뻘짓

뻘짓, 그 하릴없음에 대하여


얼마 전, 10년 만에 연락이 닿은 친구와 잠시 옛날 이야기를 나누었다. 극적인 전화 통화였다. 그녀는 프랑스에서, 나는 베트남에서.


SNS의 힘이다. 슬쩍 불어로 내게 말을 걸어온 친구를 단번에 알아챘다. 그러나 불어로 답변을 하려니 머리 속에 단어들이 뱅뱅 돌아가고, 아주 기초적인 문장조차 떠오르지 않는다. 우여곡절 끝에 통화를 하고, 카카오톡 메시지를 주고받으면서, 우리는 10년이 넘는 단절의 기간이 무색하다 싶을 만큼 자연스레 공통 관심사에 의견을 모았다. 시, 시인, 무의식과 꿈, 니체, 롤랑 바르트 등이 오르내리고 (좀 뜬금없게도) 한자(漢子)가 공통 화제로 등장했다. 소위 근황 토크라는 것을 대충 건너뛴 것이다. 물론 그래도 될 만큼 코드가 맞는 친구이긴 했다.


프랑스인 남편과 두 아들을 둔 엄마이자 임상심리학자인 그녀는 지난 10년을 훌쩍 건너뛰어 '지금, 여기'에 있는 '나'와 대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지난 10년이 (이상하게도) 별로 궁금하지 않았던 것은 나도 마찬가지이다. 카톡 대화를 주고 받으며 우리는 각자 지금 현재 우리의 머리 속을 점유하고 있는(혹은 소리 없는 농성을 지속하는) 것들을 슬며시 끄집어내어 제한된 글자 수에 끼워 맞추곤 했다. 10시간 이상의 시차를 두고 아주 느릿하고 띄엄띄엄 진행되는 사적인 이야기들.


그나마 전화 통화를 할 때 소환된 과거의 몇몇 에피소드들은 그녀를 통해 다음과 같이 빠르고 간결하게 요약되었다.

야야-, 그때 참 뻘짓 많이 했지.


뻘짓. 단 두 음절로 간추릴 수 있다 생각하니 좀 서글픈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가……? 평소 거의 쓰지 않는 단어인데, 이제는 프랑스어 억양이 자연스럽게 한국말에도 배어 나오는 친구의 입에서 들으니 더 기이하게 들렸다.


뻘짓. 사전을 찾아보니 국어사전보다 영어사전이 먼저 뜬다. vain effort라니. 그러니까 ‘괜한 노력’이다. 딱히 노력이랄 것이 없다면 ‘괜한 수고로움’ 정도 되려나. 국어사전에서는 ‘뻘짓거리’라는 단어로 ‘쓸데 없는 일’을 일컫는 듯하다. 그러니까 ‘허튼 짓’이다.


나는 다소 부인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으나, 그 곤고한 시절 딱히 어딘가에 ‘득이 될 만한 노력’을 한 것도 없는 것 같아서 달리 뭐라 표현할 길이 궁색해졌다.


어, 그렇...지…?

아무래도 수긍하는 쪽에 가까운 모양새다.


왠지 ‘허튼 짓’보다는 ‘괜한 수고로움’ 쪽으로 해석하고 싶어진다. 그 많은 일들이 다 ‘허튼 짓’이었다면(물론 상당수가 허튼 짓이었을 확률이 높긴 하다), 참으로 허무한 일 아닌가. 비록 딱히 내세울 만한 가시적인 결과는 없더라도 그 ‘뻘짓들’이 나름 무언가를 지향하여 꼼지락거리는 수준은 되었다고 믿고 싶은 것이다. 그래야 그 뻘짓이 하다못해 현재의 도마 위에 그런대로 씹을 만한 추억의 안주거리로라도 등장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고 보면,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들 중에 ‘뻘짓’ 아닌 것은 거의 없는 듯 보인다. ‘대체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야’라거나 ‘도대체 이게 다 뭐라고’ 하는 생각이 든다면 ‘뻘짓’일 확률이 높은 것이니까.


그러나 ‘뻘짓’이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마음을 고쳐먹는다. 기약 없이 애쓰고 당장의 보람 없이 자신을 소진하는 것이 굳이 ‘허무’일 필요는 없는 것처럼. 어쩌면 그런 ‘하릴없음’이 안쓰러워, 뭐라도 보태주고 싶은 마음에 던지는 따뜻한 조소(嘲笑) 같은 것이 ‘뻘짓’이라는 어감 속에 은근히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고 보니 그 친구와 여름 휴가를 기점으로 연락이 뜸해졌다. 연락이 닿으면 이야기해주어야지. 이정심의 <뻘짓 어만짓>이란 수필집도 있는 것을 보면 뻘짓 어만짓이 꼭 뻘짓 어만짓만은 아닐 것도 같은데, 라고.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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