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베이 역사박물관에서 (feat. 알랭 드 보통의 <행복의 건축>)
한낮의 온도가 30도까지 치솟았다. 봄을 거치지 않고 겨울에서 바로 여름으로 직행하는 계절의 조급함이 나를 집 바깥으로 내몰았다. 타이베이에 오자마자, 국립역사박물관에서 키스 해링(Keith Haring) 전시가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사실 키스 해링이 목적이 아니라 키스 해링을 빌미로 뮤지엄,이라는 공간에 다녀오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집'이야말로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공간이지만, 때로는 ‘학습된 일상’을 ‘학습된 자극(혹은 일탈)’으로 전환하고자 다른 공간을 찾는다. 물론 여행만큼 좋은 것은 없겠지만, 낯선 장소의 힘을 빌어 낯선 시선을 갖고자 하는 시도는 주변에서도 어렵지 않게 실천할 수 있다. 내게 소박한 자극의 장소가 되어주는 곳은 대부분 비슷하다. 미술관, 박물관, 카페, 도서관, 서점, 공원 등이다. 참, 잊을 뻔했다. ‘탈 것’이라는 공간을. 버스 안, 지하철 안, 비행기 안, 기차 안 등등.
뜨거운 햇빛을 받으며 나는 일부러 동선이 긴 버스를 교통 수단으로 삼는다. 수많은 정류장을 거치며 낯선 도시의 풍광을 살핀다. 미술관에서 작가의 상상력을 상상해본다. (좋아하는 작가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어차피 키스 해링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아니다.) 박물관에서 고대 중국 유물들을 들여다본다. 공간을 빌어 시간을 헤아려본다. 전시 층 한 곳에 고즈넉하게 들어앉은 카페를 찾는다. 손님은 나 외에 아무도 없다. 창 밖으로 공원의 초록 풍경이 펼쳐진다. 관내 아트숍에서 책과 그림들을 공들여 구경한다. 마음에 드는 그림이나 소품들을 만지작거리며 구입을 고려하는 순간을 즐긴다. 그늘이 드리운 나무 밑 벤치에 앉아 정원의 연못을 바라본다. 휴일의 피로를 뒤로 한, (조금은 다른) 일상의 나들이 풍경.
"우리는 우리 환경이 우리가 존중하는 분위기와 관념을 구현하고, 우리에게 그것을 일깨워주기를 은근히 기대한다. 건물이 일종의 심리적 틀처럼 우리를 지탱하여,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유지해주기를 기대한다. 우리 내부에 필요한 것–그러나 필요하다는 사실 그 자체를 잊을 위험이 있는 것–을 표현해주는 물질적 형태들을 주위에 배치한다. 벽지, 벤치, 그림, 거리가 우리의 진정한 자아의 실종을 막아주기를 기대한다.
집을 사랑한다는 것은 또 우리의 정체성이 스스로 결정되는 것이 아님을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물리적인 집만이 아니라 심리적인 의미의 집도 필요하다."
- 알랭 드 보통, <행복의 건축>, ‘집, 기억과 이상의 저장소’ 중 111p
알랭 드 보통이 말한 것처럼 내적 요구와 조화를 이루는 공간에 자신을 데려다 놓는 것은 자연스럽고 건강한 일이다. 어쩌면 그 반대의 심각한 상황에서 우리 자신이 특정 공간에 불려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아름다운 것들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우리 인생이 여러 가지 문제로 가장 심각할 때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낙담한 순간들은 건축과 예술로 통하는 입구를 활짝 열어준다. 그러한 때에 그 이상적인 특질들에 대한 굶주림이 최고조에 이르기 때문이다. (…)
아름다운 것을 보면 그것을 사고 싶다는 것이 일반적인 반응이지만, 우리의 진정한 욕망은 아름다운 것을 소유하기보다는 그것이 구현하는 내적인 특질을 영원히 차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 아름다운 것을 구매하는 것은 사실 그것이 우리에게 불러일으키는 갈망을 처리하는 가장 무미건조한 방식일 수도 있다. (…) 우리가 원하는 것은 가장 깊은 수준에서 보자면, 그 아름다움으로 우리를 감동시키는 대상과 장소를 물리적으로 소유하기보다는 내적으로 닮는 것이다."
- 같은 책 160p
닮고 싶은 공간이 나의 집이라면, 나의 집은 어디에도 있고 또 어디에도 없는 셈이다. 어느 길 위에라도 자리잡을 수 있는 달팽이 집처럼.
'닮고 싶은 공간'과 '담고 싶은 공간'은 같은 말일지도 모른다.
(2016)
어떤 장소의 전망이 우리의 전망과 부합되고 또 그것을 정당화해준다면, 우리는 그곳을 ‘집’이라는 말로 부르곤 한다. 꼭 우리가 영구히 거주하거나 우리 옷을 보관해주어야 집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은 아니다. 어떤 건물과 관련하여 집 이야기를 하는 것은 단지 그것이 우리가 귀중하게 여기는 내적인 노래와 조화를 이룬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방식일 뿐이다. 집은 공항이나 도서관일 수도 있고, 정원이나 도로변 식당일 수도 있다. (같은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