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무의식이 보내는 메시지

김서영의 <내 무의식의 방>에 부쳐

by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렸을 때부터 꿈을 기록하곤 했다. 꼭 무엇을 목적한 것이 아니었는데도 왠지 지난 밤 꾼 꿈의 내용을 적어두고 싶었다. 유난히 꿈을 잘 기억했고 총천연색 꿈을 꾸었다. 꿈을 기록한 그때의 메모 조각들이 남아 있다면 귀한 개인적 사료가 될 텐데 다소 아쉽다.



# 꿈을 기록하다


사춘기를 지나 20대를 관통하는 내내 나는 특정 꿈에 시달렸다. 고정된 레퍼토리는 크게 몇 가지로 분류되었다.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으나 딱히 똑 떨어지는 해석이 가능하지도 않았다. 자신에 대한 골몰이 정점에 다다랐던 시절이었다.


문학 전공자인 내게 심리학과 철학은 깊이 감추어진 넥타르 같은 것이었다. 그 달콤한 액체로 갈증을 달래려 주변을 많이도 기웃거렸다. 우연한 기회에 어느 심리학 교수가 주도하는 대학생 클럽에 참여하기도 했다. 프로이트적 자유연상기법과 표상의 해석을 위주로 진행된 주간 모임이었는데, 스무 해 남짓 살아온 이래 워낙 독특한 경험이었기에 빠지지 않고 열심히 참석하였다.


대여섯 명의 대학생들이 바닥에 누워 몸과 마음을 이완하고 떠오르는 자유 연상에 자신을 맡기는 실험(?)도 곧잘 진행되었다. 누구는 독수리가 되어 하늘을 날고 누구는 바위로 웅크려 앉았다. 그렇다면 나는? 안타깝게도 내게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떠올리지 않았다,는 표현이 좀더 적합하려나. 상상과 몽상에 잘 빠져드는 인간이라고 스스로 생각해왔기에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교수는 나의 '방어기제'가 몹시 강해서라고 했다. 역설적이게도, 의식이 좀더 무의식에 가까운 지점으로 향할 수 있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하였다는 점이 (나의 경우) 패착이었다. 반최면상태라고는 하나 말짱한 의식으로 무의식의 방을 두드리려 하다니. 지나고 보니 무모한 시도였다. 게다가 자유연상으로 떠오른 이미지가 '말'로 옮겨지는 순간 이미 의식적인 개입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언어로 객관적 형상을 갖춘 이미지들을 다시 언어로 분석하는 과정이 어째 마뜩잖았다. 게다가 교수는 프로이트의 성 이론에 몹시 집착하는 사람이었는데 이 또한 거슬리는 부분이었다. 이러저러한 일로 흐지부지 모임을 관둔 내게 프로이트는 더 이상 매력적인 이름이 아니었다.


그후 한동안 (나의) 무의식을 이해해보려는 시도는 중단되었다. 졸업 이후 정신 없이 일에 쫓기며 살 수밖에 없는 환경도 한몫 했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10년 넘는 시간이 훌쩍 흐르고 결혼과 출산, 엄마의 죽음을 겪으며 조금씩 과거와 꿈과 무의식에 대한 생각들이 다시 깨어나기 시작했다. 뒤늦게 융을 접하게 되었고 신화와 집단무의식, 원형, 상징, 자아(ego)와 자기(self), 개성화 과정(individuation: 자기self와의 의식적인 대화) 등의 매력에 빠졌다. 융은 프로이트가 리비도(libido)에 너무 치우친 나머지 전체성으로서의 '가치 중립적'인 ‘마음의 세계’를 무시한다고 비판하였다. 이 점도 왠지 마음에 들었다.


꿈을 다시 메모하기 시작했고 이를 바탕으로 시도 써보게 되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꿈을 기록하는 과정에서 시에 가장 가까운 형식이 갖추어졌다. 아침에 일어나면 바쁜 와중에도 화장실에 앉아 간밤의 꿈을 생각(정리)해보려 애썼다. 꿈과 시상(詩想)의 공통점은 눈 깜짝할 사이에 바람처럼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 고도의 휘발성을 경험하고 나니 의식적으로 붙잡으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 꿈을 글로 풀어내면서 (예전과 비교하여) 나 자신의 민낯에 좀더 가까이 다가가게 된 것만은 확실하다. 그래도 여전히 또렷하게 잡히지 않는 미진한 구석. 이 역시 과정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 내 무의식의 방 - 나만 할 수 있는 이야기


그러던 차에 정신분석학자 김서영의 <내 무의식의 방>을 읽게 되었다. 꿈을 해석하는 방식이 상이하게 다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과 융의 분석심리학을 동시에 아울러 무의식을 이해하려는 접근이 단연 시선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반사적으로 구입했으나 생각보다 바로 읽히지는 않았다. 저자 자신의 꿈 사례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보니 읽어야겠다는 긴장감이 다소 풀렸던 게 사실.


