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나아가기
만(慢)이라는 글자에 자동으로 시선이 간다. 좋아하는 한자라고 말해본다. '느림'을 지시하고 있어서일 것이다.
마음 속 자갈길에 오돌도돌하게 돋아나 있는 돌출 부위들은 뭐랄 것도 없이 '느림'이라는 단어를 담고 있다. 어쩌면 그래서 더 눈에 띄는지도 모르겠다.
慢 뒤에 行이 온다. 좋아할 수밖에 없는 단어라고 말해본다. ''느리게 나아가기'를 지시하고 있어서일 것이다.
느리다,는 것은 상대적이다. 무엇에 비해, 누구에 비해, 느린 것이다. 빠른 것이 있어 느린 것도 있다. 비교 대상이 없다면 의미 없는 단어이다. 이 둘 사이에 적절히 놓일 만한 단어가 '적정'일 텐데, 나는 미욱하게도 그 객관적 표준을 자꾸 미심쩍은 시선으로 보려 한다. 무시도 아니고 회피도 아니다. 의심이다. 나는 미욱하여 그 객관적 표준에 미치지 못하는 '느림'의 심각성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 한다. 불안이다.
만행(慢行)이라 적힌 길 위에서 위태위태하게 자전거를 배우는 한 여자를 본다. 헬멧을 쓴 남자 아이가 엄마를 뒤따르며 깔깔댄다. 꼬마는 네발자전거를 타고 있다. "계속 굴러! 계속! 그렇지 않으면 넘어져! 쉬지 않고 계속 밟으라구!" 여자의 남편이 역시 웃으며 큰 소리로 주문한다.
나는 잠시 慢行이라 적힌 글자 위에 서서 그들 가족을 바라본다. 여자는 나처럼 뒤늦게 두발자전거를 배우는 것이리라. 아이도 또래에 비해 느린지 모른다. 다른 아이들은 이미 두발자전거를 타고 있을 게다. 그러나 그들 가족은 행복해 보인다. 아니, 행복한지 아닌지는 내가 알 수 없는 노릇이더라도 적어도 즐거워 보인다. 그들은 다 함께 웃고 있다.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자전거에 여자가 짜증을 낼 수도 있고, 남편은 아내에게 답답하다는 듯 고함을 칠 수도 있을 테고, 아이는 자신의 네발자전거가 부끄러워 내팽개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들의 느릿한 행보에 마음이 축축해진다. 내 주위를 돌고 있는 온갖 느린 것들의 궤도에 대해 생각한다. 무엇에 비해 느린 것인가. 표준은 누가 정하는 것인가.
나는 '나'를 기준으로 삼기로 한다. 내 머리 속에 떠오르는 하나의 대상을 기준으로 삼기로 한다. 느리고 빠름은 그 마음 속 기준에 근거한다. 외부의 근거에 따르지 않기로 한다. 그것인 참조일 뿐이다.
천천히 돌아가더라도 직행보다 완행이 좋다. 초고속 열차보다 느림보 거북이 산악 열차가 좋다. 목적지보다 가는 길 풍경이다. 실용적이지 못하나 정서적으로 즐길 만하다. 어쩌면 그래서 미욱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굴러야 한다. 쉬지 않고 밟아야 한다. 그 어떤 기준에 비해 느리다 할지라도.
만행(慢行)이다.
(2016-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