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없어."
"이게 왜 맛없니? 하여튼."
'문제의 원인', 이게 바로 나의 역할이다. 음식이 문제가 아니라 내 입맛이 문제라는 식의 엄마의 화법은 진저리가 난다. 왜 나는 내 고유의 입맛조차 거부당해야 할까.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과 느낌에 대해 왜 설득해야만 할까.
별생각 없이 툭 하고 나오는 엄마의 말버릇이라고 애써 포장을 해봐도 40년 넘게 맡아온 문제의 원인이라는 역할은 꽤 불쾌하다. 엄마와 다르면 틀린 것, 그래서 난 게으르고 불성실한, 이상하고 까탈스러운 애이다. 현재까지도 꾸준히 틀린 것 투성인 존재이다.
샤도 호랑이도 독수리도 아니지만 그래도 서울에 있는 대학을 나왔다. 회사를 다니다 방향을 틀어 교육대학원에 진학했고 교원자격증을 받아야 했기에 논문도 썼다.(석사의 논문은 그리 쳐주진 않지만) 공공기관의 규모를 축소하겠다는 정부 덕분에 '가정'과의 선발인원은 박살이 났고, 교사가 되기까지 4년이 걸렸다.
지원자가 가장 많은 지역에서 열두 명 안에 들었다. 합격 동기들과 서로의 점수를 공개했는데 수업 시연 점수가 가장 높은 것이 나였다. 면접도 만점이었으니 2차 시험에서는 내가 1등이었다. 이런 나를, 나는 불성실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엄마가 보는 나, 엄마가 창조한 나에 대한 개념은 나의 결론이 되었다. 나는 불성실하다.
엄마의 말은 나에게 그대로 다 실현되었다. 엄마가 평가하는 나와 내가 생각하는 내가 정확히 일치한다. 슬픈 일이다. 진짜 비극은 엄마가 만들어준 나에 대해 나 또한 바꿀 생각이 없다는 것. 왜. 난 정말 그런 애니까. 불성실하고 게으른 애가 맞으니까. 나의 살아온 경로가 나도 꽤 괜찮은 인간이라고 증명을 해주는데도 나는 미리미리 하지 못하는 게으른 애이다. 그게 나다. 엄마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그런 사람인 거다.
엄마 하나로 충분하다. 약점, 단점 들추기 대잔치를 열어 내가 얼마나 모자라고 부족한 것 투성인 인간인지 증명하는 파티에 남편까지 응하는 순간 난 정말 미쳐버릴 것 같다. 말 그대로 꼭지가 돌고 뚜껑이 날아간다. 화 말고 더 극단적인 단어가 필요하다. 분노. 너무 밋밋하다.
속에서 불같은 것이 치밀고 가슴에 수류탄 하나가 들어와서 지글지글 끓는다고 해야 할까. 가슴통이 그대로 펑하고 터지면서 살점이 파편이 되어 온 사방에 튀어 찹찹 소리를 내며 들러붙을 것 같은 그런 느낌, 그런 기분이다. 옴 몸이 쪼개지는 것 같은 고통. 맞다. 본질은 고통이다. 극도의 고통. 화가 아닌 고통이다.
‘왜 항상 내가 상처 준말은 낭떠러지까지 가 있을까요.’
이 구역 미친년에 대한 감상평인가. 아내의 돌아버린 꼭지와 날아간 뚜껑에 대한 남편의 소회가 문학적이었다. 그래. 왜 난 항상 낭떠러지일까. 무려 열흘이 넘은 지금도 난 여전히 낭떠러지이다. 그깟 말 몇 마디에 난 지금도 아프다. 마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