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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고기는 고마웠어 Dec 02. 2018

[공사 시작 33일째] 음향시스템과 검색 전문가

- 11년차 회사원의 술가게 창업기 (2018. 11. 18.)

열흘 전 대학 친구 명훈이와 전화 통화를 했다. 명훈이의 취미는 점잖게는 정보 수집, 까놓고는 웹서핑이다. 주제가 무엇이되었든 검색 과제가 주어지면 놀라운 집중도로 정보를 마이닝하여 정리하는 탁월한 능력이 있다. 명훈이는 3대의 노트북과 1대의 아이패드, 1대의 surface 그리고 이와 연결해서 쓸 수 있는 4개의 모니터를 가지고 있다(물론 업무용은 별도). 본인은 4차혁명 시대를 준비하기 위한 기본도구라는 등의 이유를 대지만, 옆에서 보기엔 검색 결과를 직접 검증할 수 있는 유일한 가격대 제품이기 때문인 듯. 


"명훈아, 요즘 바쁘니?"

"뭐 그냥 그렇지. 특별할 건 없는데, 왜?"

"나 이번에 여는 술가게, 스피커랑 앰프가 필요한데. 니가 좀 적절한거 검색해서 찾아줄래?"

"그래. 재밌겠다. 내가 예전엔 AV 덕후였지. 너무 비싸서 이론상으로만 덕후였지만."

"우리 예산이 좀 빠듯해서, 최대한 가성비 좋은 쪽으로 부탁해 ㅎㅎ 예쁘면 금상첨화고"


그 후 명훈이와 몇번의 전화와 카톡을 한 뒤, 오늘 명동 이비스 호텔 뒷편의 카오위(烤鱼)집에서 태희 언니와 셋이 만나기로 했다. 살짝 익힌 생선 위에 고추, 산초, 생강 등 각종 향료를 잔뜩 얹어 다시 열을 가해 매콤하게 익혀내는 중국 요리인 카오위는, 한국으로 치면 국물 자작하고 간이 약한 생선찜과 생선 구이의 중간 쯤 되는 요리.    


음식 주문을 마치자 명훈이는 가방에서 꽤 두꺼워 보이는 보고서를 주섬 주섬 꺼낸다. 15페이지나 되는 스피커 조사 보고서를 써온 것. 

"우선 스피커부터 이야기할까? 매장용 많이 쓰이는 것은 스피커는 JBL이고, 인테리어에 신경을 쫌 쓴다고 하면 BOSE지. JBL은 1통당 8만원 수준, BOSE는 실내용 소형은 20만원 수준이고 북쉐프형은 30만원선이 넘지. 좀더 저렴한 국산으로 1통당 4~5만원 수준의 스피커들도 여러 종류가 있어."
"스피커가 참 다양하구나... 이 중에 뭐가 좋으려나."

"음, 실내용과 실외용을 구별해서 생각해야 해. 우선 실외용이 안나오는 메이커는 제외.  내 웹서핑 결과 추천할 만한 모델은 스페인에서 나온 WORK NEO 5란 스피커야. 널리 알려진 것은 아니지만 우선 디자인이 이쁘고, 가격도 보스만큼 비싸지 않고. 그래도 예산이 너무 부담스러우면 국민 스피커 JBL도 좋고."


태희 언니와 나 둘 다 스피커와 앰프에 대해서는 아무런 아이디어가 없지만, 일단 때마침 나온 카오위, 그리고 매콤 얼얼하게 양념한 가재요리 마라롱샤에 칭따오를 한잔한다. 


"너무 고민하지 말고, 조금 모양은 못났지만 성능이 좋다고 알려져 있는 JBL로 가자." 첫잔을 비우고 빈잔을 내려놓으면서 같이 내려지는 태희 언니의 번개 같은 결정. 이어서 바 곳곳, 화장실, 그리고 주인장들이 번갈아 들어갈 주방에도 스피커를 배치하도록 계획하니 총 10개가 필요하다. 스피커의 옴(저항)수까지 꼼꼼이 계산해서 이를 구동할 수 있는 가성비 좋은 국산 앰프까지 정하고 나니 어느덧 카오위 그릇이 비워졌다. 


"명훈아 정말 고맙다. 덕분에 큰 짐 덜었어."

"아냐 재밌었어. WORK NEO를 선택하지 않은건 좀 아쉽긴 하지만. 내 생각엔 너희가 쓰는 앰프 하나를 5.1채널 리시버로 바꾸고, 적절한 우퍼를 하나 두면 좋을 것 같아. 프로젝터로 영화 같은거 쏴서 볼때 좋을 것 같고, 작은 회사 송년 모임 같은거 단체 예약 받으면 프로젝터 이용해서 게임 시합 같은 거 할 때도 음향 효과가 좋을 듯. 그리고 내가 너랑 누나라면, 플레이스테이션도 하나 사서 연결하고 레이싱 게임을 실감나게 할 수 있는 거치대 키트를 둘 것 같아. 그 키트도 내가 찾아봤는데 가격이 대략 ...."


명훈이는 스피커와 앰프를 시드(seed)로 하여 파생되는 전 지구 모든 전자 제품을 소개할 기세로 리서치 결과를 쏟아내기 시작하고, 그 소리를 배경 삼아 새 칭다오 병을 딴다. 회사일을 하면서 술가게 준비하는 것이 쉽지 않은데 이렇게 도움을 주는 친구들에 대한 고마움 때문인지, 맵고 얼얼한 생선과 가재 요리 때문인지 따뜻한 기운이 올라온다.  


[명훈이가 찾아준 스피커들 중 일부]

WORK NEO 5
BOSE 251SE
JBL

[공사 진행 상황 -- 바의 일부와 멀리 보이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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