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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땡복 Feb 21. 2023

2300억원의 스타트업을 차버렸다

대표 앞에서 이직 전화를 받아버리다

[경남사람 서울 상경기]


경남에서 맨몸으로 상경해 무려 주식으로 사기 치는 회사에 들어와 버린 땡복.

도덕적인 측면으로 봤을 땐 당장 손절치고 나가야 하나 무일푼이었던 난 밥과 출퇴근비를 위해 생활비 대출을 받아버린 상태였다.


'지금 퇴사하면 언제 다른 회사에 취업할 수 있을지 모른다'라는 불안감이 땡복을 엄습했고, 최악의 경우엔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시나리오가 서자 난 쉽사리 그 회사에서 발걸음을 뗄 수 없었다.


'집은커녕 밥솥과 쌀도 없는 20대 후반 타향살이맨'이 내 타이틀이었고, 그렇게 난 헐벗은 할아버지들과(이전화 내용 참고) 주식초짜들을 낚는 회사 동료들 사이에서 일하며 자괴감에 빠져갔다.  




입사 4일 차. 아마 그날 오전도 내면의 부끄러움으로 울렁거리는 속을 부여잡고 누군가의 돈자랑을 꾸미고 있었던 것 같다. 점심시간, 회사 근처에서 부대찌개를 먹고 다른 사람들이 모두 담배타임을 가지러 갔을 때 내 휴대폰이 울렸다.


땡복님, [아주 멋진 명함회사(가칭)] 인사담당자입니다.

면접일정 관련해 연락드렸습니다.

가능하신 시간에 연락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기억나는가. 땡복은 서울에 오기 전, 80통의 자기소개서를 여기저기에 뿌렸다. 이력서를 넣고 당장 연락이 온 곳이 현재 땡복이 다니는 주식리딩회사고 지원서를 넣고 일주일쯤 지난 지금, 다른 회사에서 연락이 온 것이다.


땡복은 곧바로 고민에 빠졌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도 스타트업이라고 해서 들어왔는데 '서울 사람들은 모두 이렇게 허울 좋은 말로 사람을 꼬셔놓고 사기를 치나. 역시 눈만 감아도 코를 베어간다더니...'같은 생각을 하는 땡복에게 서울 사람의 낯선 연락은 경계의 대상이었고, 이로 인해 땡복의 임무형 보호태세는 높은 단계로 올라간 상태였다.


일단 겁이 났지만 땡복은 회사에서 몰래 빠져나와 전화를 했다(그 당시 나에겐 이것도 큰 용기였다).


"네, 여보세요↗"(서울말을 쓰기 위해 끝을 올렸다.)

본인을 '아주 멋진 명함회사'의 인사담당자라 소개한 상대방은 내게 면접이 가능한 날짜를 물었고, 스피커폰을 켜놓고 휴대폰 달력을 확인하던 땡복은 담배피러 나온 대표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밖에서 이직 전화를 받으며 휴대폰 스케줄러를 확인한 땡복. 그러나 담배피러 나온 대표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아, 제가 지금은 다른 회사에 취업을 해서요... 다음에 연락드리겠습니다"

그 상황에서 머리가 하얘진 땡복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처였다. 대표는 누구와 전화했냐며 물어보았고(지금 생각하니 무례하다), 세상 물정 몰랐던 땡복은 당황한 나머지 다른 회사에서 연락이 왔는데 안 갈 거라는 물어보지도 않은 대답까지 하고 말았다.


아, 난 무엇이 무서웠을까. 그 사람들과의 의리는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을. 심지어 너무나도 탈출하고 싶었는데.

군인 출신이었던 땡복은 비록 4일밖에 되지 않았으나 월급을 주는 대표를 상사로 인식하고 있었다.




인간은 대단히 비효율적인 존재다. 사람이 효율을 따질 수 있는 것도 자존감이 차 있을 때의 얘기다.

맘 놓고 지친 몸을 누일 내 공간도, 원하는 것을 걱정 없이 사 먹을 수 있는 자유도, 여자친구에게 그럴싸한 선물도 사줄 수 없었던 그때의 땡복은 아마 '첫 월급'을 받고 싶었나 보다.


결국 일주일 뒤 땡복은 퇴사를 결심하게 되나 '아주 멋진 명함회사'로는 가지 못했다. (몇몇 분은 글자와 배경색을 보고 회사를 유추할 수 있을 듯하다)


어쨌든 지금 땡복은 꽤나 오래된 역사를 가진 언론사의 기자인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기업은 '진짜 스타트업'이었다. 땡복이 가지 못한 아주 멋진 명함회사는 2022년 말 1600억원 규모의 투자유치를 진행했고,  기업가치 2300억원에 달하는 커리어 어플계의 공룡이 되었다.


물론 지금 와서 그때의 결정을 후회하냐고 물어본다면 딱히 그렇진 않다. 난 사람 만나고 글 쓰기 위해 계속 스스로 공부해야 하는 현재 직업에 만족하는 편이다.


그러나 그때의 땡복은 이불킥, 코너킥, 바나나킥 등을 차며 후회감에 빠져 있었다.

'그때 전화하지 말걸', '좀 멀리 나가서 받을걸', '캘린더를 왜 켜서...' 등 쓸데없는 상황에 대한 자책만 이어졌고, 그로 인해 그저 인사담당자에게 다시 연락해 당시의 상황을 차근히 설명하면 된다는 기초적인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 통장에 돈이 없는 게 이유였을까. 땡복은 용감하지도, 지혜롭지도 못했다.


지금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누군가에 대한 의리나 두려움으로 더 나은 결정을 하지 못하는 상태인가?

걱정 말라. 땡복은 당신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당신은 그때의 땡복보다는 나은 결정을 하길 바란다. 순간은 잠시고 선택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일단 그때의 땡복이 어떻게 탈출하게 되었는지, 탈출하고 밥 먹을 돈도 없었을 텐데 뭘 먹고살았는지는 다음화에서 차차 알아보도록 하자. 이젠 좀 도망가 땡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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