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 마지막 숙제(1)

by 손사쁨


지금은 성적표를 '학교생활통지표'라고 쓸데없이 복잡하고 길게 부른다. 이 학교생활통지표를 보낼 때 담임교사자 작성하는 통신문이 있는데 꼭 적어보내는 한 마디가 있다.


'이 종이 한 장이 아이들의 전부를 표현할 수는 없습니다.'


해 전 함께 근무했던 국어 선생님이 사용한 문장인데 너무 마음에 들어서 그 이후로 꼬박꼬박 통신문에 적어 넣는다. 올 해도 그랬다.


통지표에 기재된 숫자와 알파벳이 아이들의 전부를 표하지 못합니다. 저마다의 장점과 강점, 개성을 이 통지표 한장에 담아낼 수는 없습니다. 믿기지 않으시겠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드러나지 않는 방법으로 아이들 나름대로 고민하고 좌절하며,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스스로를 질책하기도 한다는 것을 꼭 믿어주시고 1년을 무사히 잘 마친것만으로 칭찬 듬뿍해주시길 바랍니다.


특히 올 해는 학교 2학년을 맡은 첫해라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중2 담임만 할 수 있는 표현으로 글을 맺었다.


이 아이들 덕분에 북에서 쳐들어오지 못한다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마의 십오세, 질풍노도의 중학교 2학년을 잘 마무리할 수 있음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누구보다 부모님이 가장 고생하셨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과 평안이 가정에 함께하길 기도합니다.


웃기고 싶은 욕구는 포기하기 쉽지 않다. 같이 풉하고 웃으셨으면 다행인데 이 선생이 어디 통지표 가지고 장난질이야라고 생각하셨다 해도 뭐 별 수는 없다.




학교생활통지표는 공통통신문과 개별통신문으로 나뉜다. 통신문은 의무사항이 아니라 공통통신문이나 개별통신문 중 한 가지만 작성할 수도 있고, 모두 작성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보통 공통통신문에는 학급 모든 아이들에게 전하는 인삿말과 당부, 공지사항 등 적어 보내고 개별통신문에는 아이 한 명 한 명의 학교생활에 대한 개인별 메시지를 담아 낸다. 그러다보니 개별 통신문을 작성하려면 꽤나 많은 시간과 정성과 노력이 필요하다.


마음 같아서는 아이들 하나 하나 저마다에게 각기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지만 인간적으로, 현실적으로 학기말은 바쁘다. 바빠도 바빠도 너무 바쁘다. 일이 많기도 하지만 마음도 분주하니 7월과 12월만 되면 브런치도 안녕이고 특히 12월은 세상 예민하고 까칠한 엄마가 되는 병이 도질 지경이다. 생기부 꼼꼼하게 챙기는 것도 벅찬데 개별통신문까지 쓰려면 솔직히 벅차다. 슬쩍 넘어가고 싶었다. 현실과 타협할 참이었다. 그런데 통신문을 쓰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교감선생님도 그건 당연하다고 하셨어."


교무부장님이 개뻥을 치신다. 딱 봐도 뻥이다. 그럴리가 없다. 그런데 이 개뻥, 개구라가 자꾸 마음을 흔든다.


'아우씨 그래도 한 마디 적어? 적어주면 좋긴한데. 애들도 기다릴텐데.'


결국 한글을 열었다. 1번 내사랑 고은이부터.


그래 써보자!



사진출처: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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