙여준 이름), 털북숭이 나무(덩굴 식물이 나무 기둥을 털처럼 덮고 있어서), 타잔 나무(타잔이 붙들고 날아다녔을 법한 덩굴줄기들이 길게 드리워진 나무) 등등. 베트남어로 ‘방랑’이라 불리는 나무 앞에 서서, 너나 나나 방랑이라는 생각에 슬며시 웃던 기억을 떠올렸다. 마음을 다친 날 망고 나무 앞에서 멍하니 쪼그리고 앉아 있던 장면도.


나는 아무도 없는 적막한 길들을 누비며, 에릭 클랩튼의 Let It Grow를 크게 틀어놓았다. 귀에 이어폰도 꽂지 않은 채. 멜로디가 사방으로 불균등하게 퍼져 나가, 되는 대로 그 명랑한 슬픔과 들러붙거나 스미도록 내버려 두었다.


햇빛 아래 드러난 정든 것들


다음 날 아침엔 다시 햇빛 아래 드러난 정든 것들의 모습을 더듬어 보았다. 무수한 덩굴 식물들, 담쟁이, 이끼, 공작새처럼 거대한 초록 깃털의 위용을 뽐내는 야자나무들, 사시사철 대문 위로 피어 있는 붉고 하얀 꽃들, 정열적인 빨강 하이비스커스, 순수한 흰빛 플루메리아, 나의 애정 어린 시선을 늘 한 몸에 받던 보랏빛 꽃들, 햇빛과 그림자로 너울거리는 음영의 길들……


이 뜨겁고 푸른 기억이 계속 자라나도록 하고 싶었다.


2. 그림_자라다


나중에 베트남을 떠나게 되면 (다른 건 다 몰라도) 기념으로 꼭 그림 한 점을 사 가야겠다고 생각하던 터였다. 이 곳에 와서 알게 된 베트남(을 대표하는) 국민화가 뷔샨파이(Bui Xuan Phai)의 그림을 보고 우리나라의 박수근 화백을 떠올리며 든 생각이었다. 그의 그림을 보고 한눈에 반한 나는 야무지게도 그의 그림을 구입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순진한 희망을 품었다. 그러나 그의 그림이 상상을 초월할 만큼 비싼 가격에 거래되고 있음을 뒤늦게야 깨닫고, 호치민 시내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길거리 갤러리에서 모작이라도 사볼 수 있을까 싶은 기대로 하향 조정되었으나 이 또한 마땅치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그러다가 베트남 중부 지방 호이안을 여행하게 되었는데 우연히 어느 골목 갤러리에서 그림 한 점이 눈에 들어왔다. 푸른 들판에서 일하는 일꾼들의 논(Non: 베트남 전통 고깔 모자)을 단순하게 묘사한 그림이었다. 기후적 조건으로 일 년 삼모작이 가능하고 늘 초록의 식물이 싱싱하게 자라는 베트남의 풍광과 꼭 어울리는 그림이라 생각했다. 뜻밖에 만난 그림이 마음에 들어 가게로 들어섰으나, 여행 중에 구입하기엔 부피도 크고 가격도 비싸 잠시 망설이다 후일을 기약하며 가게를 나섰던 기억이 있다. 인연이 있으면 언젠가 다시 만나겠지, 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다시 몇 년이 훌쩍 지나고, 정말 베트남을 떠날 때가 되자 다시 그림 생각이 났다. 거창한 그림을 산다기보다 작고 기념이 될 만한 그림을 사고 싶었다. 짐을 부치기 전에 서둘러 시내 갤러리들을 둘러보기로 했다. 처음 호치민에 왔을 때 시내 대표 중심가인 동코이 거리에는 아기자기한 갤러리들이 꽤 모여 있었다. 몇 년이 지나 다시 그 자리를 더듬어보니 갤러리들은 대부분 사라지고 없었다. 상업화의 정점에 선 동코이 거리에서 갤러리를 운영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나마 고급스러운 갤러리에서 파는 그림들은 대부분 대작이거나 베트남의 정취가 느껴지기보다는 현대 작가들의 추상화에 가까운 그림들이 더 많았다. 가격 또한 만만치 않았다. 이상하게도 (혹은 당연하게도?) 마음에 들어오는 그림이 없었다.


그러다 어느 허름한 창고형 가게에 우연히 들어서게 되었다. 몇몇 그림들이 눈에 띄었다. 나름 알려진 화가이자 내가 눈여겨보기도 했던 베트남 화가 떵느억손(Duong Ngoc Son)의 익숙한,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조악하고 어설픈 붓터치가 눈에 들어왔다. 미화 800불에서 2000불 사이에 거래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가격을 물어보니 터무니없이 낮았다. 자세히 보니 모작임에 틀림없었다. 장사 수완이 보통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눈이 빨갛게 충혈된) 여주인이 나의 취향을 짐작하려 애쓰고 있었다. 나름 완성도가 높아 보이는 그림들은 오리지널이라고 소개하며(믿거나 말거나) 500불에서 800불을 불렀다.


나는 마음을 비우고, 먼지가 쌓인 이름 없는 화가의 값싼 그림이라도 마음에 흡족하면 구입하리라 생각하며 이리저리 캔버스들을 뒤적였다. 그때 예전 호이안에서 보았던 ‘푸른 들판과 논(Non)’을 모티프로 한 그림이 거짓말처럼 불쑥 튀어나왔다. 아주 단순한 그림이었다. 물론 화가의 사인조차 없었다. 가격도 터무니없이 저렴했다. 그러나 상관없었다. 반가운 마음에 주저 없이 그 그림을 달라고 했다.


그렇게 즉흥적으로 그림을 샀다. 어쩌면 베트남 어느 길거리 갤러리에서 어렵잖게 볼 수 있는 (관광객들을 타깃으로 한) 전형적인 그림일지도 몰랐다. 상관없었다.


동코이 거리 어느 허름한 갤러리에서 구입한 그림


집에 와 걸어놓고 보니, 남편이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어쩐지 마음에 들었다.


“자라는 그림이네. 그래, 계속 자라라.”


계속 자라다...... 왠지 이 모든 상황에 적합한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도, 앞으로의 여정도, 여전히 ‘자라는’ 진행형 시제일 테니. 그 ‘자람’을 기쁨으로 알고 천천히 자라나는 일, 어쩌면 내가 바라는 삶의 지향점도 이와 같지 않을까. 베트남에서의 기억 또한 계속 푸르게 자라기를.


정 또한 그러할 것이다. 어디에서든, 정은 들고, 흐르고, 그리고 다시 자라고.


(2016)


https://youtu.be/YpDlmop0uYU

정든 산책길에 작별의 노래처럼 계속 뿌려대며 들었던 에릭 클랩튼의 Let It Gr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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