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타이베이 정착기

톨스토이의 작품을 이야기하려는 게 아니다. 형이상학적인 측면보다는 지극히 형이하학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1. 옷, 돈, 밥, 그리고 책


# 낯선 땅을 밟은 지 어느새 1주일이 넘었다. 타이베이는 겨울이 우기인 탓에 실제 온도가 평균 15도 정도밖에 되지 않더라도 비 오고 바람 불면 꽤 으슬으슬 춥고, 몸 속으로 스며드는 습한 기운이 은근히 시리다. 따뜻한 '의복'이 간절해진다.


# 호치민을 떠나기 전 가장 마지막으로 한 일은 은행 계좌를 해지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여기 타이베이에 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은행 계좌를 개설하는 일이었다. 미국 달러(USD) 계좌와 타이완 달러(NTD) 계좌 개설에 필요한 예치금을 넣고 보니, 문득 경제 활동의 기본인 '돈'의 존재가 새삼 환기된다.


# 호치민에서 가장 큰 덩어리 짐을 배로 부치기 위해 첫 번째로 올린 목록은 책이었다. 내세울 것 없는 살림에서 가장 많은 짐을 차지하는 것이 책이었다. 실제 이사 준비 과정에서 자연스레 상기한 점이 있다면, 책이 유기체적 생명연장에 절대 조건은 아니라는 점이다.


책과 옷가지 및 기타 잡동사니를 그러모아 배로 부칠 짐을 꾸릴 때에도 마지막까지 끈덕지게 남아 있었던 살림살이는 칼과 도마, 약간의 그릇과 냄비, 그리고 수저였다. 소위 '먹고 사는 일'에 1차적으로 필요한 물품들인 셈이다.


#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구입한 전자제품 역시 ‘밥솥’이었다. 가장 먼저 구입한 음식 역시 ‘쌀’이었다. 우리는 '밥'의 힘으로 산다. 소위 ‘밥심’은 물리적인 신체 가동 역할을 넘어서서 근본적인 인간 조건을 환기시킨다.

특히, 밥 중에서도 '집밥'이다. 입주 날짜 전까지 호텔에서 지내다 보니 아침엔 조식 부페를, 점심 저녁엔 외식을 하게 되었다. 게다가 타이완은 음식의 천국. 그러나 호텔 음식이나 외식도 하루 이틀이다. 일주일이 지나자 집밥 생각이 간절해졌다. 오죽하면 내가 지은 밥에 내가 끓인 된장찌개, 내가 만든 몇몇 소박한 반찬들로 상을 차려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까.

그리하여 지난 화요일, 입주를 기념하여 첫 저녁상을 차렸다. 부족한 재료와 양념, 어수선한 주방 환경 속에서 고군분투 끝에 차려낸 저녁. 가족 모두 코를 박고 먹었다.


# 한편, 아무리 ‘밥’과 ‘돈’의 중요성을 인식했다 하더라도, ‘없어도 살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난 '책'을 받을 생각에 나는 마음이 바빴다. 천고가 낮아 8개의 책장을 몽땅 한국 창고로 부쳐버린 터라 이곳에서 새로 책장을 마련하기도 전에 대책 없이 그 많은 책을 먼저 받아버리면 어쩌나 하는 노심초사 때문이다. 그래서 깔고 덮고 잘 '침구'와, 쓸고 닦을 '청소 도구'와, 씻고 말릴 '세신 용품'을 마련하기도 전에 부랴부랴 가구점에서 책장부터 주문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가구는 (먹고 자기 위한 기본 플랫폼인) 식탁과 침대였지만. 나는 지금 '책장' 배달을 손꼽아 기다리는 중이다.


# 그러니까, 먹고 사는 일에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것들을 우연치 않게 꼽아보는 계기가 된 셈이다. 어쩌나, 이 다소 민망한 결론을. 사람은 기본적으로 먹고 싸고 자고 단장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 다시 말해 (정신적 활동을 대표하는 상징으로서의) 책이 전체 생활에서 차지하는 부분(물리적 시간)은 그다지 크지 않다는, 어딘지 내키지 않는 결론 말이다.



