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말입니다 나는 왜 불안정애착 입니까

by 손사쁨

"하이는 오늘 뭐가 감사했어?"

"엄마는 머가 재미써써?"


올해는 아이와 함께 온 식구 가정예배를 시작했다. 불 끄고 누워서 각자 감사한 것을 나누고 남편과 내가 하루씩 번갈아 마치는 기도까지 드리면 5분. 만 5세가 안된 아이라 '감사'와 '짧게'가 핵심이다.


이상하게 감사한 것을 물으면 답은 하지 않고 재미있는 것으로 되돌아왔다. 일주일쯤 반복되고서야 알았다. 아이에게 감사란 재미있게 보낸 즐거운 시간이라는 것을. 하지만 우리 아가, 더 이상 오늘 하루 뭐가 재미있었는지 얘기할없다. 왜. 엄마 뿔났으니까.


못된 송아지는 엉덩이에 뿔 난다던데, 내 뿔은 어디에 있으려나. 어디 있는지 알면 그 뿔 좀 확 뽑아버렸으면 좋겠는데 말이다. 뿔이 가정예배를 드리냐 마느냐의 절대 변수가 된다. 기분이 태도가 되게 하지 말라던데 난 무려 하나님 앞에서 그러고 있다.




예전에는 남편과 싸우면 아이에게도 괜히 냉랭하게 굴었다. 진짜 난 똥 같은 엄마였다. 똥같이 굴었더니 아이가 꼬추를 잡았다.


추 잡는 아들 덕분에 애착에 대해 공부했다. 대단한 것은 아니고 책 몇 권을 읽었는데 나의 애착 유형(불안정 애착 집착형)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 '불안정함'이 결국 아이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현실에 속이 참 쓰렸다. 고르지 못한 감정과 행동은 내 새끼를 불안정 애착의 대물림 피해자로 만들고 있었다. 그 죄책감과 착잡함은 꽤 괴로웠다.


애착 다음 단계는 기질이었다. 애착으로 나를 이해했으니 이제 아이에 대해 알 차례. 기질을 구성하는 요소 세 가지, '자극추구', '위험회피', '정서적 민감성' 이 세 가지 항목 모두 높은 사람을 예민한 기질이라 부른다. 책으로 읽을 때는 긴가민가 했었는데 역시, 우리 아들 예민한 아이였다. 느낌적으로 지레짐작 하던 것이 수치와 전문 용어로 정리되니 '왜 이러지' 하던 의문이 '그래서 그랬구나' 이해로 전환되었고, 그래서 마음이 되려 편안했다. 이 애가 예민한 애다, 내 애가 예민한 애다 이제 말할 수 있다.




자극 추구 : 하고 싶다

위험 회피 : 하기 싫다

정서적 민감성 : 나한테 '세심하게' '넉넉히' '충분히' 반응하라고


이게 바로 우리 아들, 예민한 기질 아이들의 상태이다.

뮤지컬 배우 김호영 씨가 자기 MBTI는 EEEE라고 소개하던데, 그렇게 따지면 우리 아들은 FFFF이다. 우리 아들 F4, 승질머리가 있으니 구준표가 딱. 나는 아들과 다르게 자극추구는 낮은 편이지만 엄청난 크기의 정서적 연료통, 그게 바로 아들과 나의 연결고리요 얘가 내 아들이라는 증거 이다.


분노가 터져나와 눈알을 굴리며 집을 오가는 아이의 모습은 나 그 자체였다. 악다구니를 쓰는 순간 아이가 느끼고 있는 기분은 짐작이 되고도 남으며, 그순간 가장 힘든 사람이 바로 아이라는 것도 아니 얼마나 다행인지. 아들을 이해하기가 수월했고, 누굴 닮아 이러나 하는 억울함이 없어 좋기도 했다. 게다가 세상 쓸모 없어 봬는 불안정 애착 유형의 엄마지만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영역이 있는 것 같아 감사하기도 했다. 사이즈로 치면 쓰리엑스라지 정도 되지 싶은데 그걸 채워줄 수 있는게 나다. 나도 그러니까. 뭔지 아니까. 그래, 느낌 아니까.




