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우승을 하고, 그해 결혼을 했다. 두 번째 우승을 하고 그해 하이를 만났다. 그리고 2년 전, 세 번째 우승을 하고 아기다리 고기다리 던 청약이 됐다. 우승을 하는 해마다 내 인생의 변곡점이 될만한 경사가 함께 있었다. 체육대회 우승은 '올 해 사쁨이 아주 뭐 대단히 대단할거야'라고 하나님이 주시는 특별한 신호처럼 내 생애 반짝이는 사건이 폭죽처럼 터졌다.
1위의 환희를 처음 알게 해준 2017년 안산에서의 마지막 제자들. 교직생활 '첫사랑'이다. 체육선생님과 연애중이라는 걸 알면서 단 한 명도 내색하지 않았다. 모두가 알고 있던 우리의 비밀 연애를 철저히 모르는 체 해주었다. 결혼 소식을 전하던 날 교실에 폭탄이 떨어진것 처럼 '으아'하고 소리치던 아이들. 그 아이들 덕분에 담임의 낙을 알았다. 무슨 경기만 있으면 죄다 이겼다. 체육대회 때는 학년 종합 우승에 응원상까지. 보통 두 개의 상을 한 학급에 주지 않는데 우리는 다 받아버렸다.
“그 반이 제일 잘 하드라.”
“손선생 축하해.”
친분이 있는 선생님들(단, 담임을 맡지 않은) 모두 인사를 건넨다. 아이들이 잘한 것 뿐인데 온갖 축하인사가 내 차지가 되고 아이들 덕분에 어깨가 으쓱해지는 호사를 누렸다. 자식 잘 될때 부모가 느끼는 기쁨이 이런건가 싶을만큼 벅찬 행복감이 있었다. 나의 재능, 실력, 노력과 아무 상관 없이 좋은 일과 좋은 감정으로 채워진 하루하루라니. 감사도 넘쳤다.
체육대회를 마친 학년부 교무실은 공공칠빵의 긴장감으로 가득차 있다. 체육대회가 '빵'. '으악'할까봐 아무도 말을 안한다. 방금 전까지 운동장에 있었는데, 여전히 반티는 입고 있는데, 지금 여기 드래곤볼 손오공도 있고, 태권도 선수, 프리미어리그 축구 선수도 둘셋은 되는데 그 차림을 하고선 마치 아무일도 없다는 듯 노트북만 들여다 보고 있다. 다들 속이 내내한 것이다.
나의 연애처럼 우리반의 우승도 비밀 같았다. 모두 알지만 모르는체. 속이 오지지만 혼자, 조용히, 은밀히 삭여가며 기뻐해야 했다.
유치하다. 젊은 선생님들이 많아 유독 더했다. 아가씨 시절 담임을 하면 우리반은 세상의 중심, 나의 전부가 된다. 그 마음 궁서체 세상 진지해서 말이다. 다른반의 기쁨이 내 기쁨이 되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너스레 떨며 축하 인사 건넬 아량도 부족하던 시절이다. 옹졸하다 해도 그건 해줄 수 없는 일, 어쩔 수 없는 일. 그땐 그랬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