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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럼에도 불구하고 Jan 11. 2024

흘러넘치다, 흘려 쓰다, 기울어지다

‘흘러넘치다’에 대한 단상

당신은 뚜껑으로 닫을 수 없다.

모자라든가 자동문

오늘의 뉴스로도.


마치 물로 만든 의자처럼

누군가 거기 앉으면 풍덩,

빠져버릴 것처럼.


햇빛이 당신을 넘치고 그녀의 말이 당신을 넘치고

가정의 평화와 일기예보 역시.

당신은 또

당신에게서 벗어난다


메뉴판의 메뉴들을 꼼꼼히 읽어가듯이

비밀번호를 입력하듯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듯이

당신의 정오를 닫을 수도 있겠지만


(중략)


조용히 모자를 쓴 뒤에

행인이나 군중이 될 수 있다.

빙하처럼 거대하게 녹아가는 것은 북극에도

청량리에도 있으니까.

창밖의 풍경이란 갑자기 발생하는 것이 아니니까.


어디에나 뚜껑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북극곰의 밤이 닫히지 않는다.

아무리 신중하게 앉아 있어도

내부는 이미 내부가 아니다.


지금 당신 앞에 흘러넘치는 찻잔이 있다.

잔은 기울어지지도 않았다.


- 이장욱, ‘흘러넘치다’ 부분, <생년월일>, 창비, 2011




시인은 ‘흘러넘치다’라는 단어에서 시작했을 것이다. 그 앞에 우연히 흘러넘치는 찻잔이 있었을까. 그 자신이 흘러넘치는 찻잔이라고 생각했을까. 기울어지지도 않았는데, 나름 평형을 맞추며 자리매김을 해왔는데. 흘러넘칠까봐 조심하지는 않았나. 오히려 흘러넘치기를 기다려왔던 건 아닌가.


흘러넘치는 당신을 닫을 수 있는 건 없다. 뚜껑이라든가 모자라든가. 정신을 앗아가는 아찔한 현실의 뉴스도.


당신은 지금 무엇으로 넘치는가? 햇빛으로, 바람으로? 누군가의 말로? 내부의 욕망으로? 아니 내부인 줄 알았던 외부의 욕망으로? ‘내게 강 같은 평화’로? 어쩌면 강 같은 권태로? 애증으로? 체념으로? 끝나지 않을 (것을 알고 있는) 기다림으로?  


당신은 또 당신에게서 벗어난다. ‘또’ 벗어난다. 흘러넘친다는 것은 주어진 경계를 벗어나는 것. 탈주의 속성. 형식과 의례를 갖추어 정오의 시간을 닫을 수도 있다. 당신의 정오란? 시작을 알리는 시간인가, 반환점을 도는 시간인가, 끝에 대한 초조함을 일으키는 시간인가?


잠시. 메뉴판 숙독을 거두고 스스로 요리를 만들어 먹는 시간에 대해 생각한다.


조용히 모자를 쓴 뒤에 (썼으나 썼다고 볼 수 없는 모자를 쓰고) 행인이나 군중이 될 수도 있다. 모자는 익명의 편안함. 행인은 주목받지 않는 풍경. 군중은 휩쓸리는 배경. 모자 쓴 행인은 될 수 있지만 군중 속 점이 되는 것은 꺼려하는 마음.


그러나 모든 것은 녹아간다. 거대한 빙하도, 멈춘 적 없는 풍경도, 모자나 뚜껑, 행인 혹은 군중도, 그리고 내 앞의 찻잔도.


녹아가는 빙하를 딛고 선 북극곰의 마음을 알 수 있나? 북극곰은 마음이 있나? 마음은 무엇인가? 알 수 없는 것들을 쓰는 시인 이제니는 이렇게 쓴 바 있다.


흑곰에 대해 쓴다. 알고 있는 것에 대해선 아무것도 쓸 수 없기 때문에. 알고 있는 것에 대해 쓰기 시작하면 아무것도 알 수 없게 되기 때문에. 이를테면 흑곰의 마음 같은 것.


- ‘흑곰을 위한 문장’ 부분, <그리하여 흘려 쓴 것들>


그러고 보니. 흘러넘치다,와 흘려 쓰다,는 어딘가 통하는 구석이 있군. 무엇이 흘러넘치는 줄 몰라 뚜껑을 찾는 사람들. 무엇을 아는지(혹은 모르는지) 몰라 흘려 쓸 수밖에 없는 사람들. 뚜껑을 찾는 사람들은 절제의 미덕을 찾는 사람. 법과 규율을(아니 그 효과를) 믿는 사람. 아무리 신중하게 앉아 있어도, 닫히지 않는 것은 닫히지 않는 것. 내부는 이미 내부가 아니다. 안과 밖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을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환영하는 시대에도(아니 시대라서)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 내부는 내부고 외부는 외부라고 단호하게 말해주는 목소리가 없어서? 그런 목소리는 없다,고 전하는 목소리들만 난개발처럼 펼쳐진다.


그리하여. 다시. 당신 앞에 흘러넘치는 찻잔으로 돌아온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주위에 잡히는 무언가로 냉큼 닦아낼 것인가. 후르륵 들이마실 것인가. 넘치는 것이 어떤 모양으로 어디까지 흘러가는지 지켜볼 것인가. 아니면 바닥에 쏟아진 것을 재료 삼아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흘려 써볼 것인가.  


잔은 기울어지지 않았다. 기울어진 것은 당신이다.


그리고. 당신은 계속 기울어질(기울어져 있을) 생각이다.


(2024-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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