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주로, 매뉴얼, 환대

타이베이 공항에서

이상한 일이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따라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창밖의 두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땅딸하고 비슷한 키에 베이지색 유니폼을 입고 짧게 깎은 머리에 선글라스를 낀 두 남자가 비행기를 향해 손을 흔든다. 먼 타국에 가족이나 친구를 보내는 사람이 손수건을 흔들듯 업무용 지시봉을 들고 나란히 서서 팔을 흔든다. 힘차게 그리고 정성껏.


불현듯 콧날이 시큰하다. 나는 읽던 책을 접고 허둥거리며 핸드백 속을 뒤져 핸드폰을 꺼내 들었지만 이미 창밖의 남자들은 사라지고 난 뒤이다.


물론 공항 내 프로토콜일 것이다. 비행기가 이륙하려 움직이기 시작할 때 으레 활주로에 있는 직원이 비행기를 향해(어쩌면 기장과 승무원들에게 아니면 승객 전체를 향해) 손을 흔들게 되어 있으리라. 안전한 비행과 무사한 여행을 기원하며. 그들은 그저 매뉴얼대로 움직이는 것일 뿐. 이 땅의 무수한 밥벌이 매뉴얼들 중 하나에 불과할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마치 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는 것처럼 뭉클하고 시큰하다. 최근 일련의 일들로 마음을 다쳐서일까.


예정된 홍콩 일정이었지만 왠지 쫓기듯 떠나는 마음이다. 자주 오가는 홍콩인데도 이번엔 마치 아무도 찾지 않는 섬 속으로 숨어들어가는 기분이다. 솔직해지자. 나는 사람들을 피해 도망치듯 홍콩으로 가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일까. 생판 처음 보는 두 사내의 손짓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나는 마주보며 함께 손을 흔들어 보이고 싶을 지경이었다. 저들 역시 누군가의 아들이고 남편이며 아버지일 것이다. 그 개별적인 사정을 일일이 다 헤아리지는 못하겠지만, 보편적인 인간사에서 한 발짝도 떨어지지 못하는 형편이야 매한가지 아닐까.


이상한 일이다. 익명의 타인에게 속내를 털어놓고 모르는 사람끼리 위로하고 위로 받는 그런 광활한 범(汎)이해적 공간이 바로 이 지구라는 생각. 이런 애틋한 생각이 간간이 혹은 불현듯 뻗치기라도 하지 않는다면 '박애'라는 거대하고 광막한 단어가 언제 또 나를 건드리고 갈 것인가. 한없이 작고 유한한 나를.


활주로 위, 햇볕에 검게 그을린 두 남자의 환대에서 '타자에 대한 환대'라는 철학적 상념을 떠올리는 것은 너무 비약일까.


때로는 '매뉴얼 환대'에도 감동하는 것이 인간인가 보다.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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