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가 뒤집어졌다. 3학년 네 학급 중 두 반이 동점, 한 반은 2위가 되었고 한 반은 3위가 되었다.
‘동점이 나올 경우 줄다리기 결과로 그 순위를 정한다.’
체육대회 운영 계획서에 순위를 가리는 기준이 있다니! 순위를 가리는 그 첫 번째 종목이 무려 줄다리기라니! 공동 2위였던 3학년 4반은 줄다리기로 인해 3위로 주저앉았다.
가뜩이나 줄다리기 경기를 마치고 도대체 반편성을 어떻게 한거냐, 이런 갈비씨들만 넣어주고 줄다리기를 어떻게 하라는 거냐는 이야기가 4반 아이들 사이에서 한바탕 일어난 참이었다. 한 승부욕 하시는 4반 담임선생님도 이번 체육대회에는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고 말씀하실만큼 체급면에서 열세한 그 말라깽이들이 2위라는 근사한 결과를 내고도 3위가 되어 버린 것. 줄다리기 때문에 순위가 밀린 충격과 분노의 여파는 상상을 초월했다.
4반 반장 환이는 체육대회 우승을 위해 반장이 되었다고 했다. 반드시 우승해서 선생님을 호강시켜 드리겠다며 대회를 앞두고 수차례 호언장담을 해왔다. 그 환이를 필두로 아이들이 울기 시작한다.
왜 줄다리기인가?
도대체 왜. 아이들은 납득하지 못했다. 심지어 공동 2위에서 단독 2위가 된 그 반과 줄다리기 경기를 하지도 않았는데 왜 줄다리기 결과로 순위를 정해야 하는지 물었다. 심지어 최종 2위가 된 그 반보다 좋은 성적을 낸 종목이 더 많은데 왜 우리가 순위를 내어주어야 하느냐는 논리였는데 설득력이 충분했다. 체육대회에 모든 것을 걸었던 환이의 눈물은 멈추지 않는다. 4반 아이들은 시상대에 오르는 반장을 따라 올라가 교장선생님께 함께 울며 호소했다.
체육선생님 자리는 문전성시. 아이들이 줄줄이 찾아와 이 결과에 승복할 수 없다는 점과 순위를 정하는 기준이 부당하다는 점을 주장했고, 그 근거와 이유, 정당성을 강하게 피력했다. 한 사람을 필두로 우르르 무리지어 온 것이 아니었다. 삼삼오오도 아닌 일이삼사로 모인 아이들의 행렬이 끝나질 않는다.
체육선생님은 단합력을 요하는 종목으로 순위를 가린다고 설명했지만 줄다리기는 힘에 의한 경기가 아닌가. 단합력으로 줄다리기의 승패를 가릴 수 있다는 것인가. 나 또한 의문이다. 즐겁고 신이 나도 모자른 축제의 날, 초상집이 다 되어 버린 4반. 곡소리가 온 학교에 퍼진다.
왜 순위를 가려야 하는가?
선생님들 또한 이 사태에 충분히 공감했다. 아이들 못지 않게 우리도 진지했다. 승부와 순위에 대한 건설적인 토의와 토론장이 된 교무실. 선생님들이 주목한 문제는 ‘왜 줄다리기인가’ 보다는 ‘왜 순위를 가려야 하느냐’에 대한 것이었다. 획득한 점수 그대로 인정해주면 왜 안되었냐는 것이다.
4반 담임선생님도 참을 수 없기는 마찬가지. 체육선생님을 찾아갔다. 석연찮았던 판정에 대해 의견을 제시했고, 줄다리기와 단합력의 무관련성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내며 힘을 보태셨다. 무려, 두 번을 찾아갔다. 담임과 아이들은 운명공동체, 원팀이다. 아이들의 억울함을 지나칠 수 없다.
항의가 빗발치는 이순간, 체육선생님의 입장이 가장 난처하다. 순위를 가리는 종목의 첫번째 기준을 줄다리기로 정하는 것은 그 세계(체육의 세계)에서 지극히 일반적이며, 교직 생활 중 동점이 나온 건 처음이시란다. 아이들이 이렇게까지 속상해 할 줄도 몰랐고, '공동2위로 발표할까' 순간적으로 스친 생각을 무시한 자신을 탓하셨다.
캬, 또 간다. 오늘 죄다 여기 저기 가는 날. 체육선생님이 결국 교장실로 향한다. 교장선생님께 아이들의 의견을 말씀드렸을 것이다. 통곡과 오열, 눈물로 얼룩진 행사의 마지막 모양새를, 아이들이 느낀 3위의 억울함에 대해 전하셨을 것이다. 4반 아이들을 2위로 정정하려면 상품으로 지급되는 문화상품권이 부족하다. 필요한 만큼 추가로 구입하기로 했고, 상장도 새로 뽑기로 했다. 슬슬 마무리가 되어 간다.
되찾은 영광에 대해 아이들이 얼마나 기뻐할지, 이미 다 김이 새버린 축제일 뿐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3학년 4반 정말 잘했다. 문제가 있다면 이렇게 강력히 들고 일어서야 한다. 따지고 덤벼야 한다. 대표에게 맡겨 놓고 가만히 앉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너나 할 것 없이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한다. 학교 밖 세상으로 나가기 전 여기 학교에서 이렇게 주장하고 외치며 잔뼈를 키워야 한다. 속을 땐땐하게 단련시켜야 한다. 되든 안되든 말이다.
결과에 승복하는 미덕도 알아야 하지만, 승복하는 것만 배우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부글부글 들끓어 오르는 아이들의 모습이, 수긍과 순응을 거부하고 들소처럼 치받는 모습이 왜 이렇게 좋은지 모르겠다.
1년이 지났다. 다시 체육대회, 2024년의 그날을 앞두고 회의가 진행되고 있다. 자료를 보시던 교장선생님이 의견을 내신다.
"동점이 나온 경우 순위 가리지 말고 득점한 그대로 인정하는 걸로 하시죠."
계획서는 수정됐고, 올해 무려 두 학년에서 공동우승이 나왔다. 3학년 4반이, 정말 해냈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