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내기 마케터 땡복이 주식 리딩업체에서 맡은 첫 업무는 회원들의 수익인증 사진과 글을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에 홍보하는 일이었다. (땡복이 이곳이 대단히 이상한 곳임을 확신하게 된 것은 일주일 뒤다. 멍청하게도.)
회사의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만족스러운 후기를 홍보하는 것은 마케팅에서 대단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 역시 일반적인 생각으로 업체에 대한 '좋은 후기, 따봉!'이나 '수익률 Before-After', '종목을 보는 대표의 눈썰미' 홍보 등을 예상했다. 그러나 이곳은 범상치 않은 낚시터답게 회원들의 노는 물 역시 달랐다.
대표는 대단히 자랑스러운 얼굴로 내게 압축 파일 하나를 보내며 말했다. "우리 회사의 자랑거리입니다. 땡복씨가 보면 놀랄걸요?"
파일을 여는 순간 멍해졌다. 정말 대표는 여러모로 나를 실망시키는 법이 없었다. 전엔 1인 20역을 하며 자화자찬으로 날 놀래키더니 이번엔 영화에서나 볼 법한 광경들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이경영 배우가 별장에서 벌거벗은 여성들을 옆에 끼고 성기로 폭탄주를 제조하는 '내부자들'의 명장면을 기억하는가? 해당 장면은 일명 '꼬탄주'라는 별칭이 붙어 아직도 각종 커뮤니티에서 회자되고 있다.
'내부자들'을 제작한 우민호 감독은 후속작 여부를 물어보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현실이 영화를 초월한다"며 제작을 포기했다고 밝혔다.
지금도 회자되는 영화 '내부자들'의 꼬탄주 장면.
사진파일을 연 순간 난 감독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70대의 인자한 얼굴을 한 어르신. 세월의 풍파도 어느 정도 맞아 주름과 조금의 검버섯도 가지고 계신 그런 분. 사진 속의 할아버지는 아주 기분 좋은 얼굴로 침대에 옆으로 누워계셨다. 여기까진 우리가 흔히 상상할 수 있는 침대회사 광고의 한 장면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분이 전라, 그러니까 나신이라는 데에 있었다. 더 나아가 그 침대는 5만원짜리 지폐뭉치로 만든 '돈침대'였다.
어질어질하지만 내가 본 사진을 정리하자면 인상 좋으신 어르신이 5만원짜리 돈뭉치로 만든 침대 위에서 옷을 모두 벗으신 채 옆으로 누워 '■■대표 감사합니다'라는 매직으로 쓴 A4용지를 들고 계신... 휴
여러분이 상상하기 어려울 것 같아 만들어 보았다.
점입가경인 부분은 당연히 모자이크도 없다는 거다. 영화보다 더 적나라한 현실에 내가 당황한 채 가만히 있자 대표는 바퀴 달린 의자를 내 옆으로 밀고와 자랑하듯이 떠들기 시작했다.
"땡복씨 봤죠? 우리 회사가 이렇게나 사람들을 행복하게 합니다"
그 장면이 준 충격은 내게 적잖았나 보다. 난 아직도 그 사진을 명확히 떠올릴 수 있다. 그리고 내 업무는 이 사진을 각종 SNS마다 회사의 주식리딩 단톡방 주소를 첨부해 걸리지 않을 정도로만 가려 계속 퍼 나르는 일이었다.
이외에도 마을 회관 옆에 'ㅁㅁ대표 원금회복! 감사합니다'라는 현수막을 제작해 걸고 그 앞에서 얼굴을 인증한 아버지뻘의 아저씨, 가족과 함께 오래 탄 것 같은 구형 아반떼 옆 면에 락카로 'ㅁㅁ대표는 신이야'라고 적어놓은 아주머니, 심지어 성경 위에 인증글을 써 놓은 목사(...)님 마저. 내 인류애는 1초 만에 팍싹 식었다.
자본주의 사회를 사는 보통의 기업가라면 좋은 인력을 보다 저렴한 가격에 채용하길 원한다. 이건 만고불변의 이치다. 물론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직원에게 감동해 연봉을 스스로 올려주는 CEO도 가끔 있다.
그러나 대표는 나의 업무능력을 보기도 전에 나의 연봉을 올려쳤다. 난 업무를 시작하고 나서야 대표의 그런 태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대표는 돈이 쉬웠다. 좀 더 풀어 얘기하자면 버는 것은 쉽고 본인에게 돌아올 리스크는 적었다.
본인이 주식에 대해 빠삭하고 그렇게 자신 있었으면 다른 사람에게 정보를 알려주지 말고 직접 주식 종목을 사면 됐을 일이다. 그러나 대표 본인은 모의투자로 리스크 없는 리딩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있었다. 손실이 났을 때 대표가 잃는 것은 없다. 폐업하고 6개월 정도 해외여행 갔다가 돌아와서 다른 이름으로 똑같은 행동을 되풀이할 것이 뻔하다.
세상에 확실한 투자가 어디 있겠는가. '인증샷'을 올린 저 사람들도 그건 어느 정도 알고 있지 않았을까. 그러나 당장의 돈 앞에 사람은 참 약했다. 그 사람들은 돈이 가족보다 커 보였고 본인의 신념보다도 커진 상태였다.
난 30대가 되기 전, 내 인생에서 가장 값지고 비릿한 경험을 첫 직장에서 겪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