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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사쁨 Jul 24. 2024

하야버지한테는 비밀이야(1)

아들 일기:


"하이야 아빠가 하이한테 사과했어?"


하야버지가 들을까봐 엄마 귀에 대고 손으로도 가리고 엄텅 조용히 얘기했다.  


"응. 주차장에서부터 미안하다고 했어."


그랬더니 하야버지가 무슨 얘기 했냐고 물어봐서 내가 얼른 두 손으로 엄마 입을 막았다. 살았다 살았어. 진짜 큰 일 날 뻔했다. 다행히 하야버지는 모른다.




엄마 일기 :


부모가 되는 일이 이렇게 힘들어야만 하나. 아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아이와 맞서 싸우는 남편을 보는 것 또한 고통스러운 일 중 하나이다.


하이가 계속 시비를 걸었다. 그런데 한 마디 한 마디 지지 않고 계속 받아친다. 마흔 살이랑 여섯 살이 또 붙었다. 주거니받거니하긴 했지만 극도로 흥분할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그런데 하이를 코알라처럼 안고 있던 남편이 팔을 풀었다. 이해한다.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아이를 밀친다. 발이 땅에 닿지도 않은 아이를 슥 쳐낸다. 축구 경기에서 감정이 상한 선수가 상대팀 선수의 가슴을 툭 밀듯이 그렇게 아이를 민다. 미쳤나.


하이는 중심을 잃었고 몸이 뒤로 기울어졌다. 엉덩이가 먼저 닿긴 했지만 코어에 힘이 없다. 그대로 머리가 뒤로 젖혀지더니 교회 주차장 철문 모서리에 머리를 찧었다. 슬로우 모션이 걸린 것처럼 장면이 생생하다. 머리가 뒤로 넘어갈 때 하이의 그 당황스러워 하던 표정이 사진처럼 찍혀 있다.


"자기야!"


후드려팼어야 했는데 고작 '자기야' 한 마디 내지른 것이 전부였다. 미간이 굳었고 턱에 힘이 잔뜩 들어간 채 얕은 숨만 헐떡였다. 뺨따구를 후려 갈길껄, 가방으로 내려치고 발로 걷어 차고 보이는대로 닿는대로 두드려팼어야 했는데 정말 후회된다.


남편은 바로 하이를 다시 끌어 안았고 하이는 아빠 품에 안겨 악악 울었다. 서러움이 가득 담긴 눈물이 줄줄. 한참을 울다 차에 올라탔다.


"하이 괜찮아?"


라고 물으니 다시 입이 삐쭉삐죽, 눈이 벌개진다. 손으로 머리를 만져보니 뒷통수가 울퉁불퉁하다. 뜨거운 불길이 치솟는다. 카시트에 앉아 있는 아이를 무릎에 앉혀 꼭 끌어 앉고 벨트를 채웠다. 금세 잠이 든다. '그럼 그렇지. 졸렸구나.' 하이는 졸리면 삐딱선이다. 잠든 하이의 뒷통수를 연신 쓰다듬는다. 하이가 잠드는 사이 나의 화는 기지개를 켠다. 두고보자. 주일인데, 방금 말씀 듣고 나왔는데 온 몸이 부들부들 거친 기운으로 가득 찼다.


얼마만의 낮잠인가. 친정이다. 아이가 낮잠을 자는 자유의 시간인데 아무것도 못하고 아이만 본다. 아이스팩 하나를 달래서 하이 머리에 받쳐주고 계속 하이만 본다. 미안하다고 말을 거는 남편에게 작고 낮은 소리로 실랄하게 퍼부었다.


"애가 물건이야? 왜 밀어. 내가 함부로 대하지 말라고 했지. 나한테 못하는 짓은 하이한테도 하지 말랬지. 짜증 날 수 있어. 그런데 짜증이 난다고 다른 사람도 아닌 내 자식한테 그런 행동을 한다는게 말이 안 돼. 니 새끼야. 어떻게 내 새끼한테 그런 짓을 해. 이게 아동학대지 뭐야. 애 이상해지는거 한순간이야. 사랑해 사랑해 물고 빨고 하다가 애 밀고 치고 아프게 하고 다치게 하고. 그러면서 애 미치는거야. 애 정신병자 되는거 보고 싶어? 야 나는 하이가 너무 불쌍해. 저 민 사람이 넌데 너한테 안겨서 울잖아. 너무 불쌍하지 않아? 니가 인간이니? 인간이야? 야 어른이 왜 어른인데. 애를 보호하는 게 어른이야. 너는 인간이 아니야."


남편이 차마 끝까지 듣지 못하고 자리를 떠났다. 진정되면 얘기하자나. 그 말은 아까 교회 주차장에서 하이한테 했어야 할 말이다. 지금 말고 그때, 내가 아닌 남편이, 나 말고 하이한테. 머리부터 발끝까지 내 온 몸을 휘감고 있던 쌍욕이 입 밖으로 나가진 않았다. 나는 참 대단하다. 그걸 참다니.       


상황을 파악한 아빠가 내 옆에 와 앉는다. 사위를 감싼다. 평소에 하이에게 얼마나 잘하느냐고, 이렇게 아이 돌보고 집안 살림 다 하는 사람이 어디있느냐고, 사람이 스트레스 받고 힘들면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해줘야 하지 않느냐고. 평생을 엄마와 싸워놓고서 자식 내외 부부싸움이 나면 이렇게 안절부절 무슨 큰 일 난것마냥 들들 볶는다. 아빠한테 이런 게 아동학대라고 언성 높여 알려드리고 이번이 처음도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아빠가 그런다. 너한테 쌓인 스트레스를 그렇게 푸는 걸수도 있다고. 예리하다. 순간 말문이 막혔다.


무려 세 시간만에 하이가 일어났다. 뒤통수를 만지며 여기가 아야하다고 한다. 눈을 맞추고 앉아서 물었다.


"하이야, 아빠가 하이한테 사과했어?"

고개를 끄덕인다.


"하이가 사과받아주기로 했어?"


라고 물었는데 하이가 손을 입가에 모으더니 귀에 바짝 붙어서는 소근댄다.


"아빠가, 아까, 주차장에서부터, 미안하다고, 해써."


귓바퀴 밖으로 새어나간 말도 숨도 없었다. 그렇게 하이가 애를 쓴다. 옆에 있던 아빠가 무슨 얘기를 그렇게 몰래 하느냐 물으니 내 입을 막는다. 두 손으로 꽉 막는다.


지 아빠 혼날까봐.

할아버지가 뭐라고 할까봐.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거 말곤 내 입을 막을 이유가 없다. 마흔 살보다 여섯 살이 낫다. 여섯 살이 마흔살을 감싸준다. 여섯 살 하이의 품이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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