저자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서 출발하여 융의 분석심리학을 만나게 되는 여정을 자신의 꿈 사례와 함께 보여주고 있다. 저자의 꿈 속에 자주 등장하는 이 상반되는 두 입장의 갈등은 그간 겪어온 그녀의 학문적 정체성에 대한 고뇌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러나 두 입장을 대척점에만 놓고 보려 하지 않고 상호 보완적인 합일의 방향으로 이해하려는 저자의 노력 또한 치열하게 느껴진다. 두 이론을 융합하여 꿈 즉 무의식에 접근하는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 키워드는 '대극의 합일' 그리고 '방향성'이다. 학문적 토대와 기둥은 정신분석에 두고 그 위에 분석심리학이라는 지붕을 얹어 자신만의 집으로 종합하는 식이다. 일종의 정-반-합이라고나 할까.


학문적 토양은 정신분석에 두었지만 융에 대한 애정은 자주 드러난다. 융 학파에서 이야기하는 아니마(아니무스)라든가 원형, 집단무의식, 신화와 같은 단어들이 줄곧 등장하는 것을 보아도 그렇다. 그리고 정신분석적 분석과 분석심리학적 분석을 종합하는 부분은 좀더 융 학파적인 방향으로 수렴되는 듯하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분석심리학적 분석: 분화된 아니무스 상이다. 상당히 성숙한 원형이다. (…) 삶이 조화, 균형을 위한 합일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와 함께 내 학문적 여정 역시 성숙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종합: 대극의 합일에 관련된 꿈이다. 아니무스와 하나가 되는 이야기이자 내가 여성성을 회복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중요한 꿈이다. 가장 힘든 시기가 끝났다. 이제는 다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224p)

분석심리학적 분석: 마치 ‘큰 꿈’ 같이 느껴진다. 큰 꿈이란 ‘누미노즘’, 즉 신비로운 느낌이 있는 꿈으로 여기에는 집단무의식이 발현되어 있다. (…) 무의식의 영역이 생명력 넘치는 공간으로 묘사된다. 바로 그 공간이 내 마음속에 만들어진 것이다.

종합: (…) 아름다운 공간이다. 그게 나 자신이었다. 그리고 그게 바로 내 힘, 내 정체성이었다. (238p)


저자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사실 '백만 인을 위한 정신분석'이란 별 게 아니다. 대중이 꿈 분석 방법을 알면 되는 것이다.


프로이트나 융 학파의 이론을 전문가 수준으로 공부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융이 <인간과 상징>이라는 명저를 나 같은 비전문가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했던 것처럼 저자 역시 일반인들이 각자 자신의 꿈을 주의 깊게 해석하고 무의식과 의사소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자 이 책을 기획했을 것이다.

*이제 와 생각해보니, 음악평론가 강헌이 죽을 고비를 넘기고 '명리학자'로 변신하면서 쓴 책 <명리>의 슬로건도 "만인(萬人)의 명리학자화(命理學者化)" 아니던가.


책에는 저자가 써온 개인적인 꿈 일기를 포함하여 프로이트의 꿈 분석 사례 및 꿈 분석 가상 사례 등 100가지의 꿈 이야기가 실려 있다. 각 꿈 내용에 대한 두 가지 접근방식을 하나 하나 세밀히 탐독할 필요는 없다. 타인의 지극히 개인적인 서사와 표상이기 때문에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할뿐더러 또한 그럴 필요도 없다. 꿈을 대하는 태도, 꿈과 대화하려는 자세, 무의식의 메시지를 경청하려는 사색적인 접근, 방향성을 감지하고 이를 긍정적인 삶의 지표로 삼으려는 정신을 배울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매우 내밀한 자기고백적 글이다보니 여지없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저자의 (학문적 정체성 및 여성성에 대한) 고민이나 생각, (소통에 대한) 열망, (완벽주의적 혹은 청교도적) 성향 등에 대하여 인간적 공감과 페이소스를 느끼는 소소한 즐거움도 놓칠 수 없다.


세상의 모든 작가는 자신이 창조한 작품 속에 자신의 본래 모습을 교묘히 은닉시킨다. 그런 점에서 자신의 가장 심층에 자리잡은 무의식의 조각들을 상당 부분 꺼내어 있는 그대로 타인에게 펼쳐 보이는 저자의 용기와 시도는 그 자체로 인정받고 따뜻하게 격려 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독자들에게는 물론 저자 자신에게도 치유의 경험일 테니 말이다.


나만 할 수 있는 나만의 (꿈과 무의식) 이야기가 다시 타인에게도 그들만의 '나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저자가 시도한) 이 선순환적 구조에 나는 지지를 보낸다.


나는 나만의 이야기를 하면 되고 당신은 당신만의 이야기를 하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