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사쁨 Jul 26. 2024

하야버지한테는 비밀이야(2)

일부러 사랑을 주지 않는 부모는 없다.

아들일기:

엄마가 계속 어부바를 해준다. 아빠를 보자마자 머리를 만지면서 "아야~"했다. 내가 아픈걸 아빠가 알아주면 좋겠다.


엄마가 아빠한테 다음부턴 그러지 말라고 말하랬는데 대답은 안했다. 왠지 그런 말은 좀 어려우다. 아빠가 사가도 하고 나는 괜찮은데. 나는 아빠를 사랑한다.




엄마일기:

하이도 참 웃긴다. 나랑 잘 놀다가 제 아빠 보더니 대번에 아랫 입술을 일(一)자로 만들고서 뒷통수를 만지"야 아야" 한다. 할아버지한테 비밀 아니었나. 공개적인 통증 호소. 뭔가 우스우다.(하이 말투)


서로 침묵한다. 다음 날 퇴근을 하고서 카페로 갔다. 감정이 좋지 않을 때의 루틴이랄까. 혼자 보내는 시간만으로 마음이 풀릴 때가 있고, 그럴수록 더 화가 날 때도 있고 내 마음이 어떻게 될 지는 모른다.


언니한테 전화를 걸었다. 이미 알고 있을 거라는 걸 알고 있다. 엄마는 모든 일을 언니에게 말하니까. 나에 대한 모든 것을. 그게 언니에게는 스트레스이기도, 언니의 서운함을 자극하기도 하지만 엄마는 꾸준히 언니의 번호를 누른다. 장녀의 삶이 이런건가. 아이 셋을 독박으로 키우는 전업 주부이자 엄마의 하소연을 전담하고 있으며 까탈스런 동생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 조심하며  마음을 헤아려 준다. 역시. 알고 있다.


"사쁨아. 아침에 엄마한테 얘기 듣고 그 상황을 생각하는데 너무 마음이 아프더라고. 하이도 안 됐고, 제부도 불쌍하고. 그걸 눈앞에서 다 봤으니 너도 너무 속상할거고. 자꾸 생각나니까.


그런데 난 제부가 너무 안쓰럽더라고. 제부가 나랑 비슷하잖아. 나도 생각해 보면 어려서 엄마,아빠가 너무 많이 싸우고 뭐랄까. 난 그냥 무기력했던 것 같아. 어떻게 해 볼 의지 같은 게 없었거든. 그래도 너는 엄마, 아빠한테 사랑도 받고 그렇게 뭔가 채워져 있으니까 하이 대할 때도 참고 기다려주고 그게 되는 것 같거든.


예전에도 말한 적이 있지만 일부러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없다고, 일부러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라  사랑이 없어서 못 주는 거라고 했잖아. 나는 제부도 그럴 것 같아. 아이가 예쁘짓 해서 예뻐해 주는 건 당연한거잖아. 아이가 떼쓰고 징징 거릴 때 그 때도 사랑해 줘야 하는데 그럴 땐 밉고 싫고. 이건 사실 조건부 사랑이지. 그런데 나도 그렇고 제부도 그렇고 그런 순간까지 아이를 예뻐해 줄 수 있는 사랑이 없는거지. 그런 사랑을 받아 본 경험이 없는거야.


나도 말하지 못했지만 정신 나가서 진이(둘째) 막 때린 적이 있어. 속에서 미움을 넘어서는 살기 같은 게 올라와. 사람이 그렇게 되더라고. 그렇게 무섭고 악한 마음을 내 자식 보면서 느끼고 있더라고. 나도 그랬어. 그런데 내가 애한테 그렇게 화내고 혼내고 소리지르는 게 하나도 도움이 안되더라고. 제부가 하이한테 그렇게 해서 하이가 나아지는 게 아니잖아. 그거랑 똑같아. 네가 제부한테 화내고 무섭게 몰아세우고 그런다고 달라지지 않아. 제부한테 도움이 안되는거야.


네가 하이를 이해하려고 열심히 공부하고 책읽고 애쓰고 노력하잖아. 제부도 하이처럼 이해받아야 할, 이해해 줘야 할 대상인 건 똑같은거야. 그러니까 하이한테 하듯 제부를 이해해주려고 노력해봐."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어떻게 아기한테 그럴 수 있냐고 했더니 제부는 그게 안 되는 거라서 그렇다고 했다. 그래서 도와줘야 하는거라고, 다그치지 말고 도와줘야 한다고 했다. 어리고 뭐 모르니까 함부로 대하는 건 비겁한 거 아니냐고, 힘의 논리로 가족을 대하는 건 인간적인 존중의 개념이 대가리에 없는 게 아니냐고 했더니 그렇다고 했다. 그래서 언니도 둘째한테 그러는거라고, 오박사님 책에도 직장 상사한테 못할 행동은 자식에게 하지 말라고 했다고, 그렇게 아이들을 대하는 부모가 많다고, 그러니 남편을 도와주라고.


밤9시가 되서야 집에 들어갔다. 하이를 하원시켜 밖에서 뭘 얼마나 하고 놀았는지 그제서야 식사 준비를 하고 있다. 우리집 빤스맨. 여전히 드로우즈 한장 걸치고 바쁘다. 뒤에서 다가가 남편 허리에 팔을 두르고 언니한테 들은 이야기를 읊는데 눈물이 흐른다. "너도 이해해줘야 할 대상이래. 하이를 이해해주려고 노력하듯 너도 이해해 주래." 남편은 고맙다고 했다. 미안하다고도 했고, 자기도 자기가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고도 했다.


"일부러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없대. 사랑이 없어서 사랑하지 못하는 거래. 그런 순간까지 받아줄 사랑이 없어서 못하는거래. 자기가 자라온 과정을 한 번 생각해봐."


"난 사실 살면서 엄마 아빠한테 사랑받는다고 느껴본 적은 없어. 힘들게 농사 지으면서 뒷바라지 해주셔서 그게 그냥 감사한거지."


담담하게 말한다. 사랑받는다고 느껴본 적이 없어서 아쉽고 서운한 게 아니라 감사하단다. '원망스러울 때도 있었어'가 아니라 그냥 감사한거라니. 가져보지 못한 것이라 부재의 문제조차 알지 못한다. 올해 12월이면 우리가 함께 산 지 만 7년인데, 처음으로 남편의 부모님이 원망스럽다.

매거진의 이전글 하야버지한테는 비밀이야(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