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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11년차 회사원 술가게 창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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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고기는 고마웠어 Dec 01. 2018

[공사 시작 32일째] 네 잔의 위스키

- 11년차 회사원의 술가게 창업기 (2018. 11. 17.)

모든 몰트 위스키의 재료는 보리, 물, 이스트 세 가지이다. 단순한 세 개 재료가 증류소 고유의 엔지니어링 작업을 거친 뒤 캐스크와 만나, 수백개 형용사로 묘사되는 깊은 향미로 태어난다.

두 예비 사장은 술가게에서 몇 종류의 싱글몰트 위스키도 제공하려고 하는데, 수 많은 싱글몰트 위스키 중에서 어느 위스키를 골라야 할지 몇 주째 고민 중이다.

2 주 전 태희 언니가 데려간 한남동의 밀주가(speakeasy)에서 상당히 열심히 '테이스팅'을 했으나, 당연히 성과는 없었다. 피트향 - 스카치 몰트 위스키 특유의 훈연향- 부터 정복하자며 순한 향부터 강한 향까지의 피트향 나는 아일레이 위스키를 아는대로 주워섬기며 마셨던 것까지는 좋았는데, 어느 순간 미각도 기억도 사라진 것. 다음날 술이 깨면서 아이디어는 온데 간데 없고, 흥겨웠던 기분만 남았다.

"우리가 술을 마시는 과정을 녹화하지 않고서는, 바에 가서 메뉴를 정하는건 무린듯 해 은하야."

"그러게... 어떻게 위스키를 고를까? 우리가 좋아하는 위스키 세 개씩 해서 6가지 할까?"

"ㅎㅎ 그건 각자의 홈바를 위해서 남겨두자. 혹시 Wishart라는 분의 위스키 향미 분석법을 아니?"

"?"

태희 언니의 설명에 따르면, 세인트 앤드루스 대학의 데이비드 위샤트 교수님은 대표적인 몰트 위스키를 주된 '향미'에 따라 분류하는 연구를 하였다. 물론, 세인트 앤드루스 대학은 스코틀랜드에 있다.

위샤트 교수님은 약 500가지의 형용사와 명사로 묘사되는 위스키의 다양한 향미를 12개의 중요 향미 요소로 구별했다. 사실 위스키 한잔의 향미는 500개 형용사가 아니라 수십장의 수필로도 쓸 수 있다. "추수 끝난 논가의 콩넝쿨을 베어 짚불에 구웠을 때의 재 향기와 살짝의 풋내"라던가 "사랑하는 이를 보내고 떼는 그 남자의 첫 걸음 같은 무거운 바디감." 하지만 이런 묘사는 다른 사람들과 그 위스키의 특징을 공유하는데 크게 도움이 안된다. 그래서 위샤트 교수님은 많은 위스키를 비교적 객관적으로 구별할 수 있는 주요 표지로 12개의 향미요소를 정한 것이다.

12개 향미 요소는 바디감, 달콤함, 스모크, 약내음, 담배, 꿀, 스파이스, 와인, 견과류, 몰트, 과일, 꽃이다. 위샤트 교수는 와인 생산자,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영국 전역과 아일랜드에서 생산되는 250개 이상의 싱글몰트위스키에 대하여 위 12개의 향미 요소를 분석했다. 그리고 각각의 향미 요소에서 비슷한 점수를 받은 위스키들을 모아 위스키 군으로 묶었다. 이와 같이 묶인 위스키 군은 총 10개. 위샤트 박사님은 낭만적이게도 각 위스키군에 A 부터 J 까지의 알파벳 번호로 이름을 붙였는데, 같은 군의 위스키는 서로 유사한 풍미를 내고, 서로 다른 군의 위스키들과는 차별점이 있는 것이다.

위 12개의 향미 요소 중에서도 특히 가장 핵심적인 요소를 골라 두개의 축으로 만들면 '와인향-스모키향' 축과, '바디감 약함(섬세함) 꽃향-바디감 강한 다양한 향'축을 만들 수 있다. 이 두 축을 교차 시키면 하나의 사분면이 만들어지고, 그 사분면 위에 위에서 분류한 10개의 위스키군(A-J군)을 배치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와인을 단 4가지 유형으로 구별할 수 있게 되는데, 아래 그림과 같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