그놈의 애착 그걸 1년 만에 또 고민한다. 나의 텅텅 빈 정서적 연료통을 두고 엄마를 다시 원망한다. 솔직히 이 레퍼토리는 그야말로 지루하다. 잊을만하면 올라오고 괜찮아진 것 같다가 또 폭발한다. 결혼하고 애기 키우는게 인생 2막이라던데. 그럼 새출발을 해야지 왜 인생 1막을 되짚어야 하는건지, 어려서 몰랐고 뒤늦게 아쉬운 삶의 순간을 이렇게까지 반복하며 상기시켜야만 하는건지 참 짜증스럽다.


나도 안정애착 그거 너무 갖고 싶다. 애착 나부랭이에서 정말이지 자유롭고 싶다. 이 세상 사람 절반 이상이 안정애착이라는데 아니 왜 나는 불안정애착인건지, 너무 승질이 나고 억울해서 하나님께 따졌다.




'하나님 저는 하나님을 믿는데 왜 불안정 애착이에요? 진짜 짜증 나요. 하나님, 예수님이 사랑의 상징이잖아요. 엄마가 올해 칠십이예요 칠십. 엄마한테 뭘 기대하겠어요. 저 좀 사랑해 주세요. 있는 그대로 수용되고 누군가 무조건 나를 지지해 주는 그런 든든함을 느끼고 싶어요. 마음이 좀 평안했으면 좋겠어요.'


'오늘부터 매일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라고 선포하겠으니 파도처럼 느끼게 해 주세요. 쓰나미 같은 파도벽이 아니어도 되고 찰싹찰싹 세차지 않아도 되고, 그저 파도는 멈추지 않으니까 잔잔하든 어떻든 매일매일 순간순간 계속, 파도처럼 그렇게 제 마음 좀 채워주세요.'

매일 아침 기도하기 시작했다.




-내가 너를 사랑해서 내 아들까지 내어줬는데 그래, 뭘 더 해주면 되겠니.

-내가 널 위해 십자가에 달리기까지 했는데 그래, 뭘 더 해주면 좋겠니.




어느날부터 이 두 줄 문장이 떠올랐다. 아니 이건 너무 추상적이며 원론적인 이야기 아닌가. 십자가 막 뭐 그런 대단한 말씀 말고 일상에서 구체적으로 마음에 와닿는 섬씽 스페셜한 난 그런걸 원한건데. 알고 있지만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이 두 문장이 계속 머물렀다. 그리곤 뭐, 어느 주일 터져버렸다.


야 작작 좀 해라. 나도 지친다. 도대체 뭘 더 해달라는 거니라는 식의 포기와 체념이 깔린 허무하고 서운한 말이 아니라,


그려 알겄어.

그니까. 그래 더 해주께. 해줄 수 있어.

뭐 해주까. 뭐 더 해주까.


하며 마흔 세살짜리 마음 속 자라지 못한 어린이를 향한 달램과 다독임에 눈물이 펑펑 쏟아지더니 그렇게 끝. 하나님이 이렇게 나오신다면 할 말이 없다. 아니 바랄 게 없어진건가. '사쁨이 그래쪄어' 결국 이거였나. 1년 잡고 시작한 기도였는데 너무 빨리 끝났다. 정서적 민감성이 높은 아이가 이렇게 쉽습니다 여러분.




그나저나 우리 아가, 요즘 참 재미가 없겠다. 엄마, 아빠랑 셋이 놀지도 못하고 어린이집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엄마도 없고 말이다. 엄마가 늦은 저녁 집에 돌아와 신나게 두 시간을 더 놀아주니, 오히려 개이득이라고 생각하려나. 수다쟁이에 눈치 빤해서 다 알고 있을 텐데 나에게도 남편에게도 직접 묻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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