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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럼에도 불구하고 Feb 06. 2024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

“잘 아는 것 중 가장 어려운 것을 말하는 과정이 ‘발표’라면, 모르는 것 중에서 가장 쉬운 것을 찾는 작업이 ‘질문’이다. 아무리 어려운 문제라도 아무런 말조차 할 수 없을 리는 없다. 약간의 불빛이 비치는 바로 그곳에서 좋은 질문으로 시작한다면, 오늘도 생각의 수레는 움직일 것이다. 좋은 생각을 가로막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 것뿐이다.”


- 김상현(고등과학원 수학부 교수)




좋은 생각이란 무엇인가. 좋은 질문으로 이어지는 과정 자체일 것. 질문을 하려면 뭔가를 알아야 한다.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모르는 상태를 간신히 벗어났다면, 적어도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상태로 진입한다.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어렴풋이 알게 되는 상태로 넘어가는 길목 혹은 문턱이 그나마 희미한 질문이라도 구성해볼 수 있는 지점이 아닐까.


여전히 모르는 것을 모르는 상태로 머물러 있다. 이따금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순간 자연스럽게 질문이 떠오르기도 한다. 어이없는 질문이든 그럴듯한 질문이든.


질문에서 시작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상당히 어렵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결론. 제대로 된 문제 제기 없이 생각을 진전시키는 것은 나름 ‘헤맴’의 미학을 제공할 수 있지만(모종의 정신승리), 헤맴이 늘 최적의 우회로를 만나는 것은 아니다. 우회는 마냥 길어질 수 있고, 생각은 엉뚱한 방향으로 멀어질 수 있다. (물론 그러다 뜻밖의 창조적인 순간을 만날 수도 있을 테지만.)


“약간의 불빛이 비치는 바로 그곳에서 좋은 질문으로 시작한다면, 오늘도 생각의 수레는 움직일 것이다. 좋은 생각을 가로막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 것뿐이다.”


오늘자 신문 기사에서 발견한 위의 문장 때문에 ‘좋은 생각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문장을 시작할 수 있었던 셈.


내가 처한 난감한 사태. 지체된 문제 설정으로 인해 기약 없는 우회의 길에 서 있다는 것. 해석의 어려움도 그러할 것. ‘해석’의 행위는 ‘자기 이해’와 다르지 않다.


다시 떠오르는 폴 리쾨르의 말.

“나를 이해한다는 건 가장 머나먼 우회를 하는 것이다.”


가장 머나먼 우회라…

우회로가 생각보다 (더) 길다.  


질문해야 한다.


(2024-1-18)


+ 연결

http://aladin.kr/p/3PyRf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엔 관심이 없다. 다만 그녀가 ‘메리 웨스트매콧’이라는 필명으로 낸 작품 중 하나를 만났을 뿐. 뜻밖에 읽게 된, 뜻밖에 인상깊었던 소설. 내 취향의 소설은 아니지만, ‘자기기만’에 관한 한 손가락에 꼽을 만하다. 이 작품을 관통하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 말고는 할일이 아무것도 없다면 자신에 대해 뭘 알게 될까?“


믿고 싶은 대로 믿는 인간의 성향, 알고 싶지 않은 것을 회피하려는 마음, 각성 뒤에도 변하지 않는 무서운 관성의 힘.


나는 나(에 관한 진실)에 대해 얼마큼 아는가, 알고자 하는 의지(혹은 용기)가 있는가,를 자문하게 만드는 계기.


사실(혹은 진실)은 그 사실을 대하는 관점에 의해 재구성된 결과,라는 것을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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