2. 먹고 사는 일, 함께 사는 일


# 침구에 대한 말이 나온 김에! 입주 첫날 밤을 보내기 위해 (통하지 않는 언어로) 어렵게 주문한 침구가 해당 일에 배송되지 못한다는 전화를 받았다. 오전에 받은 (중국인 남자의) 전화 한 통을 나는 잘못 걸려온 전화로 여기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어로만 말하는 아저씨의 전화를 내가 받을 일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알고 보니 침구 배달로 전화한 택배 기사였던 모양이고, 융통성 없는 아저씨는 리셉션에 맡길 생각도 못한 채 (야속하게도!) 그 소중한 침구를 창고로 다시 돌려보냈다 한다. (이러한 자초지종을 이해하는 데에도 한참이나 시간이 걸렸지만.) 하필이면 입주한 날이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이었다는데, (베트남에서 배로 부친 짐은 1월 말이나 되어야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으니) 온 가족이 이불도 없이 커버조차 씌워지지 않은 차가운 침대 위에서 오들오들 동태가 될 지경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침구가 반송되어 보관되어 있는 (시내에서 꽤 떨어진) 창고까지 직접 가서 운반해와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 (졸지의) 특급운송작전을 펼치는 것마저도 친절한 리셉션 직원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침구'의 필요성이라기보다 '소통''도움'의 중요성인지도 모른다. (중국어를 어서 배워야겠다는 굳은 의지도 생겼다.)


# 그렇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하는 문제에, '먹고 사는 일'에 필요한 1차원적 조건으로 산다,라고만 이야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 가장 근본적인 조건은 어쩌면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함께 사는 것'이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아들러도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모든 인간은 세 계의 관계를 갖고 있는데 (…) 세 가지 관계 중에서 가장 근본은 우리가 지구라는 혹성 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 어느 누구도 이 문제를 회피할 수 없다. 모든 대답은 우리가 인류에 속해 있다는 사실, 인간은 이 지구에 살고 있는 동물이라는 사실에 의해서 규정되지 않으면 안 된다.

- 알프레드 아들러, <아들러 심리학 입문>, 스타북스, 18p


생각해보니, 영화 <그래비티Gravity>가 내게 남긴 메시지는 간결했다. <마션The Martian>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인간에 대한 환멸에도 불구하고 희망은 여전히 인간(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인간세계)에 있다는 것이다. 좋으나 싫으나 복닥거리는 지구라는 별에서 인간들과 어울려 살아야 하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니 말이다.



3. 기억, 근심, 불안 혹은 희망


# 우연히 3년 전 메모를 발견했다.


"인생 대부분의 문제(근심)들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되는 듯하다. 돈, 건강, 관계."


그렇다면 이 세 가지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문장에 ‘무엇’으로 각각 대입될 수도 있을까.


또 다른 메모도 눈에 띄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근심과, 미래에 대한 불안 혹은 희망"


그때나 지금이나 사고의 패턴은 비슷한 모양이다. 사람은 '기억''번뇌'불안''희망으로 사는 것일 수도 있겠구나.



4. 다시 톨스토이, 그리고 사랑


# 이 모든 것들을 수렴하는 단어는 어쩔 수 없이 (딱히 내키지는 않지만) ‘사랑’이어야 하는 걸까. 나는 분명 이 글을 시작할 때 톨스토이의 단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라고 밝혀 두었다. 지극히 형이하학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라고 토까지 달았다. 그러나 재미있게도 가장 형이상학적인 이야기로 흘러오고 말았다. 결국 톨스토이의 작품을 다시 들춰보면서.


신의 벌을 받아 인간의 모습으로 버려진 천사 미하일은 죽어가는 자신을 거두어준 구두 수선공 세몬과 그의 부인 마트료나와 함께 살며 구두 직공으로 일한다. 6년의 세월 동안 오직 세 번의 미소만 지었던 미하일. 신의 용서를 받아 하늘로 올라가기 직전 그는 그 이유를 설명한다. 신이 자신을 땅에 보내며 깨달으라고 한 세 가지 진리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 사람의 마음에는 무엇이 있는가?

-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 세 가지 진리를 깨달은 뒤에야 하늘나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 그리고 그는 깨닫게 된다.


- 사람의 마음에는 ‘사랑'이 있다는 것

-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아는 능력’이라는 것(언제 죽음을 맞이할지 모르기에)

-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 대한 염려가 아니라 ‘사랑으로’ 산다는 것


종교의 문제를 떠나 천사 미하일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거북하다면 '신'으로 바꾸어 읽어도 좋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생명을 주시고 그들이 잘 살아가기를 바란다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또 한 가지를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떨어져 사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각자가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아는 능력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기를 원하기 때문에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이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알게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염려하고 돌봄으로 살 수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오직 사랑으로만 살 수 있다는 것을 이제 깨달았습니다.”

- 레프 톨스토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문예출판사


아들러 역시 사람은 ‘사회적 협력’과 ‘이타적 사랑’으로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고 보았다. 레비나스는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내재적 초월성(무한)을 사람과 사람의 만남(순수한 마주침)이라는 사건에서 찾았다. 그는 ‘타인의 얼굴’이 내게 불러오는 책임의 사유와 윤리학적 개념에 천착한 철학자였다.


‘사랑’으로의 귀결. 진부하지만, 어쩌랴. 그 모든 형이상학적 질문을 하릴없이 따라가다 보면 결국 가 닿는 곳이 바로 이 지점인 것을.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 그리고, 함께.


(2016)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