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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사쁨 Sep 13. 2024

아빠가 아들에게 "친구가 너랑 안 논다고 하면"

천재가 된 남편


남편은 재이나 재이 엄마에 대해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중요한 것은 하이. 우리 하이를 키우는 것이고, 하이가 스스로를 지킬 있게 도와주고 알려주는 것이라고, 하이에게 어떻게 알려줘야 할 지 그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그걸 고민해 보자고 했다. 하이가 소중하듯 하이가 너무나 좋아하는 친구 재이도 그러하며 두 아이 모두 잘 자라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간헐적 천재라는 말이 있던데. 지혜로운 말이 물 흘르듯 줄줄 새는 이 남자가 정녕 내 남편이란 말인가. 다분히 감정적이고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던 그 남자는 어디가고 진지하면서도 차분한 애티튜드로 흠 잡을 데 없는 바른 말을 내뱉는 이 현자가 누구인고. 휘몰아치던 감정이 서서히 진정되고 정신이 차려졌다. 덕분에.


검색어 '너랑 안 놀아'

다른 검색어 '너랑 안 놀아 라고 하면'

또 다른 검색어 '너랑 안 논다고 말하는 친구'


열심히 찾아 보지만 맞아 떨어지는 영상이 없다. 대부분 친구 관계를 맺기 힘들어 하거나 소외된 상황이 이미 진행된 경우에 대한 것들 뿐이다. 하이가 친구랑 전혀 못 어울리는 것도 아니고 재이가 속칭 '여왕벌'이라 불리는 아이들처럼 하이를 부리는 것도 아니고 어떤 검색어를 사용해야 할 지도 모르겠고 뭐라고 말해줘야 하는건지 어떤 말이 필요한지 영 모르겠다. 어렵다.  



남자의 해결법


천재가 된 남편 거기까지 였다. 뭘 찾아보지는 않는다. 아이를 잘 키우고 잘 알려주자고는 하지만 공부는 하지 않는다. 한참 검색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남편이 하이랑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아무 자료도, 지식도, 정보도 없이 나랑 상의도 안하고서 도대체 무슨 얘길 했다는건지 가슴이 철렁다.


캠핑장에서의 일을 언급하며 재이가 어린이집에서도 그러는지 봤단다. 그랬더니 하이가 대답하길


"자주는 안 그."


다행인가 불행인가. 자주는 안 그래서 괜찮다는 건가. 이 정도는 견딜만 하다는 건가. 아이고 머리야.


나 : 하긴 한다는 거네.


남편 : 그렇지! 그래서 내가 그랬어. 하이야 재이가 너랑  논다고 또 그러면  


나 : 어, 그러면.


남편 : 놀지마!


손흥민 선수가 그랬다지. "잔디가 안 좋잖아? 그럼 그냥 좋다고 생각해." 이 짤을 가지고 얼마나 많은 밈이 나왔던가. 월급이 작잖아 그냥 많다고 생각해,

살이 쪘잖아?그냥 안 쪘다고 생각해. 흥민적 사고는 배울점이라도 있지. 이건 농담도 아니고 뭣도 아니고. 잘 알려주자더니,  스스로를 지킬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더니 이게 뭐람. 그럼 놀지 말라니. 머릿 속에 여만한 물음표가 띵띵띵 종소리를 내며 세 개가 찍혔다. 이런 것이 남자의 해결법인가? 남편이 이어 말했다.


"안 놀아도 돼. 그런데 안 놀잖아? 그럼 재이가 먼저 올거야. 재이가 다시 왔을 때 재이랑 놀고 싶으면 그 때 같이 놀아."



안 놀아도


묘하다. 안 놀아도 된다는 말이 주는 잔잔 여운이 있었다. 짧고 쉽고 간단한 말인데 음미하고 곱씹게 되는. 


'너랑 안 놀겠다는 말, 그거 별 거 아니야'라고 말하는 것 같다. 나에게도 '이거 실은 별 일 아니야'라고 꿈치로 쿡 찌르며 슬쩍 알려주는 것 같기도 했다. 힘이 바짝 들어갔던 마음이 조금 풀어진다.


재이재이 노래를 부르는 우리 하이에게는 어떻게 들렸을. 하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이 남자, 진짜 간헐적 천재. 



#첫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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