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반복 속에서도 새로운 것을 염원하는 마음
“Thank you and see you again!” 비행기 시간에 맞추어 마카오 호텔 라운지를 떠나는 내게 호텔 직원이 건넨 말이다. 순간, 시간과 공간이 휘감기더니 베트남 살던 때로 나를 이동시킨다.
동네 단골 과일 가게 아줌마가 내게 하곤 했던 유일한 영어, 땡큐 앤 씨 유 어게인.
"Thank you"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하루가 멀다 하고 들락거리며 열대 과일을 사가는 내게 매번 "See you again"을 외치는 아줌마의 말이 재미있다 생각했다. 수입의 원천인 단골 고객을 자꾸 보고 싶어하는 장사꾼의 마음이 느껴져서,라기보다는, 헤어질 때 나누는 인사말의 전형(典型)이, 생경한 외국어(영어)를 말하는 또 다른 외국인(베트남 사람)을 통해 새삼 상기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언어는 서로 다른 기원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상당 부분 유사한 패턴을 공유하고 있는 듯하다. 헤어질 때 나누는 인사말만 봐도 그렇다. 우리나라 말에도 "또 봅시다"라는 인사가 일상적이듯, 프랑스어의 "오 흐보아(Au revoir)" 역시 '다시 보자'라는 뜻이며, (요즘 열심히 배우고 있는) 중국어에서도 "짜이 찌엔(再見)" 즉 '다시 보다'라는 말을 확인할 수 있다.
나는 오늘 그렇게 반갑지만은 않은 사람과 악수를 나누며 See you again이라고 말했다. 다시 볼 수도 다시 안 볼 수도 있다. 무슨 생각으로 나는 See you again이라 말했을까. Hope to see you again도 아니고, It was nice meeting you도 아니었다. 전자가 '다시 보기를 희망한다'는 마음을 담고 있다면, 후자는 '만나서 반가웠으나 다시 볼 일은 없을 것'이라는 의미에 좀더 가깝다.
다시 만날 확률이 낮아 보임에도 "또 봅시다"라고 말하는 것은 어쩌면 이런 의미일 수도 있을까. 이렇게 한번 보게 되었으니 언젠가 다시 볼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기도 하고, 그러한 (알 수 없는) 인연에 긍정적 제스처를 취해 보이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당장 내일을 모르는 것이 사람의 일이다. 만나고 돌아서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다시 만나지 않기를 바라지만 어떻게든 만나게 되는 일이 있고, 간절히 다시 만나기를 바라지만 이루어지지 않는 일도 있다. 그러니 See you again이라는 말은 다의적으로 풀어낼 수 있겠다.
일종의 반어적 주문이 될 수도, 시간과 우연에 맡기겠노라는 순리의 인사가 될 수도, 적극적 희망을 담은 의지의 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오늘의 무사한 일상이 내일도 이어지기를 바라는 소박한 기원일 수도 있겠다. 반복일지언정.
그러니, 씨 유 어게인-다시 만나요,라는 말은 눈물겹다. 계속되는 반복 속에 무언가 새로운 것을 염원하는 마음이 미세하게 감지될 때 더더욱.
See you again.
(2016)
제게 <See you again>은 찰리 푸스와 위즈 칼리파, 그리고 분노의 질주를 떠올리게 만듭니다.
@깔깔마녀아, 그러네요. 그 곡 좋죠. 덕분에 오늘 오전 송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