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사쁨 Sep 12. 2024

"그럼 이제 너 빼고 논다."는 말을 들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내 새끼가 을이 되어 있다.


하이의 눈빛이 무너져 내렸다. 이건 안된다고, 이건 줄 수 없다고 뒤로 깊숙히 빼 놓았던 손을, 손에 꼭 쥐고 있던 장난감을 재빨리 재이 앞으로 내밀었다. 재이는 당당하고 익숙하게 하이 손에 있던, 하이의 장난감을 낙아챘고 둘은 아무일 없다는 듯 놀았다. 심지어 웃으면서 말을 건다. 하이가, 하이가 말을 건다. 정말 아무렇지 않아서인지 그런 척을 하는건지, 재이 뜻에 맞춰 주고도 눈치를 보는건지 우리 하이가 말을 건다. 하이가 약자다. 내 새끼가 을이 되어 있다.



"너랑 안 놀아." 보다 더 잔인한 말,

"너 빼고 논다."


고작 여섯살인데 벌써 그런 말을 할 줄이야. 도대체 어디에서 배웠을까. 어떻게 그런 말을 내뱉을까. 단 둘이 노는데도 너 빼고 놀겠다니, 과연 처음일까. 우리 하이는 그동안 몇 번이나 놀라고 두근거렸을까. 얼마나 자주 가슴 쓸어내렸을


하이는 재이를 진심으로 좋아한다. 하원 후에 재이와 놀기 위해 항상 장난감을 챙기고, 장난감을 고르는 선택권도 보통 재이에게 먼저 준다. 재이만 누릴 수 있는 하이표 특별대우이다. 장난감보다 재이가 중요하고, 재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더 소중한 하이. 그런 재이가 이런 하이에게 너 빼고 놀겠다니 하이 입장에서는 너무 잔인한 말이다. 재이에게 하이는 양보해주는 것이 당연한 친구가 되어버린걸까. 더 좋아하는 사람이 약자라는 말, 여섯 살 인생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쓸모없는 상상 '나라면'


재이 엄마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재이야! 

재이 어떻게 그런 나쁜 말을 할 수가 있어."


라고는 했지만 재이의 뒷통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무안하고 미안했을 재이 엄마는 난처한 미소를 보이며 "하이가 순수하네요." 라고 했다.

 

나라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하이가 그런 말을 했다면 하이를 불러 세웠을 것이고 장난감을 돌려줬을 것이다. 그리고 왜 그렇게 하면 안되는지 그 자리에서 설명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라면' 이라는 가정은 필요없다. '나라면'이라는 상황은 영원히 오지 않는다. 재이 엄마는 내가 아니다. 내가 될 수 없다. 반드시 나처럼 해야하는 것도 아니고 내 방식이 정답도 아니다. 재이가 미운 것도, 재이 엄마가 원망스러운 것도 아니다. 하지만 속은 상한다.



무한한 상상력이 발휘되는 엄마의 자리


1초도 되지 않았을 그 짧은 순간 재이의 입 밖으로 던져진 그 말을 해결하기 위해 황급히, 그 말이 실현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하이. 떡하니 엄마 아빠가 다 같이 있는데도 그 말이 뭐가 그렇게 무섭다고 얼음이 되어 말 한 마디 받아치지 못한다. 지진이 난 듯한 눈동자, 할 말을 잃은 입술과 볼의 떨림, 벼랑 끝에 내몰린 듯한 두려움과 당황스러움이 공존하던 얼굴이 생생하다. 하이의 표정이 무한히 반복되는 그것이 고역이었다.


집에 돌아와서 결국 눈물이 터졌다. 하이의 그 얼굴이 잊혀지지 않았고, 마치 엄청난 수모를 당한것만 같은 과장된 감정이 휘몰아쳤다. 이런 일이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 것만 같은 불안으로 미래에 있을지 없을지 모를 억울함과 분까지 꾸어온 상태.  애라서? 이런 일이 처음이라서? 내가 너무 예민해서? 무한한 상상력이 발휘되는 엄마라는 자리가 너무 어렵다. 자식 일에 눈이 돈다는 게 이런거구나 싶다. 눈깔이 제대로 안 떠진다. 자꾸 어딘가를 응시한다. 모든 숨이 한 숨이다.



#두번째 이야기

https://brunch.co.kr/@thanksnjoy/146


#세번째 이야기

https://brunch.co.kr/@thanksnjoy/147


#네번째 이야기

https://brunch.co.kr/@thanksnjoy/149


#다섯번째 이야기

https://brunch.co.kr/@thanksnjoy/150

사진출처 : 픽사베이

매거진의 이전글 생일 파티에 꼭 있어야 하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