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엄마? 체코 친구 K!

엄마 사이가 친구 사이로 : 호치민에서 만난 친구 카트리나


# 엄마들 사이의 거리


몇 년간 이웃으로 지낸 체코인 가족. 그 집 둘째 딸이 우리 아이와 같은 학급이었던 것이 계기가 되어 그 집 엄마와는 꽤 친하게 지냈다.


어쩌다 시간이 맞으면 아침에 잠깐 차를 마시기도 하고 시내에서 만나 함께 점심을 먹기도 하는 사이였다. 사실 엄마들 사이의 관계라는 것이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미묘하고도 복잡한 세계인지라, 아이,라는 공통 분모를 제외하고는 솔직히 인간적으로 교감을 나누거나 가까워지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하긴, 대표적인 '강남 엄마'로 살아온 선배의 이야기만 들어보더라도 그렇다. 핸드폰에 업데이트되어 있는 수많은 엄마들 연락처 중에 자신이 그나마 인간적으로 마음을 터 놓고 교감하는 엄마는 지난 20년을 통틀어 한두 명밖에 없다고 하니 말이다.


엄마들 사이에서 펼쳐지는 다이내믹은 참으로 흥미로워, 만약 발자크가 살아 있다면(그리고 마음 먹고 그리려고 했다면) 그의 야심찬 <인간희극> 프로젝트에 버금가는 <엄마희극>이 다음 속편으로 기획될 수도 있겠다 싶다. 그가 아우를 수 있는 분야는 심리, 종교, 교육, 정치 등 매우 폭 넓을 것이다.

싱거운 생각이다. 그래 봤자 나처럼 어정쩡하게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엄마들에게는 별일이랄 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고도의 심리전, 갈등, 사건들, 그리고 때로 육탄전에 가까운 무용담이 그려지는 것도 다 건너 건너 주워 듣는 미심쩍고 진위를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이다.


그래, 그렇게 나는 마음을 접었다. 이어령 선생이 이야기한 ‘호저의 법칙’이 그 어디보다 필요한 곳이 바로 여기 엄마들 사이의 관계일 것이다. 고슴도치처럼 온몸에 가시가 돋은 호저는 너무 가까이 있어도 안 되고(서로 찔리기 때문에) 너무 멀리 있어도 안 된다(추위를 함께 견딜 온기가 필요하기 때문에). 이 ‘적절한 거리 두기’는 만고의 진리인 듯하다. 인간과 인간 관계이든, 인간과 사물의 관계이든.



# 엄마 사이에서 친구 사이로


그런데 참 이상도 하지. 두어 번 이야기를 나누어보았을 뿐인데 이상하게도 잘 통하는 혹은 잘 통할 것 같은 느낌이 단박에 드는 사람이 있으니 말이다. 그 사람이 ‘엄마 사람’이든 아니든. 여자 사람이든 남자 사람이든.

혼자 있을 때 늘 책을 읽는 모습을 보면서도 그랬고, 프랑스인이 운영하는 작은 스튜디오에서 유화를 배운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그랬다. 체코에서 마취과 의사로 일했던 그녀는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아이 방학 때마다 체코로 돌아가 일을 하곤 했다.


이상하게도 그녀(카트리나라는 이름 첫 알파벳을 따서 K라 하겠다)와 있을 때에는 모든 엄마들의 공통 관심사인 ‘아이’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게 된다. 하더라도 아주 잠깐. 그나마, 아이에게 어떤 과외 활동을 시킬 것이냐 하는 문제보다는 어떻게 교육이 ‘인간의 독립과 행복’이라는 지향점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뜬구름 잡는) 주제에 더 가깝다. (물론 서로 딸리는 영어 때문에 보다 깊이 들어가지는 못한다.)


체코의 정치 상황, 체코 지식인들의 고민, 비종교인으로 사는 것, 그러나 초월적 존재(혹은 절대자 개념)에 대하여 부정하지 않는다는 공통점, 불가지론, 어렸을 적 경험한 신비한 일, 책과 미술에 관한 이야기 등 어찌 보면 일상 대화의 주제로 독려 받지 못하는 정치와 종교 같은 것들도 고스란히 포함되어 있는 셈이다.


어쩌다 작가 이야기가 나와, 카렐 차페크, 아니 거기까지 갈 것도 없이 프란츠 카프카나 밀란 쿤데라 같은 체코 작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더니, 그녀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이야기한다. 언젠가 그의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것이다. 서양인은 동양인 작가가, 동양인은 서양인 작가가 궁금한 법인가. 우리가 같은 동양권 문화의 나라를 방문하여 불교 사원이나 궁 같은 건축물을 보고 별 감흥이 없다가도 유럽의 장대한 고딕 양식 성당이나 바로크 스타일 궁전,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물을 보며 감탄하는 것과 같은 이치일 수도 있겠다.

내가 K에게 묻는 나라들은 슬로바키아, 폴란드, 헝가리, 슬로베니아 같은 (언젠가 방문하고픈) 동유럽의 나라들이고, 그녀가 방문하고픈 나라들은 일본과 우리나라 같은 동양의 국가들 혹은 저 먼 남쪽 나라 호주나 뉴질랜드이다.



# 가까운 것을 돌아보게 하는 관계


2년 전인가, 4월 부활절 주간을 맞아 무려 2주 동안 한국을 방문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도 나는 아, 그래! 보다는 아니, 왜? 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어디를 갈 예정이냐고 묻자 (뻔한 답이 돌아오리라 예상했던 것과 달리) 생각지도 않은 이름들이 튀어 나온다. 해인사의 팔만대장경, 조선 왕릉, 경주 불국사와 석굴암, 안동 하회마을 등등. 아, 그렇구나. 우리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관심 있는 것처럼 서구인들도 마찬가지로 유네스코에 등재된 한국의 문화유산에 관심이 있는 것이다. 해인사나 조선 왕릉에 가보았느냐는 질문에, 나는 우물쭈물하였다. 해인사는 아예 가본 적이 없는 것 같고...... 조선 왕릉도 어디 한두 개여야 말이지.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 아마도 서울 소재 몇 개 왕릉 정도는 견학차 가보았던 것 같기도 하지만...... 나는 어물거리다 별로 해줄 말이 없어 ‘제주도’는 꼭 가보라는 말만 덧붙였을 뿐이다.

한 달이 지나고 다시 만났을 때 K는 제주도를 거의 ‘예찬’하는 수준이었다. 그토록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가진 나라에서 살고 있는 너는 얼마나 행운아냐, 뭐 이런 식의 표현도 있었던 것으로 보아 그녀가 의례적으로 하는 말 같지는 않았다.


음, 내가 가지고 누리는 것 중에 평소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많을까 생각해본다. 이국에 대한 동경이나 타인에 대한 관심보다 모국과 자기 자신에 대한 앎의 열망이 더 큰가, 하는 질문. 먼 나라 먼 곳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도 좋지만, 내 주위를 둘러싼 환경과, 사람과 사물들에 제대로 시선을 던지고 있는가, 하는 질문. 작지만 이렇듯 소소한 생각 거리를 던져 주는 사이, 건강한 자극을 환영하며 주고받는 사이가 좋은 관계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K가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한 뒤 한동안 만나지 못하다가 오랜만에 동네 슈퍼마켓에서 그녀와 반갑게 마주쳤다. 그 사이, 길게 기르던 금발을 짧게 잘랐고, 스페인어를 새롭게 배우고 있었으며, 줌바 댄스에 도전하는 중이라고 했다. 곧 개도 한 마리 키울 예정이란다. (내가 개를 무서워하는 것을 알고) 새 식구 들이기 전에 자기 집에 놀러 오라고도 했다.


한국 엄마들 사이에서는 ‘누구네 엄마’가 그 엄마의 호칭이다. 서로의 이름은 잘 알지 못한다. 제3자에게 이야기하면서도 ‘내가 아는 엄마가 그러는데……’로 시작한다. 서로를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긴, 엄마들 사이에서 ‘친구 사이’가 될 확률은 꽤 희박해 보인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가까운 사이를 쉽게 ‘친구’라 부르는 서양인들의 문화를 다소 경계했던 적이 있다. ‘친구’라는 것은 (사전적 정의로만 봐도) 가깝게 오래 사귄 벗인데, 그렇게 개나 소나 친구가 되는 것이 어째 신뢰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두 번 만나고도 ‘아, 그 사람 내 친구야’라고 떠벌리는 사람들에 대한 불신도 한몫 했을 것이다.

그래도, ‘엄마 사이’가 ‘친구 사이’가 되는 그런 관계가 아예 불가능한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을 하게 해준 건, 체코 엄마, 아니 체코 친구 K 덕분이다.


다음 주 중에 그녀의 집에 잠깐 들르게 되면 한번 물어봐야겠다. 요즘 K에게 자극을 주는 것은 무엇이냐고. 그리고 무슨 책을 읽고 있냐고.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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