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
조그맣던 아이의 눈망울엔
세상 모든 것이 도전
가슴이 터질 듯
달리는 걸 좋아했고
누구보다 먼저 달리고 싶었던.
자라 버린 아이의 눈망울엔
세상 모든 것이 두려움
경쟁이 싫어
아무도 몰래 숨어버렸고
누구보다 앞서 가는 게 무서웠던.
이제는 남은 길을
천천히 걸으려 하네.
살랑이는 바람결을 느끼고
유유히 흐르는 물과 속도를 맞추며
그렇게,
나란히 걷고 싶어.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려 본다.
이기기 위한 도전에 몸을 맡기고 으레 이겨야만 직성이 풀렸던 그때.
그렇다고 다 이긴 건 아니었다.
때때로 지는 날이면 분한 마음에 나를 탓하고 상대를 탓하며 속앓이를 했었다.
하지만 사춘기 시절, 그때부터 나는 서서히 숨는 법을 익혔다.
아마도 세상에는 내가 이길 수 없는 것들이 훨씬 더 많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던 것 같다.
나라는 사람은 그저 이 넓은 세상 속 하찮은 조무래기일 뿐이라는 것을.
그렇게 나는 숨는 것을 택했다.
가끔 눈에 띄기라도 할 때면
잘 걷던 길에서도 비틀댔고, 물을 마시다가도 사레에 들렸으며, 숨을 쉬다가도 덜컥 숨이 막혀오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경쟁하지도 숨지도 않는다.
나에게 집중하고, 내 삶에 만족하며 천천히 나아갈 뿐이다.
그렇게 바람에 기대고, 물의 흐름에 맞추어, 나란히 걷는 삶을 배워 나가고 있다.
서두르지도 재촉하지도 않고, 나란히 걷는 이 순간만이
비로소, 나를 가득 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