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심스레 시작하니조심스레 되묻는다. 재이가 '너 빼고 논다'고 했던 그날, 그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며
"친구한테 그렇게 말하면 안되는 거거든. 재이가 어린이집에서도 그래?"
숨죽여 듣고 있던 하이가 갑자기 목소리를 경쾌하게 높인다. 사실 재이가 아닌 찬이가 그런거라는 둥, 그래서 선생님한테 일렀다는 둥, 아니아니 그게 아니고 선생님한테 말한 건 아니라는 둥 웃는 얼굴로 허둥지둥한다. 하이의 이야기를 듣고 궁금한 것들을 물으니 어느 순간 하이의 말문이 막혔고 대화가 멈췄다. 횡설수설하는 걸 보니, 말도 안되는 말로 말을 돌리려는 걸 보니 대화의 주제를 정확히 이해한 것이 분명하다. 재이를 혼낼까봐? 재이랑 놀지 말라고 할까봐? 이유는 몰라도 하이가 재이를 감싼다. 재이의 잘못된 행동을 재이가 한 것이 아니라고 얼버무려 덮어주려는 것 같다.
"재이가 다음에 또 그러면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나도 모르는 걸 애한테 물었다. 고작 여섯 살인데, 최소한의 가이드 라인 정도는 알고서 물어야 할텐데 뭘 알려줄래도 알려줄 수 가 없다. 나도 모르니까. 훈육이든 코칭이든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즈언혀 모르니까. 아닌가? 몰라도 이렇게 물어보는 게 맞는건가? 전문가도 아니면서 어설프게 흉내만 내는 모양새다. 내뱉는 말 족족 미련하기만 하다.
어쨌든, 오늘의 대화는 망했다. 하이의 당황하는 모습, 그게 첫 번째 증거다. 아빠에게는 묻는 말에 대답도 하고 제 생각도 표현했다는데, 같은 주제로 이루어진 오늘의 대화는 회피한다. 이게 두 번째증거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갔을텐데 왜 꼭 한마디 해야한다고 생각했는지 후회가 된다. 일을 그르친 것 같다.
주특기는 자아성찰입니다.
하이를 어린이집에 들여보내고 출근하는 차에서 아씨, 아씨 했다. 대화를 복기하고 곱씹으며 마음이 앞서 범한 나의 실수들을 정리해 나갔다.
첫째, 감정부터 언급한 것. 속상했다는 말을 시작할 때부터 때려박다니. 왜 그랬지. 캠핑장, 속상해 두 단어만으로 이미 하이가 알았던 것 같다. 긴장한 눈빛으로 가만히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이던 하이. 심각한 분위기로 하이를 긴장하게 만들었고, 아빠와 대화할 때처럼 편하게 속내를 드러낼 수 없었을 것이다.
둘째, 아이의 수치심을 자극한 것. 왜 당하고만 있었냐고 몰아 세우지는 않았지만 네가 부당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는 안 좋은 기억과 감정만 상기시키고 끝난 대화. 친구들 사이에 그런 일이 종종 있다고, 그럴수 있는 거라고, 그런데 그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나쁘다고, 그래서 하면 안되는거라고 편하게 알려줘도 됐을텐데.
셋째, 조심스러운 말투. 이게 제일 문제다. 속상하다는 말도, 그 날 일을 반복해 언급한 것도 말투만 적당했으면 이렇게까지 마음이 거시기 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까지 진지하고 심각해지진 않았을 것이다.
엄마가 되어 가장 자주 하는 일 세가지
죄책감을 느끼며 자책하는 일은 매일 반복된다. 적어놓은 적 없는데 to do list에 항상 올라 있다. 왜 나는 남편처럼 별 일 아니라는 듯 표현하지 못했을까 온종일 '아씨'거리며 후회하다 알았다. 마음이 편치 않은데 어떻게 편하게? 마음에서 별 일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별일 아닌 것처럼? 그래, 그냥 솔직했던 걸로. 나는 오늘 세련되지는 못했지만 솔직한 대화를 나눈 것으로 그렇게 정리해야겠다.
엄마가 되어 가장 자주 하는 일 세 가지가 있다. 걱정, 자책, 검색.
걱정은 완료. 자책도 완료지만 내일도 꾸준히. 이제 검색할 시간이다. 다시 시작한다. 유튜브에 또 들어간다. 필요한 정보를 찾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이렇게